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의 파도를 타는 법
살다 보면 우리는 늘 감정이라는 파도 위에 서게 된다. 기쁨의 파도는 반갑지만, 화와 서운함, 두려움의 파도는 쉽게 휩쓸린다. 어떤 날은 파도를 억지로 막아보려 하고, 또 어떤 날은 그대로 휘말려 쓰러지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묻게 된다. 도대체 감정을 어떻게 대해야 제대로 살아갈 수 있을까?
많은 사람들은 ‘감정을 다스린다’는 말을 ‘억누른다’는 의미로 오해한다. 그러나 억누른 감정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눌린 감정은 곧 다른 형태로 터져 나오고, 결국 더 큰 파도로 우리를 덮친다. 다스림이란 부정이 아니라 조율이다. 화가 치밀어 오를 때 곧장 반응하지 않고, 한 박자 늦게 숨을 고르는 것. 서운한 마음을 무시하지 않고, ‘아, 내가 지금 서운하구나’ 하고 알아차리는 것. 때로는 글로 기록하거나 잠시 자리를 벗어나 차분히 나를 바라보는 것. 그 순간, 감정은 나의 주인이 아니라 나의 손님이 된다. 내가 감정에게 끌려다니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내 안에서 조율할 수 있는 주체가 되는 것이다.
모든 감정은 본래 잠시 머물다 가는 손님이다. 붙잡을수록 오래 머물고, 흘려보낼수록 금세 사라진다. 하늘을 떠다니는 구름처럼, 물 위에 일렁이는 물결처럼 감정은 흘러가도록 만들어져 있다. 문제는 우리가 자꾸 감정과 자신을 동일시한다는 데 있다. 종종 스스로를 ‘불안한 사람’, ‘화가 많은 사람’이라고 규정해 버리기도 한다. 하지만 감정은 그 자체가 내가 아니라, 내게 잠시 머문 현상일 뿐이다. 불안이 찾아올 때 “또 그 손님이 왔구나” 하고 가볍게 인사하면 신기하게도 시간이 지나면 불안은 떠난다. 감정을 손님처럼 맞이하고, 떠날 때는 고이 보내는 것. 이것이 흘려보낸다는 태도다. 억누르지 않고, 붙잡지도 않고, 흘려보내는 것이다.
나는 “내가 뒤끝은 없어”라고 말하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겉으로는 쿨해 보이지만, 그 말에 앞서 던진 날 선 표현들은 오래도록 상대의 마음에 남는다. 결국 뒤끝이 없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뒤끝을 상대에게 떠넘기는 셈이다. 반대로 진짜 뒤끝 없는 사람은 불편함을 정중히 짚되 감정적으로 몰아붙이지 않는다. 대화를 자연스럽게 이어가며, 마지막에는 웃음으로 마무리한다. 배려가 배어 있는 그 자연스러운 태도에서야말로 성숙한 어른의 향기가 묻어난다.
솔직함은 상대를 겨누는 화살이 아니라, 나를 드러내는 용기다. 솔직함은 무례와 다르며, 진정한 솔직함은 상대를 해치지 않고도 진실을 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표현은 감정을 터뜨려 관계를 끊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통해 관계를 이어가는 길이 된다. 상대는 방어하지 않고, 나 역시 억울하지 않다. 결국 표현이란 상대를 향한 칼날이 아니라, 이해를 열어주는 문이 되어야 한다.
감정을 다스린다는 건 내 안의 주인이 되는 일이고, 흘려보낸다는 건 감정의 흐름을 신뢰하는 일이며, 솔직하게 표현한다는 건 관계 속에서 진짜 나를 세우는 일이다. 우리는 감정을 없앨 수 없다. 다만 그와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울 뿐이다. 마치 파도 위에 선 서퍼 같이 말이다. 파도를 억지로 없애려는 순간, 쓰러진다. 그러나 파도의 흐름을 인정하고, 그 힘을 타며 균형을 잡을 때 바다 위에 설 수 있다. 감정도 그렇다. 억누르지도, 방치하지도, 폭발하지도 않고, 그 사이 어딘가에서 균형을 찾을 때 감정은 우리를 삼키는 파도가 아니라 우리가 함께 흐를 수 있는 리듬이 된다.
「죽음의 수용소에서」의 저자 빅터 프랭클은 '최악의 상황에서도 인간이 마지막까지 지킬 수 있는 자유는 자신의 태도를 선택할 자유'뿐이라고 했다. 감정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야말로, 삶을 성숙으로 이끄는 가장 확실한 길이다. 자기 마음을 책임지며, 타인의 마음을 존중하는 것. 그 순간 우리는 나이라는 숫자를 넘어, 진짜 어른으로 서게 된다.
감정을 다루는 태도는 결국 어른다움의 깊이를 드러낸다. 감정을 표현할 때는 솔직함과 무례 사이의 경계를 지키고, 솔직함과 배려 사이의 균형을 찾아야 한다. 그것은 상대를 위한 예의이자, 결국 나 자신을 지켜내는 방법이다. 감정이 소용돌이칠 때, 나는 촛불을 켜고 흔들리는 불빛을 오래 바라본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고요가 찾아오고, 내 안도 고요해진다. 나는 이 ‘흔들림 속 고요함’을 사랑한다. 감정은 늘 스쳐 지나간다. 파도를 타듯, 손님을 맞이하듯, 그 흔들림 속에서 균형을 찾을 때 우리는 비로소 내면의 어른을 마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