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글 쓰는 나를 만든 말들이 있다. 그 말을 한 사람들은 아마도 오래전에 그 말들은 한 사실조차 잊었겠지만, 그 말들은 아직도 내 안에 생생히 살아있다. 그들은 자신이 뿌린 말의 씨앗이 지금 열매를 맺고 있단 걸 상상조차 못 할 것이다.
시작은 내가 초등학교 시절이었고 조금 엉뚱했다. 그땐 방학 숙제가 많았는데, 계중에 꼭 독후감을 원고지에 적어내는 숙제가 있었다. 개학 후엔 그 숙제 중에서 잘한 것들을 골라 금상, 은상, 동상을 주고 또 전시까지 했던 아주 옛날이야기다.
당시 담임 선생님이 내 독후감 과제에 상을 주면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이건 독후감을 잘 써서 주는 게 아니라 원고지 맞춤법을 잘 맞춰서 주는 거야.“
지금 생각해보면 굳이 이렇게 냉정하게 말할 필요가 있나 싶지만, 이 말이 내 쓰는 삶으로의 도입부가 되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중학교에 다닐 때 문예부를 한다거나 백일장에 나가고 그랬던 적은 없었던 것 같은데 어쩌다 보니 글을 쓸 기회가 있었다. 그때 문예부 선생님이 내게 글 쓰는 데 재능이 있다고 말씀해주셨다. 그 말이 잊히지 않는다. 누군가 나에게 꼭 집어서 어떤 재능이 있다고 해준 첫 번째 말이었기 때문이다.
내 경험으로 미루어 보건대 학창시절 선생님의 한 마디가 가진 힘은 정말 크다. 경우에 따라선 한 사람의 인생을 결정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나만 보더라도 30년도 넘는 세월이 지나도 그 말을 듣던 때를 마치 사진 한 장처럼 기억하고 있지 않은가.
고등학교 때는 백일장에 나가고 운 좋게 수상도 했다. 그래도 쓰는 게 내 삶이 될 거란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학교 선배에게 어떤 과에 진학할 거냐는 질문을 했었는데 그때 ‘문예창작과’란 말을 처음 들었다. 그때 나의 세상은 좁디좁았다. 학교에서 선호하는 과들, 내가 가고자 하는 과만 아는 것이 부끄러운 줄도 몰랐다. 그래서 그건 내게 너무 생경한 경험이었다. 입안에서 ‘문예 창작’ 이란 단어를 굴리고 굴려봐도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았다. 아주 먼 미래에 내가 그 전공을 하게 될 줄도 모르고 말이다.
과거부터 어휘력이 풍부하단 소리를, 맞춤법이나 띄어쓰기가 정확해 눈이 편하다는 소리를 들어왔다. 요즘은 글 때문에 규칙적으로 만나는 사람들로부터 ‘어떻게 매번 이렇게 글을 써내냐? 성실하다’라는 말을 가장 많이 듣고 있다. 물론 글을 잘 쓴다는 칭찬을 들을 때도 있다. 그때의 마음은 당연히 좋긴 좋은데, 과거처럼 마냥 좋은 게 아니라 ‘기본은 했네!’ 그런 느낌이다. 한 마디로 자기객관화가 되고 있달까?
계속 쓰다 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쓸수록 글은 더 어려워지고 매번 쓸 적마다 출발선에 다시 서는 느낌이다. 이번에도 제대로 써낼 수 있을지 마음을 졸인다. 그렇게 애를 써 글을 완성해도 누구보다 내 글의 부족한 점을 제일 잘 아는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이다. 꾸준히 에세이와 소설을 쓰지만, 내가 대단히 잘 쓴다는 마음은 들지 않는다. 한 마디로 나의 재능은 누구의 표현을 빌리자면 ‘애매한 재능’ 수준이다.
그런데도 계속 쓰게 되는 것은 역시 누군가의 말 한마디 덕분이다. 합평이 수다로 끝나 내 글에 대한 유의미한 피드백을 받지 못해서 실망스러운 적도 많다. 그래도 나의 작은 성과들을 칭찬해주고, 내 글이 점점 더 좋아지고 있다고 말해주는 한 사람만 있어도 쓰는 일은 포기할 수 없는 일이 되어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