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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총량의 법칙

눈물이 없는 눈에는 무지개가 뜨지 않는다.

by 책꽃 BookFlower

“엄마, 나 학교 그만 갈래.”


고등학교 2학년 딸아이가 울면서 말했다.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학교 폭력이라도 있었나 싶어 눈치를 살폈다.


“왜? 무슨 일 있어?”


“아니. 이제 그만할래. 혼자 공부하고 검정고시랑 수능으로 대학 갈래. 학교 다니는 게 공부만이 아니고 인간관계를 배우는 거라고 해서 동아리 부장도 하고 수행평가도 항상 열심히 하고, 다 잘했어. 이 정도면 됐다고 생각해. 이제 그냥 혼자 할래.”


말문이 막혔다. 반에서 이미 자퇴한 아이가 둘 있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성적이 특별히 뛰어난 것도 아닌 우리 아이가 이런 폭탄 선언을 할 줄은 몰랐다. 기말고사를 망친 게 큰 영향을 미쳤을 터였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안 돼”라며 잘라낼 수도 없었다. 인생의 굴곡을 겪어온 나는 ‘살아 있으니 이런 사고라도 치는 거지.’라고 생각했다.


“그래, 그런 생각할 수도 있지. 아빠 오면 한번 설득해 봐. 내가 아빠까지 설득해 줄 수는 없을 것 같아.”


나는 일단 이야기를 다 들어주고 마지막엔 공을 남편에게 넘겼다. 절대 허락하지 않으리라 믿으면서. 그런데 아이는 아빠를 설득하기 위해 편지를 세 장이나 썼다. 첫 문장은 이랬다.


“아빠는 인생을 살면서 한 번쯤 다시 돌아가고 싶었던 적이 없었나요?”


지금 이 선택을 하지 않으면 평생 후회할 것 같다는 이야기였다. 이어서 공부 계획, 식사 습관, 운동 계획까지 빼곡히 적혀 있었다. 뜻대로 되지 않으리라는 걸 우리 부부 모두 알고 있었지만, 묘하게 설득이 되었다. 하고자 했던 일을 결국 돌아와서라도 하게 되는 게 인생의 진리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일까. 남편도 큰 반대는 하지 않았다. 선생님은 2주의 숙려 기간을 권했지만, 아이의 결심은 확고했고 일주일 만에 자퇴가 처리되었다. 내 딸이 말로만 듣던 ‘학교 밖 아이’가 되었다.


돌이켜보면 그때는 마치 홀린 듯 지나갔고, 이미 되돌릴 수 없는 일이 되어 있었다. 멍하니 있던 순간, 남편이 돌멩이 하나를 툭 던졌다.


“이거, 잘한 걸까?”


나는 그제야 마음을 다잡았다. 이제 서로를 불안하게 할 말은 하지 말자고. 이미 결정된 일 앞에서는 걱정보다 응원과 격려만이 옳다고 믿었다. 그리고 가족 단톡방에 글을 남겼다.


‘이제 후회는 소용없어. 인생은 선택과 책임의 연속이야. 앞으로 생길 문제들 앞에서 더 나은 선택을 해 나가면서, 서로에게 응원과 격려만 하자.’


부모란, 아이가 세상에서 버려졌다고 느낄 때 가장 먼저 떠올릴 사람이자, 모두가 등을 돌려도 끝내 찾아올 수 있는 마지막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두려움과 걱정을 품은 채 아이의 자퇴 생활은 시작되었다. 식사와 간식, 학습지와 동영상 강의까지 모든 것이 내 손에 달려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남편과 내가 번갈아 가며 이것저것 해봤지만 정성껏 차린 밥상보다 배달음식에 기대는 날이 많았다. 아이의 건강을 위해 최선을 다하지 못했다는 마음의 불편함이 늘 따라다녔다. 그제야 학교라는 울타리에 아이를 맡기며 내가 얼마나 편하게 지내왔는지를 새삼 깨달았다.


그렇게 1년이 흘렀다. 감사하게도 아이는 불평 없이 그 시간을 버텨냈고, 단 한 번의 기회였던 검정고시도 높은 성적으로 합격했다. 최근에 수능 원서까지 무사히 접수하고 나니, 문득 ‘사고 총량의 법칙’이 떠올랐다. 큰 사기를 당하며 나 자신의 몫을 치렀고, 이어서 아이는 자퇴라는 낯선 선택으로 우리 가족을 시험대에 올려놓았다. 남편은 잔잔한 듯 보이지만 자주 우리 가정에 작은 불화와 위기를 몰고 왔다.


“눈물이 없는 눈에는 무지개가 뜨지 않는다.”


얼마 전 동료가 알려준 이 문장이 마음에 남았다. 아픔만큼 성숙하고, 고통만큼 성장하는 게 결국 인간이지 싶다. 만약 인생에 치러야 할 고통의 총량이 정해져 있다면, 이제 우리 가족의 몫은 조금은 줄어든 게 아닐까. 다음은 무지개가 떠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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