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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의 이세계(異世界)

네잎클로버를 찾으며 들어가는 나만의 작은 세계

by 책꽃 BookFlower


작고 반짝이는 초록의 이세계(異世界)


나는 내 인생의 반평생을 네잎클로버 찾기에 심취해 있었다. 이유를 말하라면, 도무지 설명할 수 없다. 다만 그것은 마치 영혼 깊은 곳에서 끌어당기는 듯한 감각이었다. 꼭 전생에 풀숲을 헤매던 토끼였던 것만 같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누구에게 배운 것도 아닌데도 나는 자꾸만 풀숲에 눈길을 주었고, 그 초록의 무리들 속에서 유독 네 잎을 향해 마음이 기울었다.


처음엔 그저 재미였다. 친구들과 놀다 우연히 발견한 한 잎이 작은 기쁨이 되어 돌아왔고, 그 기쁨은 곧 습관이 되었다. 시간이 흐르며 그것은 취미를 넘어섰고, 지금은 거의 본능처럼 굳어졌다. 아무도 바라지 않아도, 굳이 보여주지 않아도, 나는 어느새 네잎을 찾는 사람, 아니 네잎을 ‘느끼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이제는 서서도 네잎클로버를 발견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겼다. 숲이든 잔디밭이든, 클로버가 많은 곳이라면 남들보다 빠르게, 그리고 더 많이 행운을 발견해 낸다. 가끔은 산책을 하며 발끝을 향해 무심히 시선을 흘릴 뿐인데, 어느 틈엔가 초록의 숲 속에서 작고 특별한 네 잎이 반짝 눈에 들어온다. 그럴 때면 현실의 소음이 멀어지고, 눈앞에 작은 이세계(異世界)가 열리는 것만 같다.


인디언 기우제


얼마전에 지인과 같이 걸으며 산책을 했다. 내가 네잎클로버 찾아주겠다고 했더니 믿지 않는 눈치였다. 함께 걷는동안 그 분은 계속 말하고 있었고, 나는 네잎클로버 쪽을 살피며 천천히 걷고 있었다. 그러다 산책 끝에 결국 네잎클로버를 발견해서 줬더니 그분이 엄청 놀라워 했다. 그러면서 '인디언 기우제 같다'고 하셨다.


그날 이후, 네잎클로버를 찾을 때마다 '인디언 기우제' 이야기를 떠올린다. 비가 올 때까지 기우제를 지내는 그들처럼, 나는 찾을 때까지 찾는다. 안 보인다고 쉽게 포기하지 않고, 나올 때까지 자리를 떠나지 않으니 결국엔 꼭 하나는 손에 쥐게 된다. 이건 재능이라기보다 태도에 가깝다. 될 때까지 해보는 마음, 그리고 그 과정에서 스스로를 믿는 마음. 네잎클로버를 찾는다는 건 행운을 기다리는 일이 아니라, 내가 직접 그 행운을 맞이하러 가는 일이다.


나만의 '네잎클로버 리추얼'


언제부터였을까. 대학 시절 점심을 먹고 친구들과 산책할 때면, 나는 말없이 함께 걷다가 어느새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잔디밭을 스치는 눈길 끝에 클로버 한 송이가 반짝이면, 그 순간부터 세상과 단절되고 오직 그 ‘네 잎’만이 내 시야를 가득 채웠다. 도서관에서 공부하다가 머리를 식히러 나간 시간에도, 캠핑장 이른 아침 산책길에서도 나는 늘 클로버를 찾았다. 클로버를 책갈피에 끼워 말리다 보면, 가끔은 넣어둔 걸 까맣게 잊어버리곤 한다. 오래된 책을 펼칠 때, 우수수 쏟아지는 네잎클로버를 발견하고는 ‘유레카'를 외치기도 한다.


어느 순간부터 네잎클로버 찾기는 내게 하나의 리추얼이 되었다. 생각이 너무 많을 때, 걱정이 머릿속을 가득 채울 때, 나는 천천히 숲을 걷고 초록을 바라본다. 그리고 집중한다. 오직 '네 잎'에만. 그렇게 집중하기 시작하면 신기하게도 작은 기적처럼 네잎클로버가 보이기 시작한다. 심지어 한 자리에서 다섯 개 이상 찾기도 한다. 돌연변이처럼 연결된 뿌리에서 다섯 잎, 여섯잎이 함께 나올 때도 있다. 세상에 이런 일이 싶은 순간들이지만, 그 이상으로 나를 놀라게 하는 건 그 집중의 시간 동안 내가 얼마나 평화로워지는가 하는 점이다.


행운보다 더 소중한 집중의 기쁨


네잎클로버가 정말로 행운을 가져다주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그걸 찾고 있을 때 느껴지는 작은 기쁨,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예감,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이 잘 풀릴 것만 같은 믿음. 그 마음 자체가 나에겐 이미 행운이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나는 깨닫게 되었다. 세상의 많은 일들이 이와 같다는 것을. 의식하는 만큼 보이고, 집중하는 만큼 찾을 수 있다는 것을.


네잎클로버를 찾는 이 의식은 일상의 명상이자, 현실에서 살짝 벗어나 내 안으로 들어가는 비밀 통로였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에 마음이 끌리는지 알아채는 감각은 인생을 풍요롭게 만드는 가장 근본적인 능력이다. 그것을 알고 살아가는 사람은 어떤 시련 앞에서도 다시 제 방향을 찾을 수 있다. 인생이란 결국 평생 나를 궁금해하고, 나를 연구해 가는 여정이라는 말처럼 말이다.


삶이 어지럽고 마음이 복잡할 때면 나는 다시 클로버가 피어 있는 숲 속을 걷는다. 머리를 비우고, 마음을 내려놓고, 지천에 널린 초록 잎 사이에서 네 잎을 찾는다. 그것은 단지 ‘행운을 찾는다’는 행위가 아니라, 나를 마주하고 집중하는 연습이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작은 희망 하나가 손끝에 와닿는다.



될 때까지,
찾을 때까지.

네잎클로버를 찾는 건

행운을 마중하는

나만의 리추얼.



네잎 클로버


삶이 어지럽고

마음이 복잡할 때면

숲 속을 걷는다.


머리를 비우고,

마음을 내려놓고,

지천에 널린 초록 잎 사이에서

네 잎을 찾는다.


행운을 마중하는

나만의 리추얼.


그것은 단지

행운을 찾는 행위가 아니라,

나를 마주하고 집중하는 연습이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작은 희망 하나가 손끝에 와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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