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핀투어 & 모래썰매
호주에 오기 전부터 신남매는 '부산촌놈 in 시드니'를 보고 모래썰매를 궁금해했다. 문제는 '공식 겁쟁이'도 부족해 '공식 예민쟁이'인 아들의 어중간한 말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것이었다. '모래가 몸에 묻는게 싫은데 또 재미는 있을 것 같아 타고 싶은 마음도 있다'라고 하니 엄마는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그런데 한국 귀국 이틀 전인 일요일 아침, 갑자기 '공식 예민쟁이'가 모래 썰매를 타야 후회가 없을 것 같다고 결단!을 내렸다. 귀국 하루 전에는 시드니 곳곳을 다니고 싶었기에 꼭 결단을 내린 다음날 모래썰매를 타러 가야 계획에 어긋남이 없었다. (참고로 나는 MBTI '파워J'다.) 조금더 일찍 결단을 내려줬으면 참 고마웠겠다는 생각을 하며 나는 또 방송 작가 기질을 발휘해 여행사 섭외에 돌입했다. 시드니 시내에서 본 '대한관광여행사'간판이 생각나서 전화를 걸었다. 다행히 바로 다음날 빈 자리가 있었고, 우리는 호주에서의 모든 일정 중 유일한, 여행사 투어를 하게 되었다. 투어는 돌핀 투어 + 모래썰매 + 와이너리로 묶여있었는데, 아이들은 당연히 술을 못마시고, 나도 술을 못마시는 '술찔이'여서 와이너리 가서는 셋이 사이좋게 아이스크림을 사먹었다. 이번 투어에서 우리의 주요 여행은 와이너리를 뺀, 돌핀투어와 모래썰매다.
새벽부터 일어나 김치볶음밥 휘리릭 해먹이고, 우리집에서 5분거리인 약속 장소에 갔다. 기동력 약한 우리를 실어다 줄 운전사는 터키 사람인 ‘쉐비’였다. 우리의 지정석은 관광버스 앞자리여서 ‘쉐비’와 친해질 수 있었다. 흰색 모자를 좋아하는 깔끔이에 성격이 유쾌하고 밝았다. 연서에게 영어로 대화를 시도하고, 잘 못 알아들으면 천천히 다시 얘기해줬다. 연서 이름을 물어보고 “연서” 계속 외우더니 또 ‘땡큐’가 한국어로 뭐냐고 해서 “감사합니다” 알려주니 “감사합니다”도 계속 외웠다. 이날 ‘쉐비’는 ‘연서’와 ‘감사합니다’를 배웠다.
돌핀 투어 배를 타기 위해서 '넬슨베이'로 향했다. 배는 3층짜리였는데 우린 종우가 무서워해서 1층에만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 있고 싶다는 종우에게 돌고래를 봐야 한다고 설득해 가장 안전한 곳에 앉히고 드넓은 바다를 두눈 크게 뜨고 바라봤다. 그런데 30분이 지나도 돌고래 꼬리조차 보이지 않아 초조해졌다. 그때였다. 외국 선장이 혀꼬부라진 발음으로 “여기! 저기! 오른쪽! 왼쪽!”을 외쳤다. 한국어로 “저기!”하는데 순간 내가 잘못 들은 줄 알았다. 외국 선장의 한국어가 너무 웃겨 빵터져 웃으며 눈으로는 돌고래를 계속 쫒았다.
생각보다 돌고래가 정말 많이 있었다. 배 주위로 돌고래가 튀어 오르고 헤엄쳐 다니니 정말 귀여웠다. 연서는 돌고래를 자세히 보고, 숨구멍부터 지느러미까지 설명했다. 사람들이 흥분해서 안에 있던 사람들까지 다 나와혼잡해지자 종우는 손까지 떨며 "무서워~"하며 울었다. 그때, 돌고래가 잘 보이면서도 안정감있게 앉을 수 있는 명당 자리가 나왔다. 나는 종우를 그곳에 냉큼 앉혀놓고, 손잡아주며 진정시켜줬다. 다행히 종우는 적응해서 돌고래를 볼 수 있었고, 너무 귀엽다고 집에 데리고 가고 싶다고 했다. 우리집 '공식 겁쟁이' 덕분에 여행이 아주 쫄깃쫄깃, 매순간 스릴이 넘친다.
