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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 존중

우리 사랑은, 서로의 기쁨을 존중하는 것부터

by 책꽃 BookFlower

가족에게 사랑을 표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함께하는 시간’이라고 믿었습니다. 함께 식사하고, 여행하고, 대화를 나누면 자연스럽게 사랑이 자란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깨달았습니다. 함께 있어도 마음이 닫혀 있으면, 그 시간은 공허하게 흘러간다는 것을요. 저희 집을 ‘셰어하우스’라고 부르게 된 이유와도 닿아 있을 것 같습니다. 이제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내 기쁨을 지키는 일은 곧, 사랑을 지키는 일입니다. 사랑은 무조건적인 맞춤이 아니라, 내가 기쁠 수 있는 나를 유지하는 데서 시작됩니다. 나의 기쁨이 살아 있을 때, 그 온기와 여유가 사랑하는 사람에게도 전해집니다.


문구애호가. 나를 가장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단어입니다. 저는 어릴 적부터 문구를 사랑했습니다. 펜, 샤프, 형광펜, 만년필, 노트까지 다양하게 모았습니다. 큰 필통을 두고 나간 날이면, 불편함을 견디지 못해 택시를 타고 집에 다녀온 적도 있었습니다. 사람마다 기쁨을 느끼고 위로받는 장소가 있습니다. 누군가는 카페에서, 누군가는 바닷가에서 마음을 달랩니다. 저에게 그곳은 언제나 서점과 문구점이었습니다. 특히, 문구점에서 형형색색의 펜과 반듯하게 포개진 노트를 바라보고 있으면, 마냥 설렜습니다. 마치 제게 이렇게 속삭이는 듯했습니다. “괜찮아, 마음껏 사랑해. 문구애호가.”


결혼 전에는 이런 취향을 굳이 나누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철저히 혼자만의 즐거움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결혼을 하고, 함께 경제생활을 하다 보니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취향의 규모가 커지면, 그것은 단순한 나만의 기쁨이 아니라 ‘누군가의 시선 속에서의 기쁨’이 됩니다. 그 시선이 곱든 곱지 않든, 결국 기쁨은 평가와 판단의 대상이 됩니다. “또?”라고 말하는 듯한 눈빛에 기쁨이 움츠러드는 순간이 찾아옵니다.


“상대가 행복을 찾는 특유의 방식에 간섭하지 말아야 한다. 단, 그 방식이 우리의 방식을 폭력적으로 방해하지 않는다면.” 데일 카네기의 <인간관계론>에서 행복한 결혼생활 편에 나오는 문장입니다. 결혼 생활이란 ‘나의 기쁨’만 지키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기쁨’을 지켜주는 일이기도 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 마음이 있어야 ‘우리’라는 관계가 오래갑니다. 사랑을 오래 가게 하는 힘은 결국, ‘서로의 기쁨을 존중하는 마음, 기쁨 존중’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얼마 전, 독서모임에서 만난 한 친구가 쓴 글을 읽었습니다. 그 친구는 ‘메타몽’을 좋아하는 포켓몬 마니아였습니다. 게임 발매일에 아버지와 함께 오픈런을 나갑니다. 가는 길에는 아버지가 좋아하는 영화 이야기를 들어주고, 아버지는 포켓몬을 잘 모르면서도 아들이 하는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줍니다. 그 모습이야말로 ‘기쁨 존중’이고, 서로의 기쁨을 ‘이해하려는 노력’이야말로 그 자체가 대화이고, 사랑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문득 저희 가족을 돌아보았습니다. 나는 과연 그만큼 해왔을까? 남편은 등산을 좋아합니다. 고가의 등산복, 산악용 신발, 각종 장비들. 그의 장비 개수는 ‘지네발’이라는 별명을 붙일 정도입니다. 저는 한때 그의 장비 사랑이 너무 과하다고 생각했지만 아무 말하지 않는 것으로 저의 존중을 표시했습니다. 그러다 러닝을 시작하고 나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좋은 장비가 기분과 성과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요. 하지만 돌이켜보면, 저는 그의 취향을 존중한다고 말했지만, 응원한 적이 거의 없었습니다. 남편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내가 책을 한 아름 사거나, 문구를 집에 들일 때 그는 불만을 말하진 않았지만, 아주 미세한 ‘못마땅함’의 눈빛을 보냈습니다. 말보다 눈빛이 더 깊게 박히는 순간이 있습니다. 그 작은 표정 하나에 마음이 스르르 닫히기도 하는 법이니까요.


우리의 그런 태도는 딸아이에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꾸미고 화장하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를, 저는 ‘아직 어린데’라는 시선으로 바라보았습니다. 그 불편함이 표정과 말투에 고스란히 묻어났을 것입니다. 생각해 보니, 참아주는 것도, 허락하는 것도 존중이 아니었습니다. 존중이란, 상대가 자신의 기쁨을 이야기할 수 있게 해 주고, 그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며 “아, 당신은 거기서 기쁨을 느끼는구나” 하고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 인정 속에서 사람은 편안해지고, 사랑받고 있다고 느낍니다.


결국, 내 기쁨을 지키는 일은 곧, 사랑을 지키는 일입니다. 나의 기쁨이 단단할수록, 그것은 사랑하는 사람의 기쁨과 맞물려 더 크고 깊은 관계를 만듭니다. 그래서 저는 앞으로도 제 기쁨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할 것이고, 그것을 바탕으로 가족의 사랑을 오래 이어가고자 합니다. 행복한 가족을 위해 꼭 필요한 것은 두 가지뿐일지 모릅니다. 첫째, 나만의 기쁨을 꾸준히 누리려는 마음. 둘째, 사랑하는 사람의 기쁨을 불안으로 바꾸지 않게 지켜주려는 결심입니다. 내 기쁨이 소중한 만큼, 당신의 기쁨도 소중하다고 말해주고, 그 기쁨을 비난하거나 줄이지 않겠다는 약속. ‘온 가족이 각자의 기쁨을 온전히 누릴 수 있도록 돕는 일’이야말로, 제 기쁨을 지키고, 가족의 사랑을 단단하게 하는 비밀입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끝까지 붙잡고 가야 할 과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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