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가 사는 법

아이고, 벼슬하셨네요

by 윤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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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의 양상추 쌈 상차림




누나 아빠가 서재 방문을 열고 얼굴을 불쑥 들이며,


"오늘 저녁 메뉴는 부추잡채와 꽃빵, 사이드 메뉴로 옛날식 소세지봉 예정인데 어떠신지? "


한다.


'우와, 매일 이런 호사를 ㅎㅎ~' 하며 큰 누나와 엄마는 행복이 뭉클거렸다. 덕분에 본의아니게 늦게 공부에 뛰어든 두 여자는 오늘은 중간에 끊김 없이 학술자료를 끝까지 읽는 걸로. 음식 맛보는 것을 좋아하는 아빠가 요즈음 자주 부엌을 맡으니, 큰누나는 수랏간 나인처럼 음식 간과 맛을 보러 잠깐 불려 나가곤 하는 즐거움이 생겼다. 엄마가 부엌에 나타나면 아빠의 부엌 사용 방식의 모든 부분이 엄마 레이더에 걸려 평화가 깨어지므로 아빠는 누나에게 간보기를 청한다. 물론 밑반찬과 가끔의 특식, 그리고 냉장고 정리에는 누나 엄마의 손이 움직이지만, 누나아빠가 부엌에 있는동안 누나 엄마는 부엌의 평화를 위해 될수록 모른 체 한다. 행주 사용 방식부터 접시 선택까지 너무나도 다른 취향이므로.


아점심 (brunch)에 누나 아빠는 세 개의 접시에 어젯밤에 내놓았던 에그 머핀과 함께 푸른 야채와 허브를 곁에 놓았건만, 요즘 속이 심하게 메스꺼운 큰누나는 눈도 안 돌리고 '농농 (No, No!)'이다. 아침 그리고 점심을 건너뛰게 되나 보다. 오늘 큰누나는 혈압만 두 번 재고는 빈 속에 약을 먹는듯하다. 약 갯수가 많은데...그래도 예전보단 많이 많이 좋아져서 엄마는 '밥은 먹고 약을 먹어야지' 소리를 꾹 삼켰다. 그리고 아빠와 엄마만 두껍게 부쳐진 달걀이 들어간 에그 머핀을 아점심으로 먹었다. 우울한 누나의 식욕을 돋울 요량으로 시위하듯 즐거운척 맛있게...


물론 말티스 수컷인 나, 수리에게는 건조사료인 알밥과 큰누나가 직접 건조한 쇠고기 몇 점이 주어졌다. 사실 수리도 신선한 야채 즉 오이나 당근, 상추 등이 매일 필요한데... 누나네는 매일은 아니고 가끔 싱싱한 오이나 당근, 그리고 씨를 잘 제거한 수박과 참외와 빨간 딸기를 수리에게 제공한다.


저녁으로 먼저 등장한 소시지롤을 사이드 접시로 먹으려던 계획을 바꾸어 아예 메인으로 간단히 끝내기로 했다. 아무래도 누나 아빠는 여러 가지를 한꺼번에 조리하기가 머리 무거웠나 보다. 덕분에 부추 꽃빵은 내일 아점심으로 밀려났다.


누나 아빠는 요즘 직접 복잡한 요리들을 시도 중이다. 얼마 전에는 탕수육을 만들어서 두 번 튀겨주었다. 돼지갈비찜, 해물찜도 시도했다. 맛이 아주 좋아서 엄마의 커다란 눈이 정말 더 커져서 얼굴에 눈만 보일뻔했다. 사실 엄마는 먹는 일을 그다지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가족들을 위해서, 아빠의 손님 차림상을 위해서 한식, 양식, 그리고 제과제빵을 배웠지만 그뿐이다. 음식을 자주 만들어주지만, 본인이 즐겨 먹는 스타일이 아니니 썩 즐겁진 않다. 그래도 누나 엄만 일하는 짬짬이 밤을 새워 집에서 김치를 담그고 이런저런 음식들을 신선한 재료로 직접 만드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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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마는 귤과 물김치를 곁들여 촉촉하게 먹기



