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OFF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TEMPO RUBATO Jan 10. 2021

피로한 이웃의 기도

내가 떠날 수 없으니 당신들이 나를 떠나면 좋겠다고

동거인과 이웃이 쥐고 흔드는 삶의 질

집이라는 공간에서 같이 사는 사람의 행동은 삶의 질을 형성하는 데 있어 중요하다. 내가 좋아하는 행동을 하느냐보다 '싫어하는 행동을 하지 않느냐'가 매우 중요한데 이건 동거인뿐 아니라 윗집, 옆집, 아랫집까지 사방의 이웃들도 마찬가지다.



집 구조 빼고 모두 달랐던 이웃

옆집 이웃은 집 구조 빼고 나와 많이 달랐다. 옆집 가족 정확히 말하면 옆집 부부는 로또였다. 맞지 않았다. 집안에서 목소리를 낼 일이 없던 혼자 사는 호젓한 나와 달리 고성이 기본이고, 대화의 절반이 다툼이었다. 야근이 일상인 내가 몸져누운 새벽 한 시부터 부부는 게임 스타트 버튼을 누른 것처럼 싸움을 시작했다. TV 정규 프로그램이 끝나면 옆집 부부가 주인공인 프로그램이 시작했다. 벽 하나를 두고, 끌 수 없는 라디오처럼 밤새 쌩라이브로 들어야 하는 옆집 '부부의 세계'는 난폭했다. '문명의 충돌'은 광고로만 보고 싶었다. 아파트 관리사무소나 경찰서에 신고를 하고 싶지만 이 새벽에 누군가에게 내 스트레스 나누어주는 것에 대한 미안함이 고통의 양과 비슷해서 나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지치지 않는 아이들의 층간 소음만큼이나 에너지 넘치는 두 부부가 만들어 내는 측면 소음을 들으며 나는 생각했다.



새벽에 한 번, 아침에 두 번


저들도 분명 낯 간지럽고 유치하고 사랑스러운 말들을 주고받는 아름다운 시간이 있었을 텐데. 그 시간으로 되돌아가는 것보다는 이별이라는 정류장이 더 가까워 보였다. 경제적 여유와 거주지의 선택권이 없는 한낱 임차인인 내가 쉽게 이곳을 떠날 수 없으니 당신들이 나를 떠나면 좋겠다고, 그리고 그렇게 살 바에는 헤어지면 좋겠다고. 옆집 부부의 이별을 잠들 수 없는 밤에 한 번, 5분만이라도 최선을 다해 자고 싶은 아침에 두 번 성실하고 진실되게 기도했다. 피로한 무교론자는 어느 누구보다 간절했다.



꿈은 이루어진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 옆집에서 싸움 소리와 함께 섞인 박스에 테이프를 붙이는 소리를 들었다. 빨간 단체티를 입고 학습한 그 말, 꿈은 이루어진다. 분명 이삿짐을 싸는 소리였다. 그리고 그들은 바로 다음날 싱그러운 아침 떠났다. 아파트 복도에서 이삿짐센터의 인부들의 분주하고 활력 넘치는 목소리가 어느 산골의 새소리보다 싱그러웠다.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채 나는 잠시 고민했다. 이제 나를 떠난 이웃 부부의 사랑을 바라야 할까, 아니면 이별을 바라야 할까. 결국 그들에게 아무 말도 전하지 못했지만 사랑을 바란다고 소리 내지 않고 마음속으로 기도하며 이불을 얼굴 끝까지 끌어올리고 다시 잠들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행복의 이모작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