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뜰에서 걷기 운동하는 주민들을 위해 경비아저씨가 놓아준 베고니아 화분과 누나네 상자텃밭. 아파트 관리실과 상의 끝에 누나네 베란다 뒤뜰에 놓고, 구청에서 분양받은 귀여운 크기의 텃밭에서 튼실한 모종으로 자란 상추들을 옮겨 심는다. 뒤뜰 상자보다 텃밭에서 상추의 자람 속도와 영양상태가 훨씬 좋다. 땅의 기운일까...
큰누나가 종합병원을 자주 드나들면서 누나네는 늘 누군가로부터 유익한 정보를 얻거나, 크고 작은 도움들을 받는다. 엄마가 마음이 담긴 작은 선물들을 준비하여 그들의 정보가 고마웠음을 표현할 때도 있다.
정기적으로 신장내과는 2~3주마다, 신경과를 비롯한 다른 과는 1~2개월마다 병원에서 검사를 받고 외래 내원을 하는 동안 친절한 안내를 주고받거나 팔에 놓는 주사를 헤매지 않고 단번에 꽂는 간호사의 도움은 큰누나 엄마의 감정선에 온기를 준다.
병원 의료진들은 대체로 매일 징징대는 환자와 보호자의 하소연을 잘 보듬어주곤 한다. 그럼에도 외래에서도, 수납에서도, 웅급실에서도, 입원실에서도 그들의 업무처리 결과에 대한 환자나 보호자의 거친 항의를 듣는 일을 자주 목격하게 된다. 누나 엄마는 문득 매일 환자들을 대상으로 업무가 이어지는 대형병원 종사자들의 감정선이 궁금해졌다. 어떻게 평상심을 유지할 수 있게 조절하는지...
누나 이름으로 당첨된 작은 텃밭의 생산성은 대단했다. 물만 가끔 주고 가는 누나네 목마른 텃밭이 텃밭 구획들 중 가장 열악한 수확일 진데도 아삭이 상추, 치마 상추, 재래 상추와 비트, 들깻잎들의 성장은 여름 내내 엄마 자동차의 뒷 트렁크를 풍요롭게 했다.
매주 솎아내어도 금세 말 그대로 치마처럼 부풀어 오르는 연초록과 붉으스레 한 잎사귀의 상추들은 인사를 나누고 사는 정도의 아파트 이웃들 현관 벨을 누르고 유기농 상추가 담긴 봉투를 걸어두게 했다. 어느 날엔 고마운 경비실과 아파트의 관리실에도 전했다.
상추를 솎아들고 돌아오는 엄마의 마음에 '네가 있어 행복해~!"노래가 담기기 시작했다. 손재주가 뛰어난 경비아저씨는 누나를 위한 뒤뜰 상추 상자 옆에 베고니아를 심은 화분을 놓았다. 일류 호텔 요리사 출신이라는 사연을 지닌 아저씨는 아파트 진입로 옆에도 자비로 구입한 베고니아들을 주민들이 버린 화분에 담아 줄 세워서 '봄, 봄, 봄~'이다. 큰누나의 119 이송을 여러 차례 목격한 아저씨는 누나네 상자텃밭에 철사심으로 둥글게 천장을 만들어주었다. 덕분에 비가 세차게 오는 초여름에 상자텃밭 위에 비닐을 씌우고 한쪽을 터주니, 잠시 영락없는 초미니 온실이 되었다.
한 도랑 크기에 흩뿌려진 텃밭 상추의 생명력이 큰누나 가족의 우울과 울화를 줄여주기도 한다. 그렇다 해도 상추는 몸을 차게 하는 성질이 있어 과다 섭취는 배탈이 날 수 있다. 신장병 환자는 야채는 될수록 데쳐서 섭취하란다. 매일 상추를 조금씩 곁들인 상차림 덕분에 스테로이드 연고 사용에도 변화가 안보이던 엄마 손가락 피부의 악성 건조증이 다소 완화되는 뜻밖의 효과가 나타났다. 십 년 전쯤 수술용 장갑을 끼고 며칠 동안 이삿짐 정리와 함께 책장 정리 후 손가락 피부에 문제가 생겼다. 그리고 자가면역질환 아토피성 종류라 치유가 어렵다는 진단을 받았었다.
물론 손가락 피부의 건조함이 느껴질 때마다 병원 처방 연고 외에도 수분 유지를 위해 알로에 젤과 베이비오일은 수시로 발라주지만, 아토피 정도의 차이뿐 일상생활에서 맨손으로 물을 만지는 일은 paper cut(책 종이에 베인) 느낌의 통증을 발한다. 꽤 불편한 손가락 피부질환이다.
가을 끝자락 즈음이면 햇살과 바람, 물, 그리고 흙의 기운만으로 자란 텃밭 상추 덕분에 누나 엄마 손가락 피부의 따끔거림이 사라질지도... 아, 이왕이면 누나네 가족의 감정선에도 따스한 도움이 지속되면 좋겠다.
누나 아빠는 햇살이 밝은 날이면 텃밭에서 목이 마른 상추들에 대한 염려로 편치가 않다. 차로 이동하고 주차장이 없어서 아예 경찰서 앞 주차장에 간 크게 놓던지, 길거리에 잠시 주차했다가 운나쁘게 7만 원짜리 교통위반 딱지를 떼던지 해서 더욱 편치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만 텃밭을 향해 있는 누나 엄마 대신 누나 아빠는 조용히 텃밭에 물을 주러 다녀오기 시작했다. 사흘에 한 번쯤... 아빠 마음속에선 몇천 원이면 싱싱한 상추를 한가득 살 수 있는 마트를 놓아두고 이런 체력소모적인 일을 만드는 엄마를 이해하기가 참 어렵지만, 일단 결정된 일이니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 눈치껏 도움을 제공하는 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