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적동 봄을 그리다(11)
미국에서 닭 전염병으로 인해 계란 공급량이 증가해 가격이 폭등했다고 한다. 한국도 몇 해 전 조류독감으로 살처분이 심각해 미국에서 계란을 수입한 적이 있다.
그런데 주목할 점은 미국 농무부장관이 집집마다 닭을 키워 계란을 자급하자는 제안을 했다는 점이다.
이북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는데 이북이 말하는 90년대 고난의 행군 시기 평양시내 아파트에서도 닭을 베란다에 키웠다고 한다. 평양시민으로 국정원에 속아 남한에 강제 억류 중인 평양시민 김련희 씨가 해준 말이다.
한국은 조류독감이 심각해지면 그 책임을 소규모 농가에 돌려 소규모 사육농가의 닭을 전부 살처분해 버린다. 이점이 한국정부의 특이한 점이다.
몇 해 전 우리 집도 곤욕을 치렀는데 공무원들이 집집마다 닭을 키우는지 확인해 가며 전부 살처분했다.
정부의 주장처럼 소규모 사육농가에서 조류독감균이 대규모공장농장으로 전염되었다는 증거는 없다. 그저 그들의 소규모에 대한 혐오가 만들어낸 광기적 행동일 뿐이었다.
한국정부는 소규모를 혐오하고 증오한다. 모든 정부 정책에 소규모혐오가 전제되어 있다. 모든 가축은 소규모사육이 문제라고 혐오하는 자들이 한국의 위정자며 공무원이다.
소규모 혐오주의는 친일잔재다. 대일본제국에 대한 무조건적 충성으로 무장된 사대주의의 결과물이다. 일본은 조선땅에서 물러갔지만 일본을 추종했던 인간들은 부와 권력을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다. 일본의 자리를 차지한 미국의 개가 되어.
우리 집은 농사를 시작하면서 지금까지 줄곳 닭을 키우고 있다. 가난했던 시절 우리 가족의 주요 단백질 공급원이 닭과 계란이었다. 그래서인지 우리 가족의 계란 사랑은 대단하다.
겨울에는 계란을 서너 개 안팎으로 낳는데 기온이 오르니 두 배 이상 늘었다. 거위도 이틀에 하나씩 낳고 있다. 우리 집 닭은 종류가 다양해 계란 색깔도 다양하다. 푸르고 노랗고 등등.
닭을 키우면 솔직히 일이 많다. 먹이도 주어야 하고 닭장 관리도 해야 하며 들어간 비용대신 딱히 효율적이라고 단정하기도 무리다.
하지만 유정란을 먹을 수 있으며 비린내가 없는 고소한 맛을 즐길 수 있으며 아주 신선한 계란을 먹을 수 있다. 또한 닭 울음소리가 정겨움을 더해준다. 그리고 가끔씩 맛난 촌닭고기도 먹을 수 있다.
이러한 것들은 돈의 가치로 환산되지 않는 가치다. 자본주의사회라고 돈이 절대적 가치로 규정되지 않으며 돈으로 인해 잃어버린 가치가 너무도 많다.
우리 집 닭들은 공장의 닭들보다 자유롭다. 더 많은 자유를 부여해주고 싶지만 자연은 닭만 있는 게 아니라 공존의 질서를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
우리는 상식이 왜 통용되지 않는가? 스스로 자문해야 한다. 소규모 닭은 키울 수 없다는 비상식이 왜 존재하는지? 또한 먹거리에 포장된 거짓의 실체에 대한 사유가 필요하다. 주는 대로 먹는 것은 결국 영화 설국열차에 꼬리칸 사람들의 단백질 비즈다. 현실은 영화보다 더하단 게 우리나라 먹거리의 실체적 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