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롭지만 꼭 지나쳐야 하는

by 은섬

글을 쓰기 전 나는 흔히 말하는 그냥 ‘아줌마’였다. 누군가를 개별적인 존재가 아닌 하나의 덩어리로 대상화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지만, 지금의 내가 바라보는 그때의 나는 딱 그랬다. 그 외에 더 적절한 표현방법이 생각나지 않는다.

전공을 전혀 살리지 못한 일을 억지로 하다가 조금은 도피성으로 결혼을 했다. 이후 아이를 낳았고 또 열심히 길렀다. 그땐 30년을 넘게 나와 한 몸처럼 살아온 내 이름 대신 누구의 엄마, 00 맘으로 불리는 게 기꺼웠다. 결혼과 함께 낯선 곳으로 온 나는 외롭다고 느끼진 않았다. 그리고 인생의 마디마다 새로운 사람들과 함께했다.

산후조리원 동기 모임을 했다. 나를 포함해 6명이었다. 인생의 가장 극적인 시기를 함께 했기에 우리의 관계는 군대 동기만큼이나 끈끈했으리라. 아직 젖도 떼지 않은 아기를 아기띠에 안고 만났다. 만나서 밥을 먹고 육아 정보를 공유했다. 서로를 쥐어뜯지 않고 함께 노는 아기를 보면 아이의 좋은 사회성 싹수가 보이는 것 같았다. 바깥바람을 쐴 기회가 좋아 우리는 열심히 만났다.

좋기도 했지만, 달라서 힘들기도 했다. 밥을 먹고 이제 헤어지면 딱 좋겠다 싶을 때 누군가 아기 옷 쇼핑을 가자고 했다. 갓난아이라고는 하나 아기띠에 안고 다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어깨는 천근만근이고 하체의 관절은 주저앉는 듯했다. 모유 수유를 하지 못한 가슴은 실시간으로 돌덩이가 되고 있었고. 한 마디로 죽을 맛이었다. 그때도 MBTI가 있었다면 나는 I 성향이라 더는 못 해 먹겠다고 집에 와버렸을 텐데, 그러지 못한 채 내내 끌려다녔다.

모임의 진짜 탈퇴 이유는 잘난 척하는 멤버 때문이었다. 집에 일이 있다고 둘러대곤 쫓기듯 단톡을 나와버렸다. 이 시간으로 교훈을 얻지 못한 나는 다시 지역 맘 카페에 발을 디뎠고 아이 나이가 같은 모임을 만들었다. 일명 토끼맘 모임의 시작이었다. 아주 즐거웠다. 특히 지금은 없어졌지만 노키즈존과는 상반되게 방으로 되어 있어 아기 엄마들의 아지트 같았던 <소소한>이라는 카페에서 우리는 아이들을 반은 방목하면서 많은 추억을 쌓았다. 결국, 또 잘난 척하는 멤버가 꼴 보기 싫어 모임을 탈퇴했지만.

이후에도 육아 공동체를 만들어 아이가 5살 때부터 8살까지 꽤 많은 활동을 했다.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고, 뭔가 조물조물 만들었으며 몸으로 격하게 놀아주고 함께 이곳저곳 나들이를 했다. 모든 놀이는 엄마들의 머릿속에서 나왔고 함께 우리 손으로 힘껏 자라는 아이들을 볼 때면 제법 뿌듯했다.

그러나 이 모임의 실패도 비슷했다. 아이 때문에 만난 모임이었지만 매번 엄마들이 문제였다.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바빠지면서 자연스럽게 모임이 해체되는 모양새였지만, 그 안에서 얼마나 많은 충돌이 있었는지 모른다. 막판엔 모임 안에서 멤버 둘이 싸우면서 누군가 울고 누군가는 말을 옮기는 이를 색출한다며 눈에 불을 켰다. 소심한 나는 그게 나일까 봐 얼마나 가슴 두근거리며 부화뇌동한 스스로를 탓했는지 모른다.

이즈음 되고 보니 매번 인간관계가 괴로운 건 저들의 탓이 아닌 내 탓인가 싶어졌다. 하나하나 자신을 검열하며 스스로 생채기를 만들었다. 그럴수록 나는 어딘가 결함이 있는 사람 같았고 인생은 괴로웠으며 세상에 나 혼자인 것처럼 외로워했다.

누군가 조리원 동기 모임이나 아이 모임에 관해 이야기한다면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을 것이다. 모임의 무용(無用)함과 시간 낭비에 대해 일장연설을 하는 모습이 선하다. 그런데 상대가 “그래서 하지 말라고?” 묻는다면 그에 대한 나의 답 역시 NO다. 사람에게 통과의례가 있듯 엄마가 되기 위해서 겪어야 하는 일이 있다. 이런 모임들이 그런 일들이라고 생각한다.

즐거움보단 씁쓸함으로 기억되는 모임들이었지만, 그땐 꼭 필요한 시간이었고, 그 시간으로 내게 부족한 게 뭔지 깨달았다. 그때 잘난 척하는 사람을 견디지 못했던 건 아마도 육아와 가사로 낮아진 자존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물론 그때는 알지 못했다. 서른이 넘은 나이에도 나는 사람을 사귀는 일에 서투르다는 것을 또 소속감을 느끼고 싶어 하는 자신을 그 시간을 보낸 후에야 제대로 알게 되었다. 그러니 어찌 이 시간을 괴롭다고 피하기만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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