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기 시작하니 어디 관련 수업이 없나 자꾸만 찾게 되었다. 글 쓰는 것 자체에 관한 관심이기도 했지만, 뭔가 배우면 더 잘 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갈망이기도 했다. 게다가 난 뭐든 배우는 걸 좋아하니까. 그 노력으로 깨달은 건 글쓰기 수업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것이었다.
어렵게 찾은 글쓰기 수업은 대개 도서관에서 하는 거였다. 그 또한 에세이를 위한 수업들이었고. 3년 전부터 글쓰기 수업을 꽤 열심히 들었다. 수업은 짧게는 3회짜리부터 길게는 3달 진행되는 것까지 있었다. 그 이름도 다채로웠다. 내 삶을 바꾸는 창조적 글쓰기, 변화하는 나를 위한 글쓰기, 치유의 글쓰기 등등. 그때 우리 주위엔 생각보다 글쓰기 수업이 많구나~ 생각을 바꾸었다. 관심이 없어 지금껏 몰랐을 뿐이었다.
들었던 수업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수업 역시 도서관의 에세이 수업이었다. 한 분기 동안 진행된 이 수업은 인원이 10명 정도였고 출석률이 매우 높았다. 글쓰기 수업이 학생 모집하기도 쉽지 않은 데다 수업이 진행될수록 출석률이 저조해지는 점을 고려할 때 이례적이었다. 수업은 선생님의 짧은 강의 후 바로 학생들이 글을 쓰는 식으로 진행됐다. 이후 돌아가며 학생들 앞에서 자신의 글을 읽는다. 등수를 매기는 건 아니지만 매주가 백일장이었다.
이 수업이 기억에 남은 이유는 두 가지였다. 아시다시피 에세이는 굉장히 사적인 장르다. 쓰는 사람은 종종 어디까지 자신을 드러내야 하는지 고민에 빠진다. 그런데도 이 글쓰기 모임에서 우리는 처음 만나는 사람이었음에도 자신을 드러내길 주저하지 않았다. 어쩌면 그 낯섦 덕분에 용기를 냈는지 모르지만, 서로의 속살을 드러냈다는 점만으로도 우리는 상대를 더욱 친밀하게 느꼈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의 감정에 쉽게 동기화됐다. 예를 들어 주제가 ‘내 인생의 음식’ 이었을 땐 돌아가신 할머니나 어머니가 해준 음식이 복병이었다. 자신의 글을 읽으며 글쓴이는 어쩔 수 없이 마음을 데워주던 음식을 먹던 시절로 돌아갔고, 글은 듣는 이들까지 그때로 데려가는 힘이 있었다. 많은 이들이 쉽게 울었고, 그때 울지 않았더라도 자신의 글을 읽으며 울컥했다. 어쩌면 글쓰기 수업에서만 볼 수 있는 모습.
번외로 이 수업의 선생님은 나에게 사회문제에 관한 관심을 일깨워주셨다. 웹소설의 매력에 흠뻑 빠져 글에서 재미가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던 때였다. 굳이 어둡고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이 선생님을 만나지 않았다면 내 글은 더 폭넓고 더 깊어지지 못했을 거라고 장담할 수 있다.
여러 번의 수업에 참여하며 느낀 건 이것이 생각보다 취향을 탄다는 것이다. 난 여자 선생님이 더 맞았고, 내가 쓰려고 하는 글의 장르와 일치하는 선생님이 도움이 많이 됐다. 휴메트로에서 진행한 소설가의 시민강좌가 그랬다. 소설을 쓰긴 해도 소설이 처음이었던 내게 선생님의 피드백은 가장 실질적인 도움이 되었다.
내 짧은 경험에서 얻은 결론은 세상엔 글 쓰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수업이란 건 없다는 것이다. 그런 걸 기대하고 가면 실망하게 된다고 감히 예언한다. 자꾸 글을 쓰라고 하니 부담스럽기는 얼마나 부담스러운지. 그런데 여기 의외의 장점이 있다. 글 친구를 사귈 수 있다. 글은 혼자서 쓰는 거지만 함께 그 외로움과 어려움을 함께할 수 있다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가 된다.
조금 엉뚱한 나의 바람이지만, 나 역시 기회가 된다면 도움이 안 되는 글쓰기 수업을 진행하고 싶다. 나의 경험을 살려 마음에 핀 글쓰기에 대한 열망의 불꽃이 사그라지지 않도록 응원할 수 있는 그런 수업을 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