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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국 방구석 주부 Aug 13. 2022

로드트립이 준 교훈

D+9(2) (aug. 10th 2022)

( 글에서 계속)


요새는 한국 고속도로에도 암행 순찰차가 생겨서 많이 낯설지는 않지만, 내가 유학을 하던 시절에는 암행 순찰차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특히나 장거리 운행을 하다 보면 조금이라도 일찍 도착하기 위해 속도위반을 많이 하는데, 한국처럼 속도위반을 카메라로 잡는 것도 아니고 하니, 조금 맘 놓고 위반하기도 했다. 옳지는 않지만, 그 시절엔 그랬다. 카메라 앞에서만 속도 줄이고 그러니까. 그러다가 무서운 미국 경찰한테 잡히면 (풀 오버라고 한다) 매우 무서운 건 안 비밀이다.


미국에 온 지 열흘이 안 되어 경찰에게 풀오버 되다니… 갓길에 차를 대고 가만히 있는데 손 발이 부들부들 떨렸다. 미국에서 경찰이 차를 세우면 절대 꿈쩍도 하면 안 된다. 핸들을 잡고 있는 상태로 있다가 면허증을 보여달라고 하면 그제야 움직일 수 있다. 하지만 수상한 움직임은 안된다. 총을 꺼내려는 것으로 오해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동양인이 총을 꺼내리라고 예상하는 미국 경찰은 많이 없다. 거기에 고속도로 경찰은 우리가 흔히 보는 미국 영화의 경찰과는 많이 다르다)


고속도로여서 경찰관이 조수석 쪽으로 다가온다. 나는 조수석 창문을 내리고 최대한 친절하게 인사를 건넨다. 경찰도 친절하게 응대한다. 밝은 목소리로 인사하고, 위반을 했다는 사실을 고지한다. 무엇이 문제였는지 아냐고 물어봐서 사실대로 잘 모르겠다고 했다. 그랬더니 아까 전에 추월을 하면서 제한 속도를 넘기는 위반을 했단다. (이봐요 아저씨, 여기 제한 속도로 달리는 차가 나밖에 없었다고요…라고 하고 싶었지만, 생각도 나지 않았다) 그러면서 만약 안전띠를 매지 않았거나 다른 위반 사항이 있었다면 티켓을 끊었겠지만, 다른 법규는 잘 지키고 있어서 보내 주겠단다. 고맙다고, 제한 속도 잘 지키겠다고 답했다.


신분증 확인만 해보겠다기에 내 여권과 한국 운전면허, 그리고 국제 면허증을 보여줬다. 미국엔 어쩐 일로 왔냐길래 아내가 박사과정을 시작했다고 알려주며, 안 그래도 면허 번역하러 가는 길이었다고 답했다. 그랬더니 아 그러냐고 미소 짓는다. 다행히 잘 마무리되었고, 다시 가던 길을 재촉했다. 하지만 속도는 잘 지키면서. 그새 긴장이 풀어졌나, 스스로를 다잡으면서 영사관으로 향했다.


고속도로는 금세 영사관이 위치한 도시로 이어졌다. 영사관은 대부분 대도시에 위치하고 있고, 내가 찾은 도시도 마찬가지다. 서울에서 태어나 30년을 넘게 산 데다, 샌프란시스코도 있어 봤고, 라스베이거스도 있어 봤고, 뉴욕에도 있어 봤는데, 또 다른 미국의 대도시, 신기하다. 촌놈 티를 팍팍 내면서 영사관이 위치한 건물 앞 공원에 차를 주차하고는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내 모습이 마치 미국 영화에 나오는 막 대도시에 도착한 이주민 같은 모습이다. 맞나? 하여간.


다행히 예약시간보다 이른 시간에 영사관에 도착했다. 예약시간이 조금 남기는 했지만, 먼저 들어가면 업무를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들어가 보았더니 역시나 바로 일을 처리할 수 있었다. 블로그나 홈페이지 등을 통해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꼼꼼하게 준비해 갔는데, 다행히도 잘 준비해 왔다고 칭찬받았다. 이 나이에. 풋.


아내는 절대 무리하지 말고 힘들면 하루 묵고 오라는 당부를 받았지만, 힘든 일을 내일로 미루는 게 왠지 더 싫다. 거기에 전체 거리의 절반 정도는 직선 도로여서 부담이 덜하다. 크루즈 컨트롤에 감사한다. 그래, 집에 가서 자자. 차에 다시 올라 내비를 찍어봤더니 역시나 5시간이 나온다. 여기까지 왔던 길을 복기해 보니, 앞으로 3시간 정도는 난이도가 낮은 운전 길이고, 마지막 2시간 정도만 정신 바짝 차리면 될 것 같았다. 호기롭게 출발하자!


돌아오는 길, 십수 년 전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땐 어학연수 때였고, 유학을 위해 토플을 봐야 하는데, 근처의 시험장이 없어서 프레즈노라는 샌프란시스코와 LA 중간에 있는 도시로 시험을 보러 가야 했다. 그땐 면허도 없고 차도 없어 대중교통을 이용해 가야 했는데, 그 도시는 정말 시골에 학교 하나 있는 농촌의 거점 도시 같은 곳이다. 그레이하운드와 같은 고속버스를 타고 가야 하나 걱정했는데, 당시 다니던 교회의 집사님 한 분이 흔쾌히 태워주셨다. 사실 시험을 보러 가는 거니까, 그냥 가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시험을 보는 4시간 동안 기다리셨어야 했고, 그날 다시 돌아와야 하는 일정이었다. 그런데도 그 먼 곳까지 태워 주신 데다, 다시 데리고 와 주시기까지 하셨다.


참 감사한 일이었다. 난 지금 내 일 때문에 이 일정을 소화하고 있지만, 그분은 어려움에 처한 한 교인을 위해 그저 도와주셨을 뿐이다. 그 덕분에 무사히 토플 시험을 마치고 돌아올 수 있었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사실 해외 생활은 주변의 도움이 많이 필요하다. 나와 우리 가족은 다행히도 과거 해외 생활을 한 경험이 있어, 한 단계 한 단계 스스로 할 수 있는 여건이 되었지만, 그것도 어찌 보면 위 일화와 같은 다양한 도움의 손길들을 통해 얻은 것일 터다. 혹시 후에 그런 도움의 손길이 필요할 때, 나도 손을 내밀 수 있는 사람이 되리라.


영사관 업무를 일찍 잘 마친 덕에 해가 지기 전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하루 종일 먹은 거라곤 물 한잔, 그란데 아이스 아메리카노 2/3잔. 그게 다다. 화장실이 급해질까 봐 아무것도 먹을 수도 없었다. 집에 가까이 오니 긴장이 풀어지고 배도 고파진다. 집 앞에 있는 치폴레에서 부리또를 샀다. 그렇게 무사히 원데이 로드 트립을 마무리했다.


아무 말썽 부리지 않고 가고 오고 해준 렌터카, 친절하게 풀 오버했던 고속도로 경관님들, 영사관에서 친절하게 응대해준 영사님, 무한도전 가요제 음악들, 그리고 무엇보다 집에서 가슴 졸이며 기도하고 있었던 아내에게 감사하다.


다시는 로드 트립 가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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