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일과 남는 일 사이에서

일상영웅전 #23

by 원웨이브


한 노인은 병원에서 처방받은 약을 타러 힘겹게 계단을 내려갔다.


복잡한 골목 끝, 다닥다닥 붙은 집들 사이로 좁고 가파른 계단이 이어진다. 그 꼭대기, 작고 낡은 집 하나. 그 집에서 약국까지는 계단만 백 개가 넘는다.


노인의 발걸음에 그 숫자는 두배쯤 더 무겁다.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골목을 빠져나와 약국에서 약을 타고, 다시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다리가 풀려가는 그 순간,


한 청년이 뒤에서 다가왔다.


"할아버지, 괜찮으세요?"


노인은 괜찮다며 손을 저었지만, 청년은 물러서지 않았다. 이내 말없이 노인을 업었다. 땀이 차올랐지만 청년은 묵묵히 계단을 올랐다. 그렇게 집 앞에 다다랐을 때였다.


노인이 멈칫하며 중얼댔다.


"이런, 약봉지 하나를 약국에 두고 왔구먼. 혈압약인데 오늘 꼭 먹어야 하는 건데…"


청년이 말했다.


"제가 다녀올게요. 어디 약국인지만 알려주세요."



노인은 골목 아래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단호하게 말했다.


"거긴 처음 오는 사람은 못 찾아. 돌아가는 골목만 다섯이야. 다시 나를 업게. 같이 가야지."


청년은 멈칫했다. 미묘한 감정이 스쳤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노인을 업고 계단을 내려갔다. 다리는 점점 무거워졌고, 등에 땀이 배어들었다.


골목을 지나 약국에 도착해 약을 챙겼다.


다시 같은 길을 따라 계단을 오른다. 노인은 청년의 숨소리를 느끼며 조용히 물었다.



"자네, 왜 두 번째도 나를 업게 되었지?"



청년은 잠시 말이 없었다.


"모르겠어요. 그냥… 다시 가지 않으면 오늘 이 일이, 그냥 흘러가버릴 것 같았어요."


노인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세상에는 한번의 수고로움의 차이로 그냥 사라지는 일이 있고, 두 배가 되어 남는 일이 있지. 오늘 자네가 한 일은 사라지지 않을 걸세."



그 말에 청년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새 꼭대기 집 앞에 도착했다.


노인이 등을 타고 내리며 말했다.


“자네 수고는 오늘 이 골목 어귀 어디쯤, 오래도록 남아있을 거야.”



청년은 조용히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그날, 청년은 두 번의 계단을 올랐다. 하지만 얻은 건 두 배를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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