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리즈번 박물관과 미술관을 경험 후, 우리는 문화인으로 거듭났다고 자부하며 더이상 그림을 잘 몰라서 미술관 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래서 시드니에서도 자연스럽게 미술관으로 향했다. 마침 미술관에서 공원 하나를 가로지르면 주립 도서관이어서 우리가 좋아하는 도서관까지 곁들여 갈 수 있었다. (역시 공원에서 또 한바탕 공놀이 후에 다음 목적지에 갈 수 있었다.)
‘뉴사우스웨일스 주립 미술관’에 가기 위해 트램을 타고 윈야드에서 내렸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길이 너무 예뻤다. 고풍스러운 거리와 건물이 눈 앞에 펼쳐졌다. 우리는 목적지를 잃은 듯, 정신없이 길거리에서 사진을 찍고 눈에 담았다. 한국 귀국이 며칠 안남았는데 다행히 이런 멋진 곳을 만나게 되어 '행운'이라고 생각했다.
예쁜 거리에서 눈을 정화 후 미술관에 도착했다. 이곳도 역시 무료인데 볼거리가 가득하고 알찼다.
미술관은 외관부터 신남매의 취향 저격이었다. 스파이더맨이 손에서 쫘악 뽑아 세워둔 듯, 거미 조형물이 떡하니 서 있어서 눈길을 사로잡았다.미술관 들어가기도 전에 그 거미에게 마음을 뺏긴 신남매는 조형물을 한참보고, 또 봤다. 미술관 외관에는 피카소, 마네, 다빈치, 벨라스케즈 등의 예술가 이름이 적혀있었고, 넘실넘실 받아둔 물이 햇빛을 받아 반짝이고 있었다. (분수도 아니요. 풀장도 아닌데 그냥 물이 넘칠듯 말듯 받아져있었다.) 미술관 앞이니 반짝이는 물 또한 미술적인 느낌으로 해놓았나?!하는 생각을 했는데, 또 신기한 것은 그걸 바라보고만 있는데도 마음이 평온해졌다. 조금 자유분방한 아이가 있었다면 그 물 속으로 돌진(?)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뉴사우스웨일스 주립 미술관’에는 아이들 체험 활동이 없었다. 또 슬며시 신남매가 미술 작품만 보는 것에 지루해하지 않을까 걱정했다. 아이들은 내 걱정과 다르게 의외로 흥미로워했다. 무료여서 볼거리가 많이 없을 줄 알았는데, 봐도 봐도 끝없이 볼거리들이 나왔다. 이곳에 소장하고 있는 전체 작품 수가 36,564개라고 하니, 봐도 봐도 끝이 없을 만 했다. (소장품이 모두 전시되어 있는 건 아니다.)
아이들은 어디서 들었는지 멀리서 봐야 그림이 더 잘 보인다고 얘기를 한다. 그리고 추상화를 알아보고는 “이 그림은 추상화야”라며 아는 체를 했다. 그림을 보고 이야기를 지어내며 스토리를 만들어 그들만의 놀이를 하는 걸 보고 웃음이 나왔다. 호주 원주민 출신 아티스트 작품부터 현대미술까지 다양한 전시가 눈을 즐겁게 했고, 아이들은 체험없이 미술작품 만으로 충분히 즐겼다. 속으로 주문을 외웠다. '신남매의 생각 풍선아, 커져라! 커져라!'
미술관에서 5분 거리인 ‘뉴사우스웨일스 주립도서관’은 책을 읽거나 공부 목적이 아니어도 꼭 방문할만하다.지금까지 내가 가본 도서관 중에 최고였다. 도서관 역사만 190년이 넘는다는데, 지금까지 얼마나 정성껏 관리를 해왔는지 알 수 있었다. 무슨 도서관이 이렇게 고풍스럽고 웅장할 수 있는지. 크기부터 건축, 실내 인테리어까지 우리나라에서 흔히 보던 도서관이 아닌, 박물관 같았다. 게다가 600만 개 이상의 책, 원고, 지도, 그림, 사진, 신문 등의 소장품을 가지고 있으니, 박물관이라고 해도 될듯하다.
도서관은 주립 참고 도서관과 미첼 도서관의 두 주요 섹션으로 나뉘는데, 보통 우리가 방문하여 사진찍는 곳이 미첼 도서관이다.
도서관에는 갤러리 전시도 있었는데, 두둥! 셰익스피어였다. 도서관 맞은편에는 셰익스피어 동상이 있고, 거리가 셰익스피어 플레이스라고 이름지어졌던데, 셰익스피어가 영국인이어서 그런건지. 무슨 인연이 있는 건지 궁금했다. 호주도서관에서 만난 반가운 셰익스피어의 책과 그의 공간에 푹 빠진 나는 신남매도 잊고 감탄사를 연발하느라 바빴다. 원래는 아이들 사진 위주로 찍는데 이곳에선 전시 사진 찍느라 신남매 사진은 생각도 못 했다. 셰익스피어 방에 앉아서 '셰익스피어를 직접 만나보고 싶다' 생각하며 조금이라도 그의 문학적 영감을 흡수해보려고 노력했다. 전시만으로도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불혹의 여성을 바라보던 안내원은 친절하게 설명도 해주고, 사진도 찍어주었다.
<셰익스피어 방의 책장 전시>
나만의 행복한 공간에서 아이들이 좋아할만한 공간, 어린이 도서관으로 갔다. 우리는 대부분의 시간을 이곳에서 보냈다. 주렁주렁 매달아놓은 책으로 천장을 꾸몄고, 중간중간 아이들이 책을 읽을 수 있도록 편한 의자가 놓여있었다. 신남매는 집에 있는 책 찾아보기를 하며 재미있게 놀았다. 우리집 근처에 이런 도서관이 있으면 매일 출근 도장을 찍을 것 같았다. 마지막으로 도서관 안에 서점도 있어서 연서가 사고 싶어 하는 책을 하나 사줬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나도 책 욕심이 났지만 호주는 새책 값이 너무 비싸서 꾹꾹 눌러 담았다. 예상치 못한 셰익스피어 전시도 보고 어린이 전시실에서도 즐겁게 시간을 보냈기 때문에 책을 사지 못해도 충분히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