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늘부장 Mar 01. 2022

늘 부장의 직장 일기

희망퇴직을 통보받았습니다.

22년 2월 하순 어느 날.


회사로부터 희망퇴직을 통보받았습니다.

이날 아침 인사팀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조용한 방에서 잠시 통화를 하자고 해서 요 며칠간 이상한 기운을 느꼈는데 올 것이 왔구나 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혹시나 다른 일로 전화를 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라는 일말의 기대를 했지만 나쁜 예감은 예외 없이 들어맞는 법. 수화기 저 너머에서 들려온 얘기는 이번에 회사에서 실시하는 희망퇴직 대상자에 해당되기에 고민을 해서 몇 일내 답을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그 답이라는 것은 이제 나이도 들고 했으니 이제 커 가는 후배들을 위해 회사를 떠나면 좋겠습니다 라는 답변을 기대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28년 다닌 회사인데 인사에서 갑자기 화요일 연락을 주고 금요일까지 즉 3일 만에 결정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명색이 국내 대기업 인사라고 하는 조직이 말입니다. 이러한 인사의 처신에 흥분하고 분노하는 게 잘못일까요? 이런 사태를 대비해서 진작에 일 열심히 해서 평가를 잘 받아 놓았어야지라고 하면 할 말이 없습니다. 저평가자 위주로 희망퇴직을 받는데 무슨 항변이냐고 말할 수도 있겠지요. 어떤 벌어진 상황에 대해선 반드시 그 전후의 사정을 다 들어야 합니다. 한 부분만을 듣고 판단을 하면 큰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가 있습니다.     


28년째 한 회사만을  다녔고 지금도 다니고 있지만 개인의 평가라는 것을 정량화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해당 조직의 책임자는 모두에게 객관적이고 만족할만한 결과를 줄 수 없다는 것은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그러나 단지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커 가는 후배들을 밀어준다고 고과를 늙은이(?)에게 나쁘게 줌을 이해해 달라는 것입니다. 그때의 양보에 너무나 가슴이 아픕니다. 조직 책임자와 악착같이 싸워서 왜 내가 부당한 평가를 받아야 하는지에 대한  객관적인 자료를 제시해 달라고 했어야 했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던 게 지금에 와서야 큰 후회로 돌아옵니다.     


20대 후반의 나이에 입사 후 미우나 고우나 30여 년 다닌 회사입니다. 부부간에도 처음엔 사랑으로 출발했지만 나이 들어 미운 정 고운 정이 들어 정으로 살아간다고 합니다. 이 조직이라는 것은 그런 정으로 살아갈 수는 없지만 그래도 30여 년 그 회사를 위해 그 회사가 미우나 고우나 회사의 성장을 위해 나름 최선을 다해 왔던 직원을 이렇게 몇일만에 내친다는 것은 인간이 할 도리는 아니라고 봅니다. 조선시대 사대부 양반이 종을 내치는 거와 진배가 없다고 생각됩니다. 회사의 경영진이야 회사라는 조직을 하루아침에 떠나도 그들이 받은 보수를 갖고 퇴직 후 에도 얼마든지 안정된 삶을 누릴 수 있으리라 봅니다.      


그러나 회사에 근무하는 대부분의 회사원은 매달 일정한 날에 들어오는 몇 백만 원을 갖고 가족의 생계를 꾸려 나가고 있습니다. 한 달에 몇천만을 받는 임원들에 비해 너무나 빈약한 급여입니다. 또 누가 옆에서 이렇게 말하기도 하겠지요. 꼽으면 출세하고 임원 달면 되지 않냐고. 맞는 말입니다. 꼽으면 출세하면 됩니다. 대기업에서 임원 될 확률이 500명 중 1명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열심히 해서 1등 하면 됩니다. 열심히 하지 않은 나를 탓해야지 누구를 탓하겠습니까.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입니다. 1명이 임원으로 진급하고 나머지 499명의 민초들의 삶은 피폐해도 괜찮을까요?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어려운 이웃이 있으면 좀 더 가진 사람이 덜 가진 사람과 손을 맞잡고 함께 살아가는 것이 진정으로 더불어 행복을 추구하는 삶의 방식이 아닐까요?     


처음엔 전화를 봤고 홧김에 희망퇴직을 바로 신청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아직 학교 졸업도 못한 애들과 아내를 생각하니 선뜻 그렇게 할 수 없는 현실 앞에 좌절감이 밀려왔습니다. 퇴근 후 아내도 역시 회사에 대해 섭섭함과 배신감은 느끼겠지만 조금만 더 참고 견디자고 했습니다. 조금만 더 노력해서 조금만 더 경제적인 안정을 갖추면 그땐 미련 없이 떠나라고 했습니다.     


“희망퇴직”

신문이나 언론에서 수없이 봐왔지만 남의 일이라 생각했고 그 상황을 닥친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 못 했는데 막상 본인이 당하고 보니 그분들의 좌절감과 상실감이 얼마나 컸을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당시에 그분들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던 것에 대해 새삼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