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세이
주말 저녁, 아이들이 잠든 거실 소파에 앉아
다큐멘터리 한 편을 봤다. 주제는 ‘로마의 공화정’이었고, 화면 속엔 오래된 돌기둥과 부서진 아치들이 해질 무렵 따스한 빛 속에서 조용히 서 있었다.
그 순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왜 우리는 유럽을 보면 괜히 가슴이 뛰는 걸까?”
멋진 건축물 때문일까,
맛있는 음식 때문일까,
아니면 인스타그램에서 본 사진 속 낭만 때문일까.
하지만 좀 더 깊이 생각해보면, 우리가 유럽에 끌리는 건 그곳이 '인간다움'에 대한 탐구가 시작된 땅이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스에서 사람들은 처음으로 ‘ 우리 삶은 어떻게 운영되어야 할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왕이 아닌, 신도 아닌, 우리 스스로의 손으로 공동체를 꾸려가 보자고 말했던 곳. 그게 바로 아테네의 직접 민주정치였다. 로마에서는 왕을 몰아내고 대표를 뽑아 다스리는 공화정을 시작했다. 지금 우리가 선거를 하고, 법을 따르고, 권력을 나누는 방식의 뿌리가 바로 그곳에서 시작된 거였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지중해의 햇살이 단지 여행지의 풍경이 아니라 문명의 빛처럼 느껴진다.
그냥 고대 유적일 뿐이지만, 그 돌 하나, 기둥 하나가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고민했던 흔적이라 생각하면 괜히 가보고 싶어지는 것도 당연하지 않을까.삶을 아름답게 만든다는 건 어쩌면 멋진 소파를 들이거나 핸드드립 커피를 내리는 것만이 아니라, 이렇게 ‘왜’를 던져보는 일이 아닐까 싶다.
왜 나는 지금 이 삶을 살고 있는가.
어떤 제도와 가치 안에서 살아가는가.
그리고 그것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가
소파에 앉아, 나는 생각해본다 . 지금 우리는 4차 산업혁명이라는 거대한 전환기 속에 있다. AI가 생각을 대신하고, 데이터가 미래를 예측하는 시대. 하지만 그 속에서도 여전히 사람은 ‘질문하는 존재’로 살아간다. AI가 글을 쓰고, 자율주행자동차가 스스로 속도를 줄였다 올렸다 하며 로봇청소기가 민감한 카메라와 센서로 온 집안 구석을 더듬거리며 완벽하게 청소를 끝내주는 시대. 모든 것이 편리해졌고 AI의 편리함 속에 인간은
잠식당할것만 같지만 모든 것의 주인은 여전히 인간이다. 인간의 명령없이 그들은 작동할수 없고 AI가 써준 멋진 글도 그 자체로 완벽할수는 없다. 보완하고 다듬어내야하는 나의 손길을 필요로한다.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줄 때마다 문득 그런 질문이 떠오른다. 지식보다 먼저 가르쳐야 할 건 “왜?”라고 묻는 습관 아닐까. 왜 이렇게 사는 걸까? 왜 이게 옳은 걸까?
질문이 있어야 삶이 깊어진다. 고대 그리스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파르테논 신전과 로마 포룸은 지중해의 빛 속에 고요히 서 있지만 그 안에는 인간이 만든 생각과 제도와 가치의 흔적이 담겨 있다. 그리고 그 흔적은 거창한 역사책 속이 아니라 지금 내 거실 바닥에도, 내 아이의 질문 속에도, 오늘의 삶 깊숙이 흘러 들어와 있다 나는 오늘 이 작은 소파 위에 앉아 있지만, 사실은 수천 년의 역사를 딛고 또 하나의 시대를 살아가는, 하나의 이야기 속 인물이다.
AI에게 잠식당하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여전히 AI를 작동시키는 키는 나에게 있다. 효율적인 결과를 낼수 있도록 고민하고 머리를 굴려댄다. 생각한다 고로 나는 여전히 현재에 존재한다. AI와 새롭게 쓰는 역사속에서 영광스러운 한 부분을 장식하고 있다.
<팍스로마나에서부터 4차산업혁명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