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st run my race.
그녀는 딸아이의 친구 엄마였다. 말이 잘 통했고, 마음까지 읽히는 것 같아 ‘소울메이트’라는 말을 떠올리게 했다. 돌이켜보면, 그녀가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방식은 코로나 시절 한때 논란이 됐던 ‘신천지 포교 수법’과도 닮아 있었다. 학교 워킹맘들이 겪는 불편한 지점을 너무도 정확히 짚어냈고, 마치 해결사처럼 나서 주었다. 반 아이들을 모아 체험학습이나 소소한 여행도 자주 함께 다녀주고, 학교생활에 소홀한 같은 반 워킹맘들을 하나로 묶어 주었다.
어려운 사정을 듣고는 은행 이자 수준으로 빌려준 것이 전부였다. 공증까지 마쳤으니 괜찮을 거라 안심했다. 하지만 이후에도 몇 차례 금전 거래가 이어졌고, 어느새 나는 감당할 수 없는 지경까지 발을 들여놓고 있었다. 불안이 슬그머니 밀려오던 어느 날, 주변에서 하나둘 이상한 이야기들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나 혼자만이 아니었다.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큰 사건에 연루된 것을 알게 됐다. 학부모, 교회 지인들, 오랜 친구들까지 수많은 사람이 얽힌 대형 사기 사건이었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나는 그녀를 믿고 싶었지만, 나에게 연락을 준 사람들 중에는 10년 넘게 가족처럼 지낸 지인도 있었다. 이 모든 사건이 병합되고, 수사가 마무리되어 갈 무렵, 그녀는 끝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최후였다. 충격과 죄책감, 배신감이 동시에 몰려왔다. 그날 이후, 나는 ‘소울메이트’라는 단어를 세상에서 가장 거짓되고 위험한 말로 여기게 되었다.
누군가의 인생을 구해내겠다는 오만한 마음에서 시작된 일이었다. 사기를 당하고, 경찰서를 드나들며 내 삶은 송두리째 무너졌다. 인생이 ‘리셋’된 느낌이었다. 경제적으로 힘들었던 3년의 긴 터널 끝은 또 다른 지옥과 맞닿아 있었다. 나를 늘 위로해 주던 동생마저 스스로 세상을 떠났다. 감당할 수 없는 상실 앞에서, 남겨진 가족에게까지 아픔을 대물림할 수는 없다고 다짐하며 겨우 버텼다. 살아내기 위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책을 붙잡았다. 좋은 문장을 따라 쓰며, ‘살아 있는 것 자체가 이타적 행위다’라는 말을 곱씹으며 버텨내고 있었다. 그 와중에 체력은 바닥을 찍고, 코로나에 걸려 한 달 가까이 앓아누웠다. 격리 해제 후에도 무기력은 사라지지 않았다. 체중계는 인생 최대 몸무게를 찍고 있었다. 몸도 마음도 완전히 바닥이었다.
남편이 러닝화 한 켤레를 건넸다. 내 첫 러닝화, 흰색 나이키 줌플라이. 달리기는 초등학생 이후 처음이었다. 첫날은 30초도 못 뛰었다. 1분 달리고 2분 걷기를 반복하는 초급자용 러닝앱을 따라 시작했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고, 발목이 아팠다. 그래도 ‘할 수 있어요’라는 앱 속 목소리에 이끌려 주 3일, 30분씩 걷뛰 달리기를 이어갔다. 24회로 끝나는 초급 코스를 나는 31회 만에 완주했다. 도장을 하나씩 찍을 때마다 잃어버린 자존감이 조금씩 되살아났다.
혼자 달리며 듣는 발소리, 흔들리는 숨소리. 그 모든 순간이 나를 다시 정돈해 주었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심장이 뇌에 달린 듯 쿵쾅거리는 순간들. 아무 생각도 할 수 없는 그 몰입의 시간이 좋았다. 숨이 벅차오를 때마다 심장 소리를 들으며, 살아 있음에 감사했다. 많은 고통을 통해 삶이 내게 가르쳐준 가장 큰 교훈은 '누구나 아는 이야기'이다. 인생은 마라톤이라는 것. 단번에 끝나지 않는다. 때로는 걸어야 하고, 멈춰야 하며, 물도 마시고 숨도 고르며, 끝까지 가야 한다. 남들과 비교하지 않고, 나만의 속도로 뛰는 것, 그것이야말로 인생을 제대로 살아가는 방식이었다.
무겁고 느려도 괜찮다. 나만의 페이스로, 나만의 리듬으로 나아가는 이 걸음이, 분명 내 삶을 앞으로 밀어주고 있다는 것을 안다. 달리기를 하며 처음으로 내 몸과 마음이 연결되는 감각을 느꼈다. 하루하루 기록을 쓰고, 자세를 교정하며, 마라톤 관련 책을 찾아 읽었다. 그렇게 2년이 흘렀을 때, 10km를 달릴 수 있게 되었다. 이제는 하프 마라톤도 두 번 완주했고, 풀코스를 꿈꾸며 달리고 있다. 여전히 ‘조금 무거운 아줌마’지만, 나는 달리며 내 삶을 다시 세워가고 있다.
주저앉았던 만큼 더 멀리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매일매일이 인생이라는 긴 레이스의 한 걸음이라는 것을 안다. 삶이 벅차 주저앉고 싶을 때마다, 나는 다시 뛴다. 그 무게를 떨쳐내고, 다시 나를 일으켜 세우기 위해. 또 내가 선택한 내 삶을 끝까지 살아내기 위해. 그리고 마침내, 나만의 속도로, 나만의 인생 마라톤을 완주하기 위해 달려 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