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수험생 생활 중 가장 금기시해야 하는 것이 남들과 나를 비교하는 것이다. 하지만 말이 쉽지 막상 수험 생활을 시작하면 내가 책상 앞에 앉아 공부하는 동안 주변 지인들은 뭘 하고 지내는지 궁금해 찾아보게 되고 결국에는 현재 나와 지인들을 비교하게 된다.
나 또한 수험생활 중 주변 지인들과 나를 많이 비교했었다. 비교하지 않기 위해 모든 연락을 끊었지만 내가 처한 상황을 비교하는 것은 끊을 수 없었다. 당시 친구들은 모두 취업한 상황이었다. 대학 때부터 꿈이었던 일이 직업이 된 친구들, 꿈을 찾기 위해 서울로 상경해 자리 잡은 친구들, 꿈을 이루기 위해 관련 직종에 취업한 친구 등 나 혼자만 여전히 취업 준비생, 백수였다.
학생 때만 하더라도 주변 환경이나 관심사가 비슷해 이야기 주제도 공감할 수 있는 주제였다. 하지만 직장인이 되어 주변 환경, 매일 마주하는 사람들이 바뀌다 보니 자연스레 친구들의 이야기는 회사, 동료, 월급, 대출 등 내가 공감하지 못하는 것들이 중심이 되어갔다. 나는 그렇게 이방인이 되어갔다. 공감하지 못하는 것들이 늘어나면서 혼자 덤덤히 미소만 짓고 고개만 끄덕이며 그래 네가 고생한다, 뭐 그런 사람이 다 있냐며 위로 아닌 위로를 건네는 게 다였다.
한 때는 같은 공간에서 같은 옷을 입고 같은 고민을 하던 친구들이 낯설게 느껴졌다. 나만 여전히 그 공간 그 시간에 머물러 있는 듯했다. 번듯하게 사회인이 되어 본인의 능력을 펼치며 사회에 이바지하는 모습이 부러웠다. 남들에게 인정받는 모습이 가장 부러웠다. 그리고 내 모습이 부끄러웠다.
학생 때, 나름 모범생이었다. 전교에서 상위권은 아니었지만 반에서 상위권에 들며 공부 잘하는 애들 중에 늘 언급되었다. 사교육을 받지 않고 스스로 공부하는 학생치곤 잘했다고 자부한다. 대학 또한 집안 사정을 고려해 국립대에 입학해 장학금도 종종 타곤 했었다. 방학에 아르바이트도 하며 학기 중에 대외활동도 참여하였다. 이런 내가 스스로 자랑스러웠다. 자만이었다. 남들도 다 하는, 할 수 있는 일들이었다. 국립대에 들어가 부모님 걱정이 덜겠다는 어른들의 칭찬에 뿌듯했다. 이런 칭찬이 노력에 대한 인정같았다.
더 이상 고등학생도 대학생도 아니다. 하지만 정신연령은 고등학생 때와 변함없었다. 남들에게 인정받던 과거의 나는 더 이상 없었다. 그저 남들 눈에는 한심한 골칫덩어리처럼 보이지 않을까 스스로 움츠러들었다.
사람들은 흔히 말한다. 각자 인생의 속도는 다르다고. 그러니 다른 사람들이 앞서 나가는 듯 보여도 언젠가 자신도 앞서 나갈 수 있으니 남들과 비교하지 말라고 한다. 하지만 겪어보지 않는 이들은 모른다. 내가 조금 느린 게 아니라 영원히 제자리에서 발버둥 치며 머물러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스스로 조바심이 난다.
남들과 비교하는 내 모습이 너무 못나 보인다. 하지만 이런 모습이 오히려 지극히 정상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갖지 못한 것에 대한 동경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애써 피하려 하지 말고 현재 못난 나를 스스로 인정하고 잘난 사람들과 별개로 생각해야 한다. 못나면 못난 대로 살면 된다. 그래도 살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