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나네 할머니는 시계처럼 정확히 일상을 운영하셨다. 4계절 모두 5시에 알람시계의 도움도 없이 눈을 뜨고, 욕실을 들러 나오시면 곧바로 먼지 털기와 청소를 시작하신다.
그동안 각 방에서의 수면시간은 여전히 이어지는 중이고, 할머니 혼자 필요한 부분에 전등을 켜고, 먼지떨이와 빗자루, 그리고 걸레로 변신한 할아버지의 낡은 흰 러닝셔츠나 헌 타월 등으로 거실과 부엌, 식탁 주변, 그리고 앞 뒤 베란다 화분과 항아리 주변까지 말끔하게 쓸고 닦기를 끝낸다. 앞 뒤 베란다를 맨 발로 마루처럼 걸어 다닐 수 있게 깔끔하게.
이어서 가족 구성원들이 주섬거리고 일어나면 그들이 어지른 방이 다음 차례이다. 물론 장승처럼 키 큰 세 아들들이 이불을 장에 잘 개켜 넣고, 쓸기와 닦기를 나누어 담당하고, 할아버지는 거실 소파에 앉아 TV 뉴스를 보시고... 할머니는 조용히 아침식사를 준비하신다.
1920년 말에 태어나신 할아버지는 1980년대 후반에 비친, 누나엄마인 큰며느리 눈에 우렁각시는 고사하고, 오직 본인의 몸을 씻고 닦을 때에만 손에 물을 묻히신다.
1931년 출생인 할머니는 1980년대에는 청소를 마치신 후, 전날 스텐 양푼에 불려둔 쌀을 전기밥솥에 안치고 물 조절을 한 뒤, 밥솥 코드를 켠다. 전날 밤 미리 재료를 준비해둔 계획에 맞춰 국이나 찌개를 준비하고, 냉장고에서 잘 맞는 뚜껑이 덮어진 반찬 그릇을 꺼내고, 생선이나 고기가 번갈아 구워 올려진다.
방문할 때마다 누나엄마는 '어쩌면 이렇게 정갈할까' 감탄한다. 먼지 한 톨이 눈에 보이지 않게 자그마한 장식품 위에도 손길이 닿아서 깨끗하다. 음식도 크게 지출을 감행하지 않고도 여간 맛깔스럽게 준비하여 상차림을 완성하신다.
누나엄마에게 시어머니의 밥은 늘 맛있다. 김치찌개도 요리사처럼 늘 같은 맛이 유지된다. 내 김치찌개는 매번 맛이 조금씩 다르다. 양념 비율 눈대중이 제멋대로인 까닭일 게다.
누나엄마도 해외에서 전업주부일 때에는 오전 오후 쓸고 닦고, 계절에 맞춰서 쉴 새 없이 커튼이나 식탁보, 이부자리 커버 등을 바꿔 끼우고 서랍장을 정리하고 위치를 바꾸며 환경정리를 했다.
누나네 아빠는 서랍장의 서랍 순서가 바뀌어서 양말 있던 서랍이 아래로 내려가거나 속옷 서랍이 위로 바뀌었을 때 제일 황당해했다. 반짝거리는 아이디어를 따라서 서랍 배치를 달리하는 아내의 변덕에 남편은 바쁜 출근시간에 서랍을 여기저기 열어야 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환경정리는 같은 공간에서 종일 아이들과 비비고 사는 누나엄마에겐 산소 같은 활력소가 된다. 누나아빠가 가장 싫어했던 <서랍 위치 바꾸기>는 바쁜 시간에 당황한 누나아빠의 큰 목소리에 미안해서 곧 멈추었지만...
누나엄마는 두 딸이 2~3살 즈음에는 손가락 기능 발달 놀이로 아이들과 미용티슈에 솜을 넣어 실로 묶어서 인형을 만들었다. 그리고 스카치테이프로 천정 가장자리에 나란히 붙여두면 가끔 인형의 무게를 못 이긴 스카치테이프와 함께 하나씩 서서히 떨어져 내린다.
