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달리는 기차 마지막 칸을 보고 소원을 빌면 소원이 이루어진대요 -
며칠 째 불볕더위가 이어지고 있다. 낮에 길가에 세워 둔 차의 실내 온도를 보니 40.5도까지 올랐다. 밤에도 에어컨을 안틀면 잠을 잘 수가 없다. 더위 탓인지 점점 기운을 못 차리는 날이 많아져 몸보신도 할 겸 딸과 함께 찜닭을 먹으러 갔다. 이렇게 순전히 몸의 기력을 찾기 위해 식당을 찾은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맛나게 음식을 먹고 우리는 ‘아눅’이라는 카페로 향했다.
카페는 도심 속 넓은 강을 따라 펼쳐진 아름다운 숲이 통째로 보이는 곳에 있었다. 카페 2층에 자리를 잡고 넓은 창으로 풍경을 바라보았다. 이파리 사이로 옹기종기 열매를 키워낸 감나무와 오종종한 분홍 빛 꽃을 한 없이 피워 낸 배롱나무가 빼곡했다. 몽글몽글 흰색 구름과 푸른 하늘이 초록과 대비를 이루어 더 시원해보였다.
우리는 달콤한 에그타르트 맛에 탄성을 지르며, 시원한 커피를 마시고 있었는데, 딸이 갑자기 소리쳤다. “엄마, 기차가 지나가요!” 멈추어진 풍경에 움직이는 기차는 호수에 던져진 돌멩이처럼 새삼스러웠다. 어디로 향하는 지 모를 기차가 정말 빠르게 달리고 있었다. 멀리서 봐도 사람보다는 짐을 실어나르는 기차임을 쉽게 알 수 있었다.
달리는 기차를 보니 문득 남편 생각이 나서 딸에게 말했다. “예전에 아빠는, 지나가는 기차 마지막 칸을 보고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고 말했지.” 남편은 실제로 기차 꼬리 칸을 보면서 소원을 빌곤 했다. 운전을 하고 가면서도 “얘들아, 기차가 지나간다. 소원을 빌어!”라고 다급하게 말하곤 했다. 나는 남편의 소원이 무엇인지 궁금해 하지는 않고 단지 속으로 ‘참 유치하고 어린애 같네! 그런 미신을 믿다니 참 어이가 없네.“라고 생각하곤 했다.
딸에게 남편 이야기를 꺼내고 나니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중환자가 되어 이제 더 이상 말을 할 수도 움직일 수도 없는 남편을 생각하니 소나기처럼 슬픔이 밀려왔다. 우리는 이렇게 좋은 풍경을 보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그는 죽은 사람도 산 사람도 아닌 것 처럼 우리 곁에 있다. 함께 했던 추억들은 생생하게 살아나서 소나기처럼 한 번씩 슬픔으로 내린다. 그러면 바쁜 생활 속에서 잊고 지냈던 슬픈 현실이 다시 살아서 꿈틀거린다.
옆을 돌아보니 딸도 함께 눈물을 흘린다. 딸은 잠시 후 눈물을 쓱쓱 닦고는 “우리 참 사연 있는 모녀네요” 라며 다시 활짝 웃는다. 그녀의 웃음은 소나기 내린 뒤 활짝 갠 날씨만큼이나 맑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작은 추억은 때때로 우리를 슬프게 하지만 그 기억은 무엇과도 바꾸지 못할 소중한 것이리라. 지나가는 기차의 꼬리 칸을 보고 두 손을 모아 ’남편이 하루 빨리 건강을 회복하게 해 주세요!‘ 라고 마음속으로 빈 이야기를 딸에게 끝내 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