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서는 아이들의 유아원이 아파트를 내려가면 바로 길 건너편에 자리한 시니어 아파트 건물 내에 있어서 즐겁게 다녔다. 하루에 몇 번도 들여다보고 싶던 그곳에 4살에 들어간 아이들은 엄마와 헤어지는 아침시간이면 눈물이 핑 돌며 원장 품에 안긴 채 언어가 안되니 고개만 끄덕였다. 마음 전달이 안될 때에는 고개를 젓는 게 고작이던 처음에는 엄마도 아이를 유아원 입구에서 교사에게 건네주며 눈물이 알싸하게 돌았다.
그리고 인종차별이 제법 있던 곳이어서 가톨릭 초등학교에 입학시켰다. 큰아이가 만 5세가 되어서 처음 학교 유치원으로 옮겨가던 시기에는 아침시간에 작은 발로 학교 유치원까지 걷기에는 좀 멀었다. 성인 걸음으로 15분 거리이니.... 작은 아이의 유모차에 앉혀서 엄마가 쌩쌩 밀고 가면 훌륭한 자가용이 되었다.
그리고 돌아와서 아직 길 건너 유아원 대기자 명단에 올라있는 작은 아이와 ABC TV의 <sesame street> 만화영화를 함께 보았다. 덤으로 15분간 <뽀뽀뽀> 녹화 비디오를 보며 한글 말하기를 배우곤 했다.
2살 반과 4살 반에 서울을 떠나왔으니 아이 둘은 한글도 영어도 어리벙벙하다. 물론 spoken language는 한글로 가족과의 대화에 어려움이 없지만 연령에 따른 한글 교육시설이 없으니 부모의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
다음에 국내외에서 모두 초등학교와 중학교 일단 집에서 걸어서 10~15분 이내의 거리에 있었으니 길에 허비하는 시간이 적었던 셈이다.
두번째 해외생활 4년 만에 서울에 돌아와서 중학교를 마치고 2002년 작은 아이가 시험을 통해서 선택한 학교가 지하철과 버스를 이용해서 거의 1시간 거리로 왕복 하루 2시간을 길에 쏟게 되었다.
버스멀미가 심해서 스쿨버스는 못타니 지하철을 이용하기로 했다. 일단 체력 소비가 많아서 1년 동안 지켜보기로 했다. 버거우면 집 옆의 여고로 전학하기로...
사실 승용차로 지하철역에 내려주면 지하철을 타고 중간에 또 환승해서 학교까지 가는 길이 힘든 거리임에도 아이는 깔깔거리며 또래 친구들과 행복해졌다.
그리고 가을이 되어 아침저녁 쌀쌀한 시기에 자정 근처에 돌아온 작은 딸은
"엄마, 오늘 엄청 운수 좋은 날이래요. 귀인을 만나서 집에 돌아올 수 있었어요." 한다.
"?????"
"아침에 학교 가는데 지하철 역으로 나가는 계단에 추운데 할머니가 엎드려 있어서 바쁜 시간이라 길게 생각할 겨를이 없어서 순간적으로 지갑에 지폐를 다 건네고 학교를 갔는데..."
"....."
"야자 끝나고 밤에 집에 오는 지하철을 타려는데 돈이 하나도 없는 거예요. 아침에 지폐가 내 총재산인데 깜박하고 엎드린 할머니에게 다 드려서..."
"넌 참...."
"근데 엄마 엄마, 딸이 오늘 귀인을 만난 거예요."
"....."
"집에 갈 차비가 없어요. 도와주세요 했더니 아주머니가 1000원을 주셔서..."
"넌 어떻게 비상금도 안 남기고., 수첩에 비상금 넣어둔 거 없었어?"
"깜박하고 채워두지 않아서... 에이 그래도 오늘 귀인을 만나서 무사히 온 거니까 엄마! 화내지 않기."
우린 가끔 어리숙하다. 길거리 생선차에 붙들려 수표를 몇 장이나 건넨 엄마에 이어 작은 딸도 어리버리하여 한밤중에 차비도 없이 지하철 매표소에서 두리번거리다니... 지하철 타고도 1시간 여나 걸리는 집을....
만나지는 못했지만 딸을 도와준 그 아주머니에게 말할 수 없이 감사했다. 수선 수선한 사회에 핸드폰도 없이 엄마에게 연락을 취할 길도 없던 딸이 느꼈을 막막함이 서늘했다. 겁도 많은 녀석이... 그 와중에 엄마 닮은 사람을 찾아서 승차권 비용을 요청했다는 딸의 지혜가 고마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