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견미용
도서관 관계자와 미팅을 하기 위해 이동 중인 버스에서 내 핸드폰이 부르르 떨었다. 반려견미용실로부터 온 전화였다.
(출처: 나무위키)
"안녕하세요, 여기 애견미용실인데요, 11시 '수리' 미용인데 안 오셔서요."
"네? 내일인데요. 오늘은 제가 미팅이 있어서 내일 오전으로 부탁드린 건데..."
말은 하면서도 내 머릿속에선
'이게 무슨 상황인가'
와 혹시
'내 탓이요!'
가 스멀거렸다.
내 기억이 틀릴 수도 있으므로 메모 달력을 확인하는 게 필요하다.
"내일 11시 예약으로 알고 있는데, 어려우신가요?"
"네? 내일 11시는 이미 예약 손님이 계세요."
"?... 내일 11시는 수리 예약 시간인데요."
"아니에요, 저는 전화예약을 받을 때 즉시 옆 달력에 표시를 해놓기 때문에 정확해요."
40대 연령의 원장은
"자신의 의견이 확실히 맞다"를 강조했다.
한 번 더 내 일정을 말하며, '내가 가능한 시간들을 얘기 후 함께 최종 선택' 했던 예약 기억을 내보였으나 그녀는 단호했다.
'어쨌든 반려견 미용실 일정은 이미 예약으로 꽉 찼고, 당연히 내일 당신이 주장하는 시간도 예약이 되어있다. 오늘 나타나지 않은 당신 잘못으로 당신 개의 미용은 내일 못한다'
의 통보였다.
문제는 수리 목욕과 전신 미용은 프로그램 시작 전날 흰털 관리를 위해 부탁하였다는 데에 있다. 내일 미용을 못하게 되면 모레 수리가 참여하는 12월의 첫 프로그램인데 난감한 상황이다.
물론 목욕이야 시키지만 이왕이면 첫 만남에서 좋은 인상을 주고 싶어 전문 반려견미용실을 택한 거였다.
아, 뭔가가 잘못된 건 맞다.
이틀 전쯤 예약하면 문제가 생겨도 다음날 할 수 있으니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 그러나 이틀 전 반려견 미용은 미용 후 이틀 동안 수리가 산책을 못 나간다는 얘기가 된다.
개들은 산책 시 배뇨를 하거나 배변을 한 뒤 두 발로 땅을 헤집거나 소변이 튄 발을 풀밭에 닦느라 난리댄스를 친다. 수리도 산책 시 단 한 번의 난리댄스만으로도 4개 다리의 하얀 털이 희부옇게 된다. 미리 목욕을 시켜서 깔끔함을 유지하려던 견주의 희망이 뭉개지는 상황이 반복된다.
더구나 실내에서 하는 프로그램이니 당연히 청결유지가 중요사항이다. 물티슈로 발바닥은 여러 번 닦아내지만 털에 스민 고운 흙가루는 빗어도 남아있다.
*아빠와 함께 털 다듬기
그래서 당일 미용실 원장이 아프거나 해서 미용불가가 될 수 있는 위험을 무릅쓰고 바로 전날 예약을 한 거다. 사실 조금 불안했지만. 근데 원장이 몸이 아프다든가의 불가피한 사정이 아니라 내가 예약시간을 착각해서 노쇼가 되었다는 것이고 이제 미용기회가 날아가버렸다는 거다.
대형견은 말티스와 같은 흰색보다는 갈색 모발이 많아서 이런 지엽적인 문제는 덜하다.
평소에는 집에서 전용 전기면도기로 기본미용을 하는 편이다. 그리고 2~3개월마다 목욕미용을 반려견 미용실에 맡긴다. 항문낭도 청결하게 정리하고 얼굴 미용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국내의 반려견들은 유난히 .미용 관리가 잘 되어있다. 해외에서 하던 서툰 내 가위질 방식으로 유지했다가는 치료도우미견이 졸지에 길거리 부랑견처럼 보이기 쉽다.
"제가 외부 미팅 일정이 있는 날은 빼고 평일에 예약일을 맞춘 건데... 어떻게 안될까요?"
"아무튼 내일 수리 미용은 어렵습니다. 이미 예약이 꽉 차서 이번 주는 빈 시간이 없어요."
"네, 그러면 저녁 늦게라도 안될까요? 모래 행사 참여 때문에 수리미용 내일 꼭 해야 하는데요."
"바꾸기는 어렵습니다."
"...."
수년 째 다니는 곳인데... 예상하지 못했던 원장의 단호함과 이 상황이 정말 난감하다.
'어떻게 하지?'
정신을 차리고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문제는 내 기억에 대한 믿음이 스스로도 약하다는 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