그렇게 떨어진 인형과 천장에 매달린 인형들을 소리 내어 세며 숫자놀이를 했다. 머리핀을 세거나 아가방과 베비라, 압소바 등에서 얻은 이름표를 하나씩 옮기며 숫자를 세는 일도 아이들은 좋아했었다. 유아원이 없던 시절...
누나엄마가 매일 1세와 3세의 아이 둘과 할 수 있는 놀이는 색종이 자르기부터 무궁무진했다. 식용색소를 입혀 밀가루를 이용한 반죽 놀이도 아이들이 좋아했던 놀이 중 하나이다. 그리고 시어머니와 비슷하게 청결을 유지하려 안간힘을 썼다.
그 시기부터일 게다. 쉬는 휴일이면 아이 돌봄에 지친 아내의 우렁각시가 되어 토요일 오전 출근하고 돌아온 커다란 남자가 걸핏하면 마루를 쓸고 닦았다. 마치 엄마의 시어머니가 하시듯이 똑같이 정갈해 보였다.
다른 점은 먼지를 털지 않아서 호젓한 곳의 비품들은 나중에 따로 손질을 해야 했지만 1980, 90년대 가정에서 남편의 자발적인 집안일이 얼마나 고마운가.
전기청소기가 나오고 청소기의 기능이 늘어나며 커지고 무거워졌다. 온 집안에 wall-to wall 카펫이 깔린 나라에서 카펫 청소에 특기를 발휘하는 독일 청소기는 무게가 꽤 나가서 웬만한 여자는 두 손으로 움켜 들어야 했다. 누나네 집에서는 청소기 돌리기가 점점 키 큰 누나아빠의 차지가 되었다.
더구나 아내가 전업주부를 졸업하고 다시 공부를 추켜든 상황이라 남자들이 거의 절반쯤 가사를 나누어 담당하는 서양에서의 오랜 생활은 누나아빠가 점점 바람직한 우렁각시가 되도록 도왔다. 당시 엄마가 재료를 씻고 얇게 잘라 냉장고에 넣어 둔 뒤 자동차로 1시간 거리의 학교로 향하면 small lunch 용 과일과 점심 샌드위치 정도는 스스로 싸서 다닐 만큼 누나들도 자랐다.
해외에서의 학사일정을 마무리하는 아내와 큰딸을 남겨둔채 누나아빠가 작은 누나와 귀국 후 아빠는 혼자 엄마 아빠 노릇을 하게 된 기간도 있어서 더욱 전천후 아빠 노릇을 하게 되었다.
누나아빠스타일의 문제는 연세 드신 부모님이 기다리시는 시댁 방문 약속 시간을 앞두고도 청소기를 끝까지 열심히 돌려야 하는... 업무의 대강 마무리는 도대체가 불가한 융통성 적은 스타일 상....
결혼 후 생존 요령이 서서히 베어든누나엄마는 약속시간을 맞추기 위해 돌리던 청소기를 한편에 세워둔 채 출발하는데, 누나아빠는 마무리후 제자리에 정리를 하고서 출발한다. 늦은 밤에 돌아왔을 때 거실이 어수선하지 않고 정갈한 모습을 유지할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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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통성 적은 누나아빠 덕분에 어려운 시댁 도착 시간이 늦어질까 봐 누나엄마 가슴은 콩콩 뛰곤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늦은 밤 아이들과 현관문을 열고 들어설 때 맞이하는 거실 모습은 단정하고 정갈해서 누나엄마의 마음이 차암 편안했다.
그런 상황이 반복되면서 정갈하게 청소기를 밀어대는 남편이 아주 당연하게 여겨졌나 보다. 언젠가부터 남편이 짬날 때마다 청소기를 돌려주는 일이 누나엄마에겐 성가시게 여겨졌다.
