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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시면 Jun 06. 2023

04. '긍정'이 가져다주는 '부정'

심연: 찢어진 마음 들여다보기

 항상 긍정적으로 생각하라는 건 참 좋은 말이다. 모든 것은 마음에 달려있다고 하니 나에게 생기는 일들을 긍정적으로 본다면 내 삶이 밝아진다는 뜻 일 것이다.

 나 역시 한때는 긍정의 왕으로 불릴 만큼 긍정이 넘치는 사람이었다. 회사에서 생각지도 못한 방법으로 사고를 치는 동료를 보며 회사 다니는 재미가 있다고 했으며, 나를 괴롭히는 상사가 있을 때는 어디까지 막 나가는지 구경하는 마음으로 다닌다고 했으며, 모임이나 친구사이에서 인간관계에 대한 문제가 생겼을 땐 심심할 틈은 없어서 좋다고 말했었다. 그럼 나를 보고 사람들은 대단하다, 사고가 좋다, 혹은 멘탈이 강하다, 존경한다라고 말했었다.

 그러나 큰 일을 겪은 지금, 나는 긍정의 힘을 많이 져버린 사람이 되었다. 하루는 어떻게든  긍정적으로 살아보려다, 하루는 그마저도 할 수 없어지다, 하루는 긍정자체가 짜증 나기도 한다. 그것이 짜증이 나는 이유는 날 이렇게 만들어버린 그 병원과 의사가 너무 밉고 싫은데 긍정적으로 생각하기 위해 조금이라도 만족하거나 현 상태를 수긍해야 하는 걸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마음이 내포되어 있었다.

 해당 병원에서는 이미 일어난 일 어쩔 거냐고 나쁘게만 생각하지 말고, 화만 내지 말고, 좋아질 때까지 몇 년이고 그냥 기다리라고만 하였다. 좋아질 여지가 없는데 무엇을 기다리란 말인가. 그 사람들이 말하는 몇 년이란 아마 죽을 때까지인 게 분명하다. 이것을 난 어떻게 나쁘지 않게 생각할 수 있을까.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정신과 의사에게 상담을 받았던 적이 있는데 그 의사는 나에게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하라고 말하였다. 그리고 나는 되물었다.
 "선생님. 제가 어떻게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을까요? 그래 내 목숨 잃는 거보다 신체부위를 잃은 게 낫지. 내가 사랑하는 사람 잃는 거보다 신체부위를 잃는 게 낫지. 라고 생각해보기도 하는데 이게 말이 되나요? 이게 긍정인가요?"
 그러자 그 의사는 그건 좀 아닌 거 같은데... 라며 한참을 머뭇거렸다. 그리곤 사실 긍정적으로 생각하라고 말하기 조심스럽고 어렵다고 했다.


 전문가도 그런데 지인들이라고 별반 다를 리 없었다. 내 사정을 아는 모든 사람들이 "긍정적으로 생각해! 긍정적으로 생각해!"라고 하는 통에 오히려 미칠 지경이었다. 걔 중에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특이한 긍정을 쏟아내기도 하였다.  

"성욕은 추악한 거야 없어도 돼! 평생 안 하고 사는 사람도 있어. 안 해도 돼!"

"어차피 너 나이도 있으니 곧 리스될 거야 걱정하지 마!"

"야 잘됐다!  남친은 성욕 별로 없다며! 잘됐네! 이제 둘이 잘 맞겠다 ㅋㅋ "

 등 모순되게도 성이 중요한 게 아니라면서 성관련 특이한 긍정 사고 제시가 제일 많다. 히지만 난 애초에 성감을 위해서 수술을 받은 것도 아니었으, 그러한 말들이 되려 상처가 되었다. 그 외에도 오히려 그 신체 부위가 없어서 편할지도 모른다던가, 별일 아니라던가, 입양도 있으니 자연출산만 고집하지 말라던가, 통증은 그냥 신경 끊어버리면 된다는 말을 하기도 하였다. 나는 그런 말들을 들었을 때 장난치는  같고 놀리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자기 일이 아니면 역시 쉽게 말하는 게 사람이라는 것도 느꼈다.


 하루는 못 참고 나는 이걸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 없다고 말했더니 되려 지인들이 화를 내었다. 한 지인은 이미 일어난 일인데 본인말에 반박하지 말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라며 본인 딴에는 위로라고 하였는데 반박을 하니 화가 난다고 했다.

 또 다른 지인은 최선의 위로였는데 뭐라고 말해줘야 할지도 모르겠고 함부로 말했다가 또 상처받았다고 할 거 같다며 말을 안 하겠다는 사람도 있었다.


 그 지인들에게는 내가 긍정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게 단순한 반박에 지나지 않았을까? 그래서 화가 났을까? 가슴 아파하며 하루하루를 버티는 내 모습보다 자기들의 말에 수긍하지 않고 반박하는 것 같은 내 모습이 먼저 보였을까?


 현재 나에게 긍정이라는 것은 날 이렇게 만든 병원과 의사를 용서해야 하는 과정을 거쳐야만 가능하다. 물론 지인들은 그걸 알았지만 내가 너무 힘들어하니 아예 잊으라고 할 뿐이다. 내 신체 일부를 잃고 자나 깨나 늘 눈으로 볼 수 있는 걸 잊을 수 있을까? 몸이 크게 변해버렸고 평생 가지고 가야 하는데 이 모든 사건을 그냥 지워버릴 수 있을까? 물론 나도 그러길 바라서 머리를 다쳐서 기억을 잊게 해달라고 빈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이는 어쩌면 위로하기조차 귀찮았을 수도 있고 내가 그냥 다 싫다고 떼쓰며 우는 어린애로 보였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그들이 긍정 왕이라고 칭하던 그 지인은 한순간에 종잇장처럼 구겨져 버려졌고 눈엣가시가 되었다.


 그런데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과연 은어로 '소중이'라고도 불릴 만큼 소중한 그 부위를 잃고도 쉽게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만족하며 잘 살아갈 수 있을까? 내가 내 신체의 일부분을 잃었는데, 그래서 내가 미치지 않고 어떻게 버티고 있는지도 신기할 따름인데, 그들을 위해 밝게 웃는 모습까지 보여줘야 한단 말인가?


 긍정에는 힘이 있듯이 긍정사고를 가지는 것 또한 힘이 필요하다. 그리고 아무리 노력해도 긍정적으로 생각하기 어려운 일들이 있다. 그것은 그만큼 그 사람에게 가치가 높았고 소중했던 무언가를 잃었을 때 일 것이다. 누군가가 본인에게 소중한 것과 긍정을 바꾸자고 하면 바꿀 것인가? 그럴 사람은 없다고 본다.


 나는 이미 잃었고 살아는 가야 하니 억지로 억지로 긍정적으로 생각해보기도 한다. 언젠가는 의술이 매우 발달해서 내 몸을 고칠 수 있은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거라고. 그리고 이러한 생각을 하고 있는 내 자신이 바보 같고 처량해 회의감이 따라온다. 이것도 진정한 긍정은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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