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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해일 Mar 10. 2024

결심

나는 어쩌다 연기 학원을 갈 생각을 했을까

나는 어렸을 때부터 발표가 싫었다. 발표가 하기 싫어서 F 학점을 선택할 정도였다. 조별 과제에서는 더 많은 일을 할지언정 발표는 피했다. 하지만 졸업하고 난 후 말을 해야 하는 순간들이 많았다. 계속 면접의 연속이었다. 어떻게 면접은 통과했는데 이제 발표가 기다리고 있었다. 내 첫 직장은 스타트업 개발 에이전시로 올 재택근무였다. 웹디자이너도 혼자였기 때문에 나는 일은 많더라도 나만 잘하면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건 너무 순진한 생각이었다. 끊임없는 소통이 기다리고 있었다. 혼자 일하더라도 혼자만 일할 수 없는 게 직장의 기본인데 나는 그 기본을 늦게 깨닫고 말았다.


입사한 지 일주일이 채 안 됐을 때 대표는 내게 UX 기획을 해보라고, 그리고 발표를 시켰다. 포트폴리오에 UX/UI 디자이너라고 써놓긴 했지만 나는 UI 디자인만 집중해서 연마한 학원 출신 초보 웹디였다. 하루 동안 어설픈 PPT를 만들고, 세 명의 개발자 앞에서 발표하기 시작했다. 그때 기억을 도려내고 싶을 정도로 엄청나게 떨었다. 그 뒤로 대표는 내게 기획을 시키는 일은 없었지만 이렇게 물었다. '학교 다닐 때 발표 많이 안 해봤어요?'


극심한 낯가림. 긴장이 많은 성격. 코로나 여파로 비대면 수업을 하면서 바닥난 사회성. 여초 환경에만 있다가 남초 직장에 들어오게 됨. 핑곗거리를 찾으려면 찾을 수 있지만 당시의 나는 심각성을 크게 느꼈다. 계속 이 상태라면 9시간 동안이 너무 괴로울 것 같아서. 생각했다. 이제는 진짜 피할 수 없겠구나. 


스피치 학원 or 연기 학원


연기 학원을 고르는 데 오래 걸리진 않았다. 주변에서 스피치 학원을 다니는 분을 본 적 있었다. 뉴스를 요약하고 이를 발표하는 형식이었는데 공부하는 느낌이 들어 영 흥미가 생기지 않았다. 그리고 연기는 늘 미지에 쌓여있는 영역이기도 했다. 늘 소설을 쓰고, 소설가를 꿈꾸면서도 사실 소설보다 영화를 더 많이 보고, 배우 덕질도 자주 하곤 했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했던 아이돌 K가 연기에 빠져있는 모습을 보면서 더 궁금하기도 했다.


한 달 넘게 검색만 한 것 같다. 취미 연기, 직장인 연기 등등. 나는 1:1 보다는 단체 수업을 찾아봤다. 처음엔 금액 때문에 그랬지만 결과적으로 생각해 보면 잘한 선택이었다. 적당한 거리에 위치해 있고 후기가 많은 연기 학원 블로그를 찾았다. 걱정과 불안감 많은 성격 탓에 블로그에 올라온 모든 글을 정독한 후 연락을 드렸다. 이미 가겠다고 결정했기 때문에 대면 상담을 하겠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때 선생님은 1:1 수업만 진행하다가 오랜만에 단체 수업을 시작하려고 게시글을 올렸다고 말했다. 조용히 밖으로 나와서 전화 통화를 했다. 나는 너무 긴장해서 질문보단 연신 단답만 했다.


"연기 배워본 적 있어요?"

"아니요."

"학교에서 연극 동아리나 이런 것도요?"

"네."

"춤이나 노래를 배운 적은요?"

"없어요."


선생님은 아예 처음인 분들도 등록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지만 나는 아차 싶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이 이럴 때 쓰는 표현이 아닐까? 간단한 대화 끝에 1월부터 학원에 가기로 하고 전화를 끊었다. 너가? 연기를 한다고? 괜히 부끄러워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았다. 나 괜찮나? 괜찮겠지? 두근거림이 옅어질 때까지 계속 운동장을 돌았다. 그때가 12월 무렵의 어느 저녁, 바람이 차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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