먹는 것을 즐기는 아빠는 맛없는 것도 맛있게 먹는 재주가 있다. 식어빠진 토스트 남은 것도 누나 아빠는 커피와 함께 오후 간식으로 보기에 맛있게 먹는다. 엄마는 다시 구우면 맛있는데, 왜 그렇게 먹냐고 얼굴을 찡그린다. 소중한 배에 음식을 그렇게 넣으면 안 된다나? 어쨌건 엄마는 음식을 조금 먹는 편이고, 아빠는 자주 먹는 편이다. 간식까지...


오늘 엄마는


“근데 어제저녁 머핀과 오늘아침 머핀의 식감이 조금 다른데, 조리방법에 무슨 차이가 있었어요?"


했다. 아빠는


"나도 그걸 느꼈지. 어젯밤에는 냉동 제품을 사서 곧바로 구웠고, 오늘 아점심에는 미리 좀 내어놓아 해동 후 구웠더니 맛이 덜하네. 어젯밤의 방식대로 하는 것이 더 부드러운 듯..." 하고 답했다.


얻어먹는 형편에 엄만


“식사 때 얘기하면 마음 어려울까 봐... 뭔가 조리방법이 달랐을 것 같아서 묻는 거예요.” 하고 음식 맛의 변화를 전달하고야 만다. 어쨌건, '맛있다'는 엄마와 누나의 호평에 아빠는 어제 저녁 그리고 오늘 아점에 연이어 머핀을 제공한 거다.


복잡한 조리법을 누나 아빠는 두려움 없이 곧잘 시도한다. 튀김도 찜도... 손도 빠르다. 전생에 아빠는 여자였을 거라고 엄마는 가끔 말한다. 퇴직 후 보여주는 솜씨들이 세상의 대부분의 아내들이 원하는 남편의 생존 재주들이라나... 단 주부들이 아빠처럼 음식을 준비한다면 일단 식비 엥겔계수가 너무 높을 위험이 있단다. 지금이야 큰누나의 건강 회복을 위한 준비단계이니 오케이이지만... 매 끼니 조금씩 다르게 식단을 바꾸어주는 누나 아빠의 정성에 큰누나는 행복하고, 엥겔계수 걱정을 하는 엄마는 마음이 두근거린다.


누나 아빠는 누구라도 맛있다고 하면, 아주 가까운 시간에 한번 더 그 음식을 제공한다. 문자 그대로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을 실현시킨다. 큰누나랑 작은누나는 늘


“아빠에게는 솔직하게 많이 맛있다고 얘기하면 안 되겠어.”


한다.


역시 오늘 장바구니에 냉동 머핀이 또 들어왔다. 오늘 점심때에도 그 에그 머핀 정말 맛있었다고 할 때부터 나, 수리는 이미 불안했다. 에그 머핀을 어젯밤, 그리고 하루 2식 중 1식인 아.점심에 먹었는데...

오늘 오후 장보기로 냉동 머핀이 따라왔으니 조만간에 에그 머핀이 또 나올 기세이다.


그렇다 해도 그 남자의 브런치 메뉴는 공부하는 큰누나와 엄마에게는 판타스틱 (fantastic)하다. 누구 말마따나 큰누나네 집에서 보통 새벽 2시 즈음까지 자료를 보다가 잠자리에 드는 늦공부하는 늙은 여자와 아픈 여자는 요즈음 '아이고, 벼슬하셨네요' 중이다.




*이번 학기엔 마무리하는 논문에 코를 박고 지내느라 정신차릴 새없이 하루를 보냅니다. 당분간 글을 올리기 어려워 메모만 하고 있습니다. 읽어주시는 여러분들께 항상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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