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영웅전 #24
작은 방에서, 청년은 또 하루를 보냈다.
특별한 일도 없고, 그렇다고 크게 힘든 일도 없는 하루.
그저 같은 시간, 같은 길, 같은 표정들. 어제와 오늘이 겹쳐져 흐려진 달력처럼, 그의 하루는 무늬 없는 종잇장 같았다.
“요즘 왜 이렇게 재미가 없냐…”
스스로에게 중얼거린다.
무기력은 큰 사건이 아닌, 이렇게 아무 일도 없는 순간에 더 깊게 스며든다.
그날 저녁, 선배가 찾아왔다.
늦은 밤, 차 한 잔을 사이에 두고 앉아 있던 선배는 청년의 표정을 보고 잠시 웃더니, 이렇게 물었다.
“너, 요즘 안 좋아 보인다. 무슨 일 있냐?”
청년은 억지로 웃으며 말했다.
“그냥요. 재미도 없고… 뭘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요.”
잠시의 침묵 뒤, 선배가 말했다.
여행, 가보자.
청년은 허탈하게 웃었다.
“돈도 없고, 시간도 없고, 딱히 갈 이유도 없는데요.”
선배는 고개를 끄덕이며 잔을 내려놓았다.
그의 눈빛은 가볍지 않았다.
“너, 어린왕자 이야기 알지? 작은 별에서 장미 하나만 바라보던 아이가 여러 별을 여행하면서, 마침내 자기에게 가장 소중한 게 무엇인지 깨닫게 된 이야기 말이야. 그때 어린왕자가 만난 건 단순히 다른 별이 아니라, 자기를 흔드는 낯선 질문들이었어.”
청년은 눈을 들어 선배를 바라봤다.
선배는 계속 이어갔다.
“무기력은 별 안에만 갇혀 있을 때 생겨. 똑같은 길, 똑같은 얼굴, 똑같은 말들. 그 틀에서 벗어나 낯선 별에 가봐야 해. 그게 여행이야. 여행은 돈이나 시간이 아니라, 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보는 거야.”
청년은 선배의 말을 곱씹었다.
어려서부터 나는 어린왕자를 좋아했다. 그가 만났던 별의 주민들이 떠올랐다. 권력에 집착하는 왕, 끝없는 계산만 하는 상인, 술에 취한 사람, 별을 세는 어른들. 그 낯설고 어이없는 만남들이 결국 어린왕자에게 자기 길을 보여주었다.
그때 깨달았다.
선배가 말하는 여행은 단순히 비행기 표를 끊는 일이 아니었다.
스스로에게 새로운 질문을 던지고, 다른 공기를 마시고, 지금의 틀을 흔드는 경험이었다.
선배는 마지막으로 말했다.
지금 네가 느끼는 무기력도
결국 네 별 안에만 머물고 있기 때문이야.
한 번쯤은 네 별을 떠나야 해.
낯선 곳에서 네가 잊고 있던 질문을 다시 만나야 해.
그때야 비로소 지금 이 삶도 다르게 보일 거야.
그 목소리는 충고가 아니라, 길을 비춰주는 등불 같았다.
그 순간 청년은 알았다.
언젠가 꼭 떠나야겠다는 생각, 아니 어쩌면 곧 떠나야 한다는 마음이 스쳤다.
여행은 도망이 아니라, 되돌아오기 위한 다른 길일지도 모른다.
그는 조용히 웃었다.
무기력을 넘어설 열쇠는, 어린왕자처럼 여행하는 마음임을 알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