하루 1번 청소기를 내가 돌리고 있으니, 시간을 잡아서 매번 그렇게까지 깨끗하게 청소를 하지 않아도 되는데... 단독 주택에서 거주하던 해외와 달리 아파트 거주인 서울에서의 청소기 모터 소리가 시끄럽게 여겨졌다.
주부의 귀에 청소기 소리가 시끄럽다니... 마치 남의 임무인 것처럼 객관적으로 들린다는 의미일 게다. 정갈하게 바닥이 청소되어 있어야 될 만큼 기어 다니는 유아도 없고, 두 아이는 청소년으로 자라서 종일 학교에 가 있으니 이미 아내가 청소를 마친 집안을 내일 (tomorrow)을 위한 도움의 손길로 오늘 또 청소할 필요는 없으므로.
그렇게 일상이 이어지다가 2015년 큰 누나가 의료사고로 병원 입퇴원을 반복하게 되었다. 내일을 짐작도 할 수 없게 점점 병명이 늘어갔다. 갈수록 태산이다. 종일 침대에 누운 시간이 늘어가는 큰누나의 정서안정을 위해 청소기보다는 빗자루와 바닥 밀대로 청소도구가 바뀌었다. 그리고 시한이 없이 점점 딸과의 병원 동행이 늘어나고, 체력이 부족하여 누나네 부모 모두 청소를 등한시하게 되었다.
이제는 누나엄마는 부분 부분 빗자루를 이용하다가 생각나면 청소기를 돌리면서, 스멀스멀 남편의 씩씩하던 청소기 소리가 그립다. 청소기를 돌린 뒤 필터까지 깨끗하게 털어 정리하던 남자가 어느새부턴가 청소기를 소 닭 보듯 한다.
누나엄마는 딸과 함께 주 1회 종일 대학원에 있는 날이 다가오면 전날부터 눈치를 보다가 남편에게 청소기를 돌려줄 것을 가끔 부탁하고야 만다. '산할아버지', '왜 불러', '고래사냥' 노래에 익숙한 70, 80 년대의 직장 다니는 남편들이 주부에게 그랬듯이
'그이는 집에서 놀 테니까, 바쁜 나 대신 좀 하면 좋을 텐데...'
하는 생생으로.
오늘은 큰누나가 아픈 뒤 거의 7년 만에 처음으로 (아마도 누나엄마의 허풍스러운 기억이겠지만... 그만큼 반가웠다) 누나아빠가 자발적으로 청소를 하는 중이다. 아주 오랜만에 자발적으로 청소기 모터 돌아가는 소리를 누나엄마는 서재의 컴퓨터 앞에 앉아서 들으며 얼마나 반갑던지... 계속 이어 주기를 바라는 마음에 청소가 끝나고 '고맙다'는 말을 반복해서 여러 번 건넸다.
시어머니를 닮은 남편의 깔끔함의 고마움을 잊고, 청소를 맡아서 해주는 남편의 따스한 배려를 아내는 권리처럼 누렸었나 보다. 누나빠는 이제 허리가 시원치 않아 가끔 횡단보도 건너다가 발을 못 떼고 주춤거리기도 한다. 그럴 나이가 된 건데... 그동안 수고로움이 가득했던 시간들이 지나고, 어제·오늘·내일로 이어지는 일상에서 조금씩 기능을 줄여가는 몸을 실감하지 못하고...
내가 아닌 남을 이해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설령 반쪽으로 명명된 사이라 할지라도... 이렇게 변덕이 죽 끓듯 일렁거린 시간들을 무사히 보내고 둘이 의견 다툼으로 그예 헤어지지 않고 아이들을 오작교로 용케 잘 이어지다니... 모처럼 건강과 시간 여유가 함께 한 이 시간이 누나엄마는 참 귀하고 소중하고 고마운 마음 그득하다.
내리막 길에 누리는 평화의 시간이 얼마일지 내일 (tomorrow)을 모르는 삶이지만, 오늘 누나엄마는 커피 한 잔의 향기로 고마움을 표현하고 싶다, 시어머니를 닮은 우렁각시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