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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 먼저다

직장에서 좋은 관계 맺기

by 책꽃 BookFlower

일이 먼저다


직장에서 만난 사람들과는 깊은 친구가 되기 어렵다.

같은 공간에서 가족보다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하루 세끼 밥을 먹고, 때로는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하지만 결국 우리를 하나로 묶는 끈은 ‘일’이다. 그 끈이 단단해야 관계도 오래간다. 일 앞에서는 때로는 불편한 말을 해야 하고, 차갑게 들릴 수 있는 지적을 건네야 한다. 아무리 마음이 잘 맞아도 업무라는 목적이 얽히는 순간 불편함은 생기기 마련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그런 지적을 감정으로 받아들이곤 한다. 친하게 지내다가도 개선을 위한 피드백을 하면 네가 어떻게 그럴 수 있냐는 눈빛을 보낸다. 하지만 직장에서의 관계는 어디까지나 일이 먼저다.



일에 대한 솔직함이 곧 진짜 배려다


일이 먼저라고 말하는 것은, 인간적인 배려가 불필요하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다. 감정을 존중하기 때문에 일에 관한 이야기는 더욱 솔직하고 명확해야 한다. 나는 새로운 팀원을 맞을 때마다 팀의 철학을 공유한다.

“업무에 관한 지적은 감정이 아니라 완성을 위한 것이다. 불편하더라도 서로 편하게 말하고, 또 받아들이자.”

이 원칙을 나누면 불필요한 오해가 줄어든다. 업무적 언어를 분명히 쓰는 것이 상대를 존중하는 방법이다. 애매하게 돌려 말하거나 모호하게 표현하는 것은 결국 서로를 더 피곤하게 만든다. 차라리 명료하게 말하고, 그 속에서 성장의 기회를 찾는 것이 낫다.


그럼에도 직장에는 여전히 술자리나 흡연실에서 험담으로 동지애를 쌓는 문화가 남아 있다. 정치적 줄 서기와 사적인 유대가 일의 질을 좌우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방식은 결국 조직의 공기를 흐리고 성과를 갉아먹는다. 우리가 나눌 수 있는 가장 건강한 동지애는 각자의 역할을 성실히 수행하며 서로의 성과를 높여주는 것이다. 차갑게 들릴 수 있는 명확한 지시와 피드백, 구체적인 제안과 개선이야말로 진정한 존중이다.


팀장의 무게


팀장이 되고 나서 가장 크게 느낀 것은 ‘결정의 무게’였다. 하루에도 수십 번 크고 작은 결정을 내려야 한다. 행사 운영 방식을 어떻게 할지, 팀원들의 역할을 어떻게 나눌지, 어떤 자료를 공식으로 쓸지 등등. 어떤 날은 너무 많은 선택을 쏟아내다 머릿속이 멈춰버리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깨닫게 된다. 팀장은 모든 일을 다 해내는 사람이 아니라, 방향을 제시하고 적절히 위임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말이다.


팀장인 내가 직접 해결할 수도 있지만 다 해서는 안 된다. 위임은 미루기가 아니다. 책임을 나누고, 신뢰를 표현하는 방식이다. 적절한 시점에 일을 나누어 맡기고, 과정에서 피드백을 주며, 최종 결과를 점검하는 것. 그것이 진짜 위임이다. 팀장이란, 결정의 철학을 공유하며 구성원들이 역량을 펼칠 수 있는 장을 열어주는 사람이다. 모든 세부를 직접 통제하려는 순간 팀은 흔들린다. 팀원에게 맡기되 방향은 분명히 제시하는 것, 그것이 팀장이 짊어져야 할 무게다.


‘아름다운 선’ 안에서의 친밀함


나는 일로 맺은 관계를 이렇게 정의한다.

'아름다운 선 안에서 친밀한 관계'

그 선은 경계가 아니라 균형이다. 일과 감정을 구분하는 선, 업무적 거리와 인간적 거리를 조율하는 선. 그 선을 지켜야 일이 먼저라는 원칙이 흔들리지 않는다. 선 안에서라면 충분히 친밀해질 수 있다. 서로의 삶을 응원할 수 있고, 작은 배려와 따뜻한 마음도 나눌 수 있다. 때로는 은밀한 취미들도 공유한다. 나의 독서와 문구애호가 취향이나 마라톤 취미 같은 것 말이다. 함께 일하던 팀을 떠날 때나 장기 출장에서 함께 했던 팀이 흩어질 때마다 한 두명의 취미 공유자들과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직장내에서도 직접적인 일로 얽히지 않은 관계들은 다른 방식으로 더 친밀할 수 있다.


거리가 부족하면 예상치 못한 순간에 깊은 상처를 받는다. 그러나 일이 우선이라는 원칙을 공유하면 어떤 말도 자연스럽게 오갈 수 있다. 명확한 지시, 수평적인 대화, 적절한 피드백은 결국 좋은 결과를 만든다. 그리고 그 결과 앞에서 함께 웃을 때, 신뢰는 더 단단해진다. 마음만으로는 일을 할 수 없다. 누구나 부족한 부분이 있다. 그 부족함을 서로 채워줄 수 있을 때 일의 퀄리티도 높아지고 관계의 만족도도 깊어진다. 결국 함께 일하고 싶은 동료란 작은 배려와 책임감을 공유하는 사람이다.


결국, 일이 먼저다


나는 직장에서 만나는 모든 이에게 말하고 싶다.

“회사에서는 무엇보다 일이 먼저다.”

이 말은 차갑고 비정하게 들릴 수도 있다. 그러나 결코 그렇지 않다. 일이 먼저라는 원칙을 붙드는 순간 관계는 오히려 선명해지고 오래간다. 결과가 우리를 하나로 묶고, 그 앞에서 느끼는 성취와 기쁨이 관계를 돈독하게 만든다. 일이 잘 될 때 우리는 더 크게 웃을 수 있다. 일이 중심이 될 때 우리는 더 오래 함께할 수 있다.


우리는 결국 일을 통해 만난 사람들이다. 그렇기에 일은 우리의 첫 번째 언어이자 관계의 기초다. 일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책임감, 그리고 그 안에서 서로를 존중하는 배려. 그것이 프로의 자세이자 동료와 나를 지키는 첫걸음이다.


언젠가 회사를 떠나거나 팀이 흩어져도, 함께한 시간 속에서 서로를 떠올리면 “그 사람과 일할 때 힘들었지만 참 좋았다”라는 기억으로 남았으면 좋겠다. 일이 먼저인 관계에서 싹트는 신뢰는 오래간다. 결국 좋은 동료란, 일과 마음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나는 오늘도 더 많이 다정하고 싶은 마음을 다잡으며 조금 덤덤하게 직장 동료, 선후배들을 대하며 다짐한다.


일이 먼저다. 그 일이 잘 끝났을 때, 우리는 더 크게 웃고 서로에게 좋은 사람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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