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브릿지 건너기 대장정!
귀국 하루 전날, 우리는 시드니 구석구석 보고, 밤에 페리도 타보기로 하며 하루 일정을 짰다.
우리의 마지막 여정이자, 최종 미션 과제는 '하버브릿지'였다. 앞에서도 얘기했던 소문난 우리 겁쟁이 아들의 '다리 건너기'는 기네스북 도전 수준으로 어렵다. 그 어려운 걸 해내기 위해 많은 시간 종우를 설득해야 했다.
시드니까지 와서 하버브릿지도 안 건너보고 한국으로 돌아가면 잠도 못잘 것 같았다.
“가자. 종우야 엄마 하버브릿지 너무 건너보고 싶어. 엄청 튼튼해. 하버브릿지 건너보자.” 그렇게 우리는 남들이 보면 콧방귀를 뀔, 하버브릿지 건너기 대장정에 나섰다.
신남매와 숙소에서 버스를 타고 '서큘러 키'로 갔다. 여기서부터 걸어서 시드니를 온전히 느끼기로 했다. 호주에 영국인들이 처음 땅을 밟았다는 ‘록스’에 가서 다른 사람들이 남긴 발자국 사이에 신남매의 발자국도 남겼다. 그리고 시드니 천문대에 앉아 땀을 식히며 현지인들과 함께 풍경을 감상했다. 마음이 편안해졌고, 노을 질 때 오면 더 예쁠 것 같았다. 그리고 우리에게 호주에서의 시간이 좀 더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천문대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면 대망의 하버브릿지다. 하버브릿지 초입에서 다시 '종우의 난(亂)'이 시작됐다. 종우는 못 가겠다고, 너무 무섭다고 난리였다. 하버브릿지를 런닝하는 현지인들이 힐끔힐끔 우릴 봤고, 한국 사람들도 '무슨 일인가' 보고 지나갔다. 여기서 다시 되돌아가기 아까운 나는 종우를 다시 설득해야 했다. “호주는 우리나라보다 안전에 엄격해. 절대 안 무너지고 정말 튼튼해. 종우가 가장 안쪽으로 가면 되지.” 이렇게 종우는 엄마와 동생의 호위를 받으며 두 손 꼭 잡고 하버브릿지를 건넜다. 종우가 용기내는 모습을 지켜보던 한국 관광객들이 종우에게 “파이팅!”외쳐줬고, 칭찬해주며 지나갔다. 종우는 그 응원에 입꼬리가 올라갔다. 심지어 중간 정도 지나자 무서움은 잊은 채 연서와 노래를 부르며 건넜다. 내겐 정말 힘든 남자이면서 아직 내가 설득할 수 있는 귀여운 남자다. (요즘은 살짝 사춘기가 오려고 한다.)
하버브릿지를 건너면 북시드니다. 이곳은 남시드니처럼 북적북적하지 않고 여유가 있었다. 길거리에 쓰레기새 뿐만 아니라 칠면조도 걸어다녔다. 살면서 칠면조는 처음 봤다. 아무도 잡아먹지 않고 칠면조가 길거리에 걸어다니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는 호주인들이 신기했다. 우리는 이탈리안 피자집을 발견해서 들어갔다. 식기부터 내부 인테리어, 심지어 피자도 네모난 집이었다. 그래서 우리끼리 ‘네모의 꿈 피자집’이라고 이름 지었다. 북시드니에서 만난 '네모의 꿈 피자집' 조차 우리에겐 너무 특별하게 다가왔다. 아이들은 모두 네모라며 신기해서 계속 네모찾기를 했다. 한국에 돌아와 코엑스에서 직사각형의 피자를 먹으며 '네모의 꿈 피자집'을 다시 추억했다.
루나파크까지 계속 걷다 보니 한적하고 야경도 예쁜 뷰포인트를 발견했다. 지도를 보니 '라벤다베이'라는 곳이었다. 라벤다베이에서 보는 야경은 정말 멋졌다. 이걸 못 보고 갔으면 너무 아쉬웠을 것 같다. 여행 내내 체험활동만을 외치던 신남매도 정말 예쁘다고 평생 못 잊을 것 같다며 황홀한 뷰를 바라보았다. 나는 또 주문을 걸었다. '아이들 마음에, 생각속에 아름다움이 가득가득 차게 해주세요.'
다시 숙소로 돌아갈 땐 일부러 페리를 탔다. 시드니가 브리즈번과 다르게 사람도 많고, 복잡해서 무서운 마음에 해가 지기 전에 무조건 숙소로 들어갔었다. 그런데 귀국 바로 전날 시드니의 아름다운 야경의 맛을 알아버렸다. 또 다시 호주에 오게 된다면, 매일 밤 페리를 타자고 할 정도로 아름다웠다. 피곤하긴 해도 마지막까지 불태운 호주. 시드니의 아름다운 밤을 보고 돌아갈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 종우의 일기 -
“하버브릿지를 걸어서 건넜다.
평소였으면 시도도 못 할 일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