'넬슨베이'라는 곳은 돌고래를 보기 위해 배를 타고 먼바다로 나가지 않아도, 있는 그대로가 너무 멋진 곳이었다. 그곳에서 바라본 바다는 비현실적이기까지 했다. 외국인들이 바다에서 새와 함께 어우러져 수영하는데, 영화 속 한 장면 같았다. 이곳에서 잠시 물멍도 하고, 커다란 체스판이 있어서 체스도 하며 휴식을 취했다. 종우도 이곳에선 안정이 됐는지 여유롭게 풍경을 감상하며 표정이 풀렸다.
- 연서의 일기 -
“우리는 배가 움직이자 맨 앞으로 갔다.
와!!! 돌고래가 보였다. 야생으로! 그 뒤로도 무려 3번이나 봤다. 색깔도 너무 예쁘고 귀여웠다.”
모래썰매를 타러 간 곳은 ‘포트스테판’이었다. 우리는 관광버스에서 내려 사륜구동 작은 버스로 갈아타고 모래언덕을 넘어갔다. 이곳은 사막이 아닌, '해안사구'라고 한다. 바닷모래가 바람에 쌓여서 이루어진 곳이어서 지형이 시시때때로 변한다. 차를 타고 모래썰매 타는 곳까지 올라가는데, 바다와 사막같은 곳이 한 공간에 있는 게 신기했다. 몽골에 있을 때 사막을 가보긴 했는데, 이곳은 드넓은 몽골의 사막과는 또 다른, 시작과 끝이 함께 공존하는 설레임이 있었다.
모래가 너무 뜨거워 미리 준비해간 양말을 신었다. 아이들과 허허모래판에 와있으니 '울컥'했다. 이 지구상에 우리가 못가본 곳이 얼마나 많은지. 이 아이들이 엄마품을 떠날때까지 얼마나 더 이런 아름다운 곳에 와서 추억을 쌓을 수 있을지. 귀국을 앞두고 있어선지 이런저런 감상에 젖었다. 가이드 아저씨가 이곳에서 어떻게 사진을 찍어야 예쁘게 나오는지 알려주고 뜨거운 모래에 엎드려 우리 셋의 사진도 찍어줬다. 사진을 남긴 후, 우리는 드디어 썰매를 탔다. 생각했던 것보다 더 신나고 재미있었다. 다만 올라가는 게 고행길이었다. 나는 연서 썰매까지 끌고 올라가는데 다리는 푹푹 빠지고 팔이 떨어져 나가는 줄 알았다. 결국, 우리는 재미는 있지만 몸이 힘들어, 그늘에 주저앉아 모래놀이를 했다. 모래놀이라도 즐거우면 됐다 싶었다. 모래가 몸에 묻는 게 너무 싫다던 우리의 깔끔쟁이도 아무렇지 않게 부드러운 모래를 느꼈다.
차로 돌아오자 ‘쉐비’가 반갑게 맞이하며 종우에게 모래썰매 몇 번 탔냐고 물어봤다. 종우가 두번 탔다고 하자, 쉐비는 세번 타고 자기 아들은 네번 탔는데, 그것밖에 못 탔냐며 놀렸다. 어딜가든 사람들은 무뚝뚝한 종우보다, 귀염성있는 연서에게 관심을 주고 말을 잘 걸어준다. 그래서 나는 종우에게 관심을 가져준 '쉐비'가 너무 고마웠다. 종우도 쉐비가 편해졌는지 곧잘 대답을 했다.
다시 시드니로 돌아가는 길, 휴게소에서 쉐비와 사진을 찍었다. 쉐비는 “함께 사진을 찍었으니 우리는 이제 친구야.”라고 얘기했다. 일일투어에서도 친구를 만든 신남매는 한국에 돌아와서도 가끔씩 '쉐비'이야기를 하며 다음에 또 시드니에 가면 쉐비가 운전해주는 차를 타고 수다도 떨고 싶다고 얘기한다. 그땐 '쉐비'도 함께 모래썰매를 타자며 호주의 여름은 모래가 너무 뜨거우니 호주의 가을에 가자고 한다. 잊지못할 호주에서 만난 인연, 쉐비 덕분에 체험만 하고 돌아올 뻔한 '일일 투어'에서 좋은 추억을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