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살을 두서너 계단쯤 앞에 두고 있는 큰누나는 침대 정리 외에 집안일이라고는 마른빨래 개켜 정리하기, 빨래 돌리기, 건조대에 펼쳐 널기, 청소기 돌리기 정도만 해보았을 것이다.
대신 말티스 7살로 동물매개치료견인 나 '수리'와 관련된 일은 내 밥 관리와 배식, 내 식기 닦기와 건조하기, 배변, 산책, 이 닦아주기, 목욕 및 헤어 드라이, 동물병원 내원, 애견 미용실 출입, 그리고 그 유명한 '콩주머니 물어오기'와 '굴러, 돌아, 하이파이브, 안녕하세요, 누나의 손가락 끝 신호에 맞춰 방해물 넘기의 일종인 의자 다리 사이 날렵하게 끼어 다니기' 등 일상 훈련은 온전하게 큰누나 몫이다.
미래의 독립을 위해 요즈음 큰누나는 하루 두 끼 식사 중 가끔 한 끼니 정도의 메뉴를 직접 담당하고 있다. 물론 설거지는 아빠, 엄마, 큰누나가 돌아가며 한다. 대부분 아빠와 큰누나 몫이고, 엄마는 누나와 아빠가 당번일 때 일하는 시간이 줄어들도록 식탁 정리를 거들거나 여전히 필요한 크기의 냄비나 재료의 소재를 묻는 일이 다반사인 아빠와 큰누나를 돕는 정도이다.
하여 누나 엄마는 자신의 논문 마무리에 코를 박고 있어서 대체로 기본 반찬 만들기 정도를 하는 편이고, 일상적인 부엌일은 정리 결과를 체크하는 매니저급이다.
큰누나가 준비하는 음식 메뉴는 냉동만두 조리, 부추잡채 흰 빵 부드럽게 쪄 올리기, 또띠아랩이나 달걀찜, 라면, 빵 굽기, 감자 요리, 스파게티 만들기 정도이다. 보통 때는 주로 아빠의 음식 준비가 끝나갈 무렵에 하던 일을 멈추고 부엌에 나타나 식탁 메트와 수저 젓가락 놓기, 과일 배열 등 플레이팅 전담이다. 아, 그리고 냉동실 얼음 청결관리도.
가끔 누나가 '구운 가지 샐러드' 등 시간이 제법 소요되는 일을 하느라 부엌에 있을 때면 누나와 엄마의 거리가 '집의 안쪽에 위치한 부엌'과 '현관에 위치한 컴퓨터 방'과의 거리가 되므로 제법 멀어진다. 그럴 때면 엄마의 몸은 컴퓨터 앞에 있지만 아마도 머릿속은 온통 누나가 있는 부엌 쪽을 향해 안테나를 세워두는 모양이다.
엄마의 눈앞엔 큰누나가 쓰러져서 경련을 하거나 피를 흘리고 부상당한 모습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므로, 평소에 엄마는 자주 고갤 저으며 환영을 털어내거나, 컴퓨터 모니터로 해외 논문들을 확인하는 중에도 하모니카를 아주 낮게 불면서 마음을 진정시키곤 한다. 왼쪽 어깨를 들어 올리지 못할 만큼의 통증이 지속되어도 정형외과 물리치료를 갈 수 없게 바쁜 논문 마무리 상황이니까 PTSD를 치료하는 상담은 적어도 지금은 꿈도 꿀 수 없다.
"우당탕탕~"
요란한 소리가 나는 쪽을 향해서 엄마의 심장박동이 점점 커지며 컴퓨터방의 엄마는 애써 마음을 누르며 숫자를 세고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지난번 뒷베란다에서 터진 큰 소리에 전속력으로 달려간 엄마 때문에 오히려 더 크게 놀란 큰누나의 흐르는 눈물을 기억하고 있는 까닭이다.
그래서 오늘 누나 엄마는 낮은 음성으로
"제노야, 제노야..."
대답이 없다
"제노!, 제노!"
여전히 대답이 없다.
한 음을 더 올려서 누나 엄마는 거실에서 부엌을 향하는 코너를 돌며
"제노, 괜찮은 거지?"
했다. 바닥에 낮은 자세로 빈 반찬통들을 쌓으며 큰누나가 고개를 돌렸다. 부엌 미니 TV의 라디오에서는 음악이 경쾌하게 흐르고 있었다.
"엄마, 쌓아둔 빈 반찬 그릇들이 넘어져서... 엄마 또 놀랬구나.'
"괜찮으니, 됐어. 그래도 대답은 좀 빨리 하지..."
"못 들었는데?"
지난주에 누나 엄마는 자신이 놀람만큼의 크기로 큰누나를 향해서 속사포처럼 쏘아대며 화를 냈었다. 나, 수리 때문에... 내가 두 계단 사다리에 얹혀 있는 부엌의 2L 용량의 음식 쓰레기통을 살짝 잡아 다녀 검사하려다 실수로 쓰레기통이 엎어지면서 우당탕탕 소리가 이어졌었다.
화장실에서 머리를 빗고 있던 큰누나는 엄마의 부름에 잽싸게 대답을 안 했다는 이유로 나 대신 엄마의 번개표 화살을 고스란히 맞았다.
"엄마, 난 엄마가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노이로제야. 사방 군데서 엄마의 '제노, 제노~!" 소리가 에코 (echo, 메아리)처럼 스테레오로 울려."
큰누나의 모처럼의 불평에 엄마는 급당황해서 큰누나에게 사과했다.
"엄마는 뭔가 넘어지는 소리가 나면 가슴이 터질 것 같아. 또 내 딸이 부딪치며 쓰러지는 소리로 들려서...
엄마도 '우영우'처럼 하나, 두울, 세엣'을 세고 나서 일어서는데... 엄마가 미안해, 미안해. ㅠㅠ"
"그래도 다행이다. 오늘 무사하니까. 엄마가 덜 바빠서 그런가? 왜 뭔가 넘어지는 소리가 나면 아직도 가슴이 이렇게 뛰지? 더 많이 아픈 사람들도 있는데, 네 엄마가 유난한 건가보다.... 참..."
큰누나에게 여러 번 사과를 하고서 중얼거리며 정수기의 물을 컵에 담아 들고, 다시 컴퓨터 방으로 향한다. 엄마는 수선스러운 심장소리가 좀 민망한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