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리즈번이 우리 동네였던 것처럼

제2의 고향이라고 말해도 될까요?!

by 눗씨

우리 숙소 앞에는 파란 지붕의 카페가 있다. 아침 7시면 문을 열어 오가는 사람들이 그곳에서 커피 한잔과 빵을 먹는다. 우리도 눈을 뜨면 그곳에 가서 주스와 와플, 토스트를 사 먹었다.

자주 가다보니, 사장님과 얼굴을 익혔고, 이런저런 얘기를 하게 됐다. 가게 이름이 ‘DELILAH&JASPER’여서 이름 뜻을 물어봤다. 아들 이름이 데릴라, 딸 이름이 제스퍼라고 했다. 아이들 얘기를 하는 사장님의 표정에 행복이 번졌고, 겉모습과는 다르게 굉장히 '스윗하다’고 생각했다. 이곳엔 어리바리 알바생이 있다. 처음엔 생긴 모습이 비슷해서 한국 사람인 줄 알았는데 대만에서 왔다고 한다. 잘 웃고, 친절한데 정말 어리바리다.

컵 달라고 하면 갑자기 당황하며 컵을 떨어뜨리고, 뭘 물어보면 우왕좌왕이다. 실수해도 마음씨 좋은 사장님은 화를 안 내고 그냥 두는데, 가끔 사장님이 화를 낼때가 있다. 바로, 카드기가 말을 안 들을 때, 혼잣말인지 카드기한테인지 화를 낸다. 가끔 말썽을 부리는 카드기를 바꿀 생각은 없는 것 같다. 정감 있는 가게에 사장님과 알바생, 말안듣는 카드기의 재미있는 조합이다. 이곳이 브리즈번에서 우리의 단골 가게다. 언제든 편하게 갈 수 있는 단골 가게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에 위안이 됐다.

브리즈번이 익숙해지고, 구글맵없이 거리 풍경을 마음껏 즐기며 다닐 수 있게 되자 더욱 브리즈번이 원래 우리 동네인 것 같은 착각이 들었고, 이곳에서 2년 정도 살고 있는 기분이었다. 사우스뱅크 쪽이 지루해 지면 종종 '퀸스트리트몰'이라는 번화가로 구경을 다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쇼핑을 하기 위해 이곳에 왔는데, 우리는 한국에서도 그렇듯 쇼핑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고 한식을 먹고 싶을 때, 서점 구경을 하고 싶을 때 이곳을 방문했다. 그렇게 번화가를 오가다 어느날 영화관을 발견했다.

아이들과 즉흥적으로 영화를 보기로 하고 어떤 영화를 볼까 고민할때, <웡카>라는 영화가 걸려있는 걸 봤다. 아이들이 <찰리와 초콜릿 공장> 후속편이라며 얘기해줘서 이 영화를 보기로 했다. 한국에 1월 31일에 개봉하는 영화 <웡카>를 브리즈번에서 1월 11일에 봤다. 아이들은 “우리 친구들은 아직 <웡카> 못 보는데, 우린 본다.”며 엄청 뿌듯해했다.

호주 영화관은 광고를 정말 많이 했다. 광고가 끝났나 싶으면 또 하고, 또 하고 광고 보다가 졸 뻔했다. 그렇게 끝날 것 같지 않았던 광고의 터널을 빠져나와 영화가 시작했다. <웡카> 영화는 볼거리가 풍부해서 영어를 잘 못해도 지루하지 않게 봤고, 아이들도 의외로 집중해서 재미있게 봤다. 중간, 중간 귀에 쏙쏙 박히는 "움파룸파" 노래가 더해지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초콜릿이라는 소재여서 영알못 우리들에게 '우연히' 잘고른 영화였다. 그래서 한국에 와서 영화로 한번 더 보고, 책도 사서 읽었다. 아이들은 요즘도 가끔 <웡카> 노래를 들으며 따라 부른다. 영어로 된 영화가 이해안된다고 중간에 나가자고 하면 어떡하나 걱정했는데, 우리는 이때의 좋은 기억으로 외국 여행 가면 항상 영화를 보자고 약속 했다.

영화까지 보고 나자 우리가 여행객이 아닌 정말 브리즈번에서 살고 있다가 쉬는 날 영화보러 번화가에 놀러 나온 것 같은 기분이었다. 영화관 컨디션이야 한국에 비하면 좁고 지저분하고 냄새도 나고 별로였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그런 불편함은 온데간데 없이 살아졌다. 호주에서 브리즈번 - 골드코스트 - 시드니 이렇게 보냈는데 정말 우리 동네에서 노는 것 같은 기분은 브리즈번에서 밖에 느낄 수 없는 행복이었다. 외국에서 이렇게 마음편하고 여유있게 보낼 수 있었던 건 마음씨 좋은 브리즈번 사람들과 평화로운 분위기 때문일 것 같다. 누군가는 '심심한 동네'라고 얘기하는 브리즈번이 우리는 아직도 '우리 동네' 인 것처럼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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