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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변의 발화 Dec 22. 2022

혼밥하기

아무말 안하지만,

 오늘 저녁은 혼밥을 했습니다.

 사실 이 글을 쓰기 시작한 것도 혼자 앉아서 밥을 입에 넣고 우물우물 씹으면서 였습니다.



 남편은 오늘 회사 송년회가 있어서 술을 안좋아하는데도 불구하고(대체 왜 그게 가능한지..?) 술자리에 가게 되었습니다. 아내가 혼자 저녁을 대충 때울까봐 걱정하며 집으로 치킨이나 피자라도 시켜줄까 했지만 저는 아니,라고 답하고 남편과 둘이 방문한 적이 있는 가츠동 집에 왔습니다. 추천메뉴라고 되어있는 11,800원짜리 나름 개중 비싼 메뉴를 시켜놓고 주위를 보니 작은 식당에는 직원들 외엔 저 혼자 였습니다. 직원들은 제가 없는 것과 큰 차이 없게 오픈 주방에서 배달주문이 몇개 들어왔는지와 재료 소진을 이야기 하고 있었습니다.



 혼밥에는 익숙합니다. 대학 때도 종종 했지만 특히 신림동에서 공부할 때는 주중에 누군가와 같이 밥을 먹은 적이 한 손가락에 꼽습니다. 거의 대부분 독서실 바로 앞의 고시식당에서 동그란 접시에 밥을 한가득 담고, 드레싱없이 샐러드에 비계가 붙어있는 고기를 꾹꾹 퍼서 아무도 없다는 듯이 적당한 자리에 앉아 핸드폰을 하거나, 고시식당에 매달린 티비에 나오는 뉴스를 보며 밥을 먹었습니다. 지금도 같은 생각인데, 혼밥의 묘미는 아무도 없다는 듯이 식사를 하는 것입니다. 주변에 관심을 끄고, 내가 저사람에게 관심이 없으니 저사람도 나에게 관심이 없겠어니, 하는 무심한 마음으로 식사를 합니다. 밥을 꽤나 크게 푸고 고개를 살짝 오른쪽으로 틀며 숟가락을 입에 넣습니다. 우적우적 씩씩하게 음식을 씹고 삼키고 주변의 모든 것에 초연한 듯한 시선처리, 적당히 주변도 둘러보고 갸웃거리면서 먹는 것 정도는 충분히 가능합니다.



 오늘도 오랜만에 밖에서 그렇게 혼자 식사를 했습니다. 각자 할일 하고 만나는 것 같은, 집에서의 남편과 만나는 일이 오늘 같은 날엔 '아 맞다, 나 맞벌이 부부이지!' 하는 생각을 들게 합니다. 그렇게 가츠동을 남기지 않고 잘 먹었습니다. 먹으면서 천천히 생각을 합니다. 혼밥을 그렇게 많이 했었는데, 하루에 두번씩 아니 세번씩(그와중에 아침도 챙겨먹었기 때문에) 한 적도 있었는데, 혼밥을 할 때면 정말 나와 나 자신과 식사를 하는 느낌이랄까. 익숙하면서 옛 생각이 나면서 그때의 어려움도 생각이 나면서..  잠시 여러 생각에 빠지기도 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내가 왜 혼자 밥을 먹는다고 생각할까?라는 생각이 어렴풋이 들 때도 있는데(물론 대부분의 직원이 신경을 안쓰고... 빨리 먹고 나가줄수록 좋은 거라는 생각은 하는 편입니다.) 이제 혼자 밥먹는 것에 어느정도 여유가 생긴 것 같습니다. 혼밥을 하는 사람을 처량맞게 생각하고, 친구도 없나, 라고 생각하던 때와 시기가 있었던 것은 알고 있습니다. 신림동 고시식당에서도 변호사시험장에서도 똑같이 혼밥을 했는데, 지금은 나이가 들어서, 경력이 생겨서 혼밥이 편안하게 느껴질까요?

 


 주변 사람들은 변호사가 되어 좋겠다, 라는 말을 쉽게 합니다. 변호사라는 직업이 어떻게 보면 대단해보일 수 있지만 생활인1이라는 점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다만 어쨌든 저는 제가 한 포기했던 것에 다시 도전해서 성공했다는 점에서 변호사시험합격이 다른 사람들보다 좀 더 유의미하게 느낄 수 있는 것 같기는 합니다. 혼밥을 할 때면 순식간에 가장 비참하고 외로웠던 시절이 생각납니다. 물론 시험을 붙어서 지금 그렇게 과거를 돌아볼 수 있는 여유가 생긴 것이지만, 아직도 혼밥을 할 때면 조용히 밥을 먹으면서 예전 생각을 합니다. 너무나 괴로워서 숨을 크게 쉴 수도,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 할 수도 없이 혼자 꿋꿋하게 버텼던 시간이 생각납니다. 꿈처럼 아득하기도 하고, 드라마나 영화에서 본 것처럼 남 일 같기도 합니다. 가끔은 혹시 내가 시험에 붙은 적이 없는데, 망상을 하고 있다면 어떨까, 하는 끔찍한 생각도 합니다.



 요즘은 주로 누군가와 같이 밥을 먹으니까, 내가 어떤 사람인지 전혀 모르는 식당에서 혼자 밥을 먹을 때 일상에서 갑자기 예전 생각이 나는 것 같습니다. 아무에게도 이런 얘기는 하지 않습니다. 유난이라고 생각할지도 몰라서? 아니면 공감하지 못해서? 그보다도 이 감정을 떠올리면서 순식간에 예전 혼밥생활에 빠져들었다가 바로 다시 빠져나올 수 있어서 인 것 같습니다. 언제쯤이면 혼밥을 하면서도 예전 생각을 안할 수 있을까요? 쓰디 쓴 어두운 기억으로 잠시 끌려들어갔다가, 현재의 평온함을 느끼게 되는 일이 언제까지 있을까요? 언제쯤이면 그 모든 것에 익숙해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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