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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맏딸 Nov 04. 2022

종용’s answer. 애증의 정의

아빠 인터뷰 21차__Q. 첫 독립생활은 어땠나요?




나는 물었다첫 독립생활은 어떠했냐고집안 어른들 없이 사는 건 어땠냐고세간살이는 어떻게 마련했냐고, 새로운 동네와 새로운 집은 어떻게 생겼냐고종용은 답했다신혼생활이 악몽 같았다고질문이 무엇인지는 상관없었다마치 이 순간을 고대해온 사람처럼오래 묵혀온 불을 뿜듯이종용은 가슴께에 얹혀 있던 것들을 마구 뱉어냈다나는 얼굴을 마주하고 듣는 상황이 아니어서두 눈을 깜빡거리며 긴 글을 읽어 내려갈 수밖에 없었다.        





 Q. 아빠결혼 후 독립생활을 어떻게 시작하셨어요?     





난 1982년 11월 21일 결혼식 후, 82년 11월 말경에 황 여사와 단둘이서 단독 생활을 시작했다. 우리는 진해에서 경화동, 이동, 덕산동, 다시 경화동으로 가 살았는데, 그때는 모두들 셋방살이가 전부인 시대였다. 세간살이는 이미 내가 갖추어 놓았기에 냉장고와 부엌살림만 더 장만했다.      





아무것도 모르고 결혼했기 때문에 약 6개월 정도는 서로 알아가는 단계였다. 나와 함께하는 사람이 생겼다는 게 정말 좋았고 신기했다. ‘결혼’이라는 말이 별로 와닿지 않게 소꿉장난하듯이 그냥 살았던 것 같기도 하다. 너무 젊은 나이에 결혼을 해서 어떻게 계획을 세워야 하는지도 몰랐다. 그저 모자란 것도 더 하고 싶은 것도 없는 시절이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결혼 생활은 악몽으로 변해갔다. 내가 왜 결혼이라는 것을 했을까 생각하는 시간이 점점 더 많아졌다. 악몽으로 변하고 있었는데도 그걸 몰랐기 때문에 더 악몽으로 치닫게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지금부터 간단명료하게 상황이 왜 그렇게 되어버렸는지에 대해 나 김종용이가 생각하고 있는 바를 기술할 것이니, 우리 집 황 여사의 생각하고는 전혀 맞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을 미리 말해두는 바이다.     


우리가 결혼하고 한 달 후부터 말다툼만 하면은 황 여사는 진해 집에서 사라져서 그 먼 섬나라 제주도에 여지없이 가 있었다. 전화해서 왜 갔느냐고 물어보면 살 수가 없어서 친정으로 갔다고 말했다. 난 도무지 이해가 안 가는 행동이었다. 이런 행동을 딱 10회 정도 했을 적에 난 도저히 황 여사하고는 살 수가 없겠다고 생각했다.      





결판을 내고 이혼이라도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제주도로 출발했다. 장인, 장모님을 모셔놓고 지금까지 있었던 일에 대해 상세히 말씀드렸다. 난 더 이상 살 수가 없으니 이런 행동을 고치든가 아님 서로 헤어지는 게 낫겠다고 했다. 그러고는 다음 날 혼자서 진해로 출발했다.      


하루가 더 지나고 저녁에 퇴근하니 황 여사가 집에 와 있었다. 아무 말을 하지 않고 며칠을 지내다가 대화를 시작했고, 다시 한번 더 친정으로 도망갈 시에는 나하고 살 생각을 말라고까지 말을 했다. 그 후로는 어느 정도 생활을 했고 황 여사가 친정으로 도망가는 일은 없었다.      





나와 황 여사는 싸움을 한 달 간 한 적도 있었고, 남 보기 민망해서 진해에서 이사를 몇 번이나 했는지조차 모를 정도로 자주 이사를 다니곤 했다. 그렇게까지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생각해보면 난 성질이 너무 강했고 황 여사는 보호만 받았던지라 서로를 배려할 줄 몰랐던 것 같다. 어쨌든 나는 신혼 생활이라고 할 것이 전혀 없었고, 그때 그 시절 버텨온 게 정상이었는지 아님 바보멍청이라서 지금까지 살아왔는지도 알 수가 없다.   

  

신혼에는 누구나 즐겁고 소꿉장난하듯이 살아가야 맞는 일 아닌가. 그러나 우리 부부는 서로를 멀리하고 늘 싸웠다. 지금도 종종 굶주린 하이에나처럼 싸우고 있으니, 행복이라는 단어조차 어디서 찾아야 할지 모르는 지경에 이르러버린 듯하다. 지금 이 나이 먹고 그저 살아가고 있는 부부가 나와 황 여사이다. 


  



이런 말을 하면 안 되지만, 지금 사는 이승에서는 이젠 어쩔 수가 없고 내가 후에 또다시 이승에 산다고 하면 그때는 절대로 결혼 같은 건 하지 않겠다고 맹세할 수 있다. 그리고 사랑이 없이 살아온 것은 혼자만의 잘못이 아니라 두 사람의 공동 작품이었으니, 우리 두 사람이 이런 식으로 살다가 떠나가는 수밖에 없지 않나 싶다.      

그래도 나와 지금까지 살아준 내 아내 황 여사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싶고, 어쨌든 나 때문에 한평생 사랑을 모르고 살아왔을 황 여사에게 진심으로 사과의 말을 전한다. 이런 말을 해도 되는지는 몰라도 어쩌면 사랑이란 꼭 부부의 마음만이 아닐 것이다. 이제 와서 내 마음속에 자리 잡은 한 송이 마음의 장미라고나 할까? 아무쪼록 황 여사 고맙습니다.





과거는 이미 지나갔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다.’ 현재가 중요하다는 말이다하지만과거가 쌓여 현재가 됐고현재가 쌓여 미래가 될 것이므로세상에 중요하지 않은 시점은 하나도 없다종용의 마음을 이해한다바꿀 수 없는 과거일지라도 하소연할 자유는 있는 것이고마음에 사무친 것들이 조종하는 현재는 혼란스러울 테니까비난하다가도 안쓰럽고밉다가도 고마워지는 그런 지금인가 보다.

              

    

☎ Behind     

어떻게 싸웠는지에 대한 얘기는 있는데

왜 싸웠는지에 대한 얘기는 

왜 없어요?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싸움의 원인이 두 사람한테 같이 있는 거지.

느그 엄마하고 나하고의 싸움은

서로 이해하지 못했던 결과지.

그런 추상적인 대답 말고요.

좀 더 현실적인 이유는 없었냐고요.

라면 먹자고 하면

라면 하나에 물 펑덩하게 넣어놓고

“난 이런 거 안 해봐서 몰라요.”하고 

뚱하게 있고 그랬지.

그게 다예요?

싸움이라는 게 이유도 없는데 

싸움하고 화해하고 싸움하고 화해하고 그런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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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령도 #두무진 #심청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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