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크리스안 Aug 27. 2021

내 영어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버린 영화

나의 영어 이야기

매주 토요일 밤이면 저녁 식사를 마치고 온 가족이 거실에 모여서 영화를 보았다. 슬프게도 어린 동생과 내겐 영화 선택권이 없었다. 대부분 아버지와 어머니가 그날의 영화를 선택했다. 똑같은 것에 금방 질려하는 우리들 취향에 맞춰서 어머니는 다양한 영화를 소개해 주셨지만, 아버지는 매주 똑같은 영화만 선택했다. 


사실 그때는 똑같은 영화 한 편을 보고 또 보는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했다. 더욱이 매번 흑백 서부영화만을 고집해서 보는 것은 더 이해할 수 없었다. 당시 미국은커녕 해외여행도 가보지 못했던 어린 내게 영화의 모든 장면들이 낯설었다. 부츠를 신고, 카우보이 모자를 쓰고, 말을 타면서, 미국 남부 특유의 억양으로 말하는 그들의 모습이 그저 신기했다.


아버지는 매주 같은 영화에서 매번 다른 질문들을 우리에게 던졌다. 이미 여러 번 보아서 자신 있다고 생각했지만, 가끔은 새로운 질문들에 깊고 오랫동안 생각해야만 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보다 다양한 관점에서 생각해 볼 수 있는 흥미로운 시간이었다. 영화에 나왔던 컨츄리 뮤직을 아버지가 통기타로 연주하면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그저 흥에 취해서 따라 불렀다. 그렇게 우리는 매주 영화의 밤을 함께 보냈다.



해외 영화와 드라마를 너무 좋아하기 때문에 이것에 대해서 누군가와 이야기할 때 너무 행복하다. 만약 비슷한 취향을 가지고 있거나 최애 작품이 같을 경우에는 정말 전우를 만난 느낌이다. 술이 없어도 따뜻한 에스프레소 한 잔과 좋아하는 영화나 드라마를 안주 삼아서 밤새도록 이야기할 수 있다.


"크리스, 좋은 영화나 드라마 하나 추천해줄래요?"


너무 어려운 질문이다. 친근함의 표시로 가볍게 던진 하나의 질문에 내 머릿속은 이미 수 백, 수 천 가지의 영화와 드라마들이 떠오르고 사라지고를 반복한다. 하지만 여기서 굉장히 조심할 부분이 있다. 개인의 취향이 뚜렷한 것은 바람직하지만, 그렇다고 나의 취향을 다른 이에게 강요해서는 안된다. 그들의 취향을 천천히 알아가고 그에 맞는 것들을 공유하는 것이 서로 편하다. 



외국어 고등학교 진학에 실패하면서 미국 유학에 더 큰 관심이 생겼다. 뉴스에서는 언제나 하버드, MIT, 스탠퍼드, 칼텍 등과 같은 미국 유수의 대학과 대학원에 진학하는 사람들을 칭송했다. 그곳에 합격만 하면 인생이 송두리째 바뀔 수 있다고 떠들었다. 그곳이 너무 궁금했다. 


서점에 가서 미국 유학과 관련된 다양한 책들을 찾아서 읽어보았다. 그리고 공통되는 한 가지를 찾았다. 바로 정말 열심히 공부하는 수밖에 길이 없었다. 당시 SBS 다큐 스페셜 "세계 명문 대학 - 죽도록 공부하기"에서 실제 하버드와 MIT 학생들의 삶을 보았는데, 정말 치열하게 공부하더라. 


하버드 대학교와 관련된 조사를 하다가 우연찮게 영화 "Good Will Hunting"을 접했다. 이 영화를 처음 본 순간 이후로 지금까지 대략 100번 넘게 보았다. 그리고 항상 혼자서만 이 영화를 보았다. 다른 특별한 이유는 없지만, 그저 삶이 힘들고 지칠 때 혼자서 무엇을 보고 느끼고 싶을 때 항상 이 영화를 찾았다.


영화 "Good Will Hunting"의 최애 장면


수학 천재지만, 불우한 집안 환경 때문에 하버드 대학교에서 청소부로 일하는 Will. 그의 개인적인 삶을 다룬 이야기이자, 내게 정말 많은 삶에 대한 중요한 질문들을 던져주는 영화이다. Will의 배역을 연기한 Matt Damon과 Will의 친구 Chuckie 역할을 연기한 Ben Affleck이 공동 각본으로 참여했다는 것도 놀라웠다.


영화를 보고, 또 보면서 매번 새로운 것을 느낄 수 있었다. 100번 정도 보고 나서는 정말 눈을 감아도 영화 장면들이 보였다. 어렸을 때는 그저 영화에서 수학 천재 Will 이 하버드 대학교 수학 교수보다 더 훌륭한 실력이 있지만, 그것을 뽐내지 않고 당당히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모습이 멋졌다. 이후 20대, 30대가 지나면서는 실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우리의 인생에서는 항상 우선순위가 있다는 것을 영화를 통해 다르게 느꼈다.


영화 한 편을 100번 이상 보았기 때문에 직접 연기를 할 수 있을 정도로 거의 모든 영어 대사를 외웠다. 누가 시켜서 외운 게 아니라, 그저 내가 좋아서 보고 또 보니 자연스럽게 외워졌다. 우연찮게 찾은 영화 한 편을 통해서 영어를 배우고, 해외 유학에 대한 동기부여를 받고, 심지어 내 삶에 대한 우선순위까지 고민할 수 있었다. 



지금도 삶이 힘들고 지칠 때 조심스레 꺼내 본다. 열정 많고 호기심 많았던 10대 시절,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항상 아등바등했던 20대 시절, 그리고 남을 위해서가 아닌, 오직 나를 위한 삶을 용기 있게 결정하고 후회 없이 살고 있는 지금의 30대 시절. 모두 이 영화를 통해서 다르게 느낄 수 있다. 


오히려 30대인 지금, 다른 때보다 더 깊게 영화 속에 감정 이입된다. 이미 수 백번 보았던 장면들에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흐른다. 괜찮다. 나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버린 영화를 보면서 자유롭게 눈물을 흘리는 것이 내가 이 영화에 표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존중이라고 생각한다.




Trust me, you have so much more potential than you ever thought.

이전 12화 내 영어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버린 팝송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