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잔디밭은 ‘들어가지 마시오’ 푯말이 있다. 그 푯말을 볼때마다 '이 잔디밭은 누굴위한 잔디밭인가?' 생각했다. 호주는 잔디밭에 엄격한 나라지만 우리나라처럼 사람에게 엄격하진 않다. 사람이든 애완견이든 자유롭게 이용한다. 어딜가든 푸르게 관리가 잘 되어 있는 걸 보고 '얼마나 부지런하면 이렇게 잘 관리할 수 있는 걸까?' 생각했다. 그런데 부지런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잔디밭을 관리하지 않으면 벌금을 내야 한단다. 호주인들이 부지런하게 관리해준 덕분에 신남매는 이 잔디밭을 마음껏 즐길 수 있었다. 한국에서 가져온 물건 중에 가장 요긴하게 썼던 물건은 비치볼이었다. 비치볼은 입으로 후후 불어도 금방 불 수 있어서 물놀이할 때와 잔디밭에서 놀 때 유용했다. 우리는 항상 바람을 쭉 빼서 가방에 쏙 넣어 다녔는데, 목적지가 따로 있어도 가는 길에 잔디밭이 있으면 당!연!하!게! 잔디밭으로 들어가 공놀이를 실컷하다 갔다. 유명 관광지를 가지 않아도, 아이들은 초록색으로 덮인 곳에서 마음껏 뛰어 놀았다.
현지인들에게는 잔디밭이 친숙한 '우리집 안방(?)'과 같은 존재 인듯하다. 호주인들은 벤치가 있어도 그 벤치따윈 장식품 취급하며 잔디밭에 아무것도 깔지 않고 앉아 써브웨이를 먹었다. 우리도 그들을 따라서 점심으로 싸 온 샌드위치를 (잔디밭에 앉긴 아직 힘들고) 잔디밭 벤치에서 먹기도 했는데, 사람 구경, 풍경 구경을 하며 먹을 수 있었다. 그러나 벤치에 앉아도 자꾸만 기어오르는 이놈에 개미 때문에 힘들었다. 개미를 쫒느라 샌드위치가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를 지경이었다. 아직 개미와 함께 할, 마음의 준비가 안된 듯 하다.
현지인들을 따라하고 싶었던 것이 또 하나 있었는데, 그들이 신발을 벗고 잔디밭을 걷는 모습이 평화로워 보이고 낭만있어 보였다. 그래서 나도 과감하게 신발 벗고 걸었다. 그런데... 몇 발자국 걷지 못하고 앞에 개똥을 발견했다. 화들짝 놀라서 나는 다시 신발을 신었다. 역시나 나는 아직 개똥과 함께 잔디밭을 즐길 마음의 준비가 안 된 것 같다. 호주의 잔디밭을 즐기기 위한 마음의 준비가 살짝 부족하지만, 부족한 채로 즐겨도 우리에겐 충만한 초록 세상이었다.
연서의 로망은 '부메랑'이었다. 한국에서부터 호주의 부메랑 노래를 불러서 그 한(恨)을 풀어주기 위해 패디스 마켓에서 부메랑을 사줬다. 부메랑을 사자마자 공원으로 향했다. 드디어! 잔디밭에서 부메랑을 날려볼 수 있는 꿈을 실현시킬 수 있게 되었는데, 이럴 수가! 부메랑이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그냥 장식품이었던가. 우리는 한 명이 던지면 한 명은 강아지가 되어 부메랑을 주워오며 놀았다. 그것마저도 즐거워 깔깔거리며 좋아했다. 연서는 다시 돌아오는 부메랑에 미련이 남아 또 다른 부메랑을 사서 던져보았다. 그 부메랑도 훌훌 날아가 땅에 꽂혔다. 그렇게 연서의 로망인 부메랑은 한국에 돌아와 그저 전시품 중 하나가 되어버렸다.
- 연서의 일기 -
“드디어 기념품 가게에서 부메랑을 사고 공원으로 Go!
충격 사실이 알려졌다. 바로, 부메랑은 가짜였다. 내 부메랑... 으악~~~!”
호주를 다녀와서 눈이 나쁜 신남매는 안과 진료를 받았다. 나는 의사 선생님께 여쭤봤다. "맑은 공기에 초록초록한 잔디를 마음껏 보며 지내다 왔으니 눈이 더 좋아지지 않았을까요?" 그러자 의사 선생님은 "한번 나빠진 눈은 어쩔 수 없습니다."했다. 그 동안 좁은 땅 안에만 살아서 인지하지 못하고 살아왔다. 신남매가 '이 빽빽한 아파트 단지 섬이 아닌 호주처럼 좀 더 넓고 푸른 곳에서 매일 뛰어 놀 수 있었다면 참 좋았겠다.'라고 생각이 든건 우리가 넓은 초록빛 세상을 알아버려서였다. 아쉬운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우린 지금 빽빽한 자이섬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