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툴게 설명하기

매사 마음 나름인것을

by 윤혜경
60살 꽃 20180907_220505.jpg 작은 누나의 선물

누나는 자꾸 머리 뒤통수가 많이 아프다고 했다. 일단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여러 검사를 하고 칼슘 팩을 맞고 검사 결과를 기준으로 링거를 계속 바꿔달며 전해질 균형도 잘 잡아주었다. 보호자는 위안이 되는데 정작 환자인 당사자는 머리와 등이 아파서 침대에 누워서 혼자 머리를 움직이기가 어렵다.


수술 후 2주마다 가는 것 외에 환자의 하소연이 심상치 않아서 중간에 예약을 하고 외래로 방문했다. 정기진료가 예약된 전문의는 기본적으로 2~3개월 예약이 밀려있다. 그래서 일반의를 예약하고 가면 매번 다른 전공의를 만나게 된다. 엄마는 낯선 의사에게 그동안 환자가 겪은 예상치 못했던 해프닝들을 매번 설명해야 했다. 그들은 약을 추가로 처방해주며 차츰 나아질 거라고 했다.


"왜 환자가 머리 뒤통수랑 어깨가 이렇게 아프다고 할까요?"

"군대를 가보면 말이죠 어떤 사람은 완전 군장을 하고도 몇 키로를 잘 뛰어서 돌아오고, 어떤 사람은 비실거리고 뒤쳐지고 그래요. 사람마다 다르니까요. 아마 수술할 때 머리를 떨어뜨려놓고 하니까 그 후유증이 좀 오래갈 수도 있어요. "


30대로 보이는 젊은 의사는 누나의 엄마에게 이렇게 설명했다.


'4월 말에 집도한 수술의 후유증으로 5월 말에도 머리 뒤통수와 어깨, 등이 저렇게 아프다고?' 수긍하기 어려웠지만 의사 앞에 더 서있어도 도움 될 것 같지 않다. 그렇게 채 3분이 되기 전에 의사의 진찰실 문을 닫고 나왔다. 오늘 3분이 안 되는 외래 면담을 위해 대기실 기다린 시간 포함하여 왕복 5시간을 소요했다.


수술 전 주의사항을 설명해줄 때 의료진들은 돌아가며 설명한 내용 중에 공통적인 내용이 '수술 후 1주일이면 대부분 정상생활을 한다'였다. 큰누나는 그 '대부분'의 확률에서 벗어나 있다. 적어도 누나는 지금 수술 전만큼 독립적이지 않다. 노래를 늘 나지막하게 흥얼거리는 습관을 지닌 엄마도 노래는 닫았고 얼굴이 긴장되어 있다. 큰누나와 번갈아 치던 피아노도 뚜껑이 닫힌 채 오래 조용하다. 컴퓨터 옆에 놓여있던 하모니카가 조별로 들어 있는 분홍색 손가방은 옷장으로 들어갔다. 아빠는 애꿎게 두 여자의 눈치를 살피는 시간이 잦아진다.


대학병원을 한번 가려면 집에서 예약시간보다 적어도 90분 전에 출발한다. 차로 25분 거리라지만 길이 어디쯤에서 막혀서 차가 가다 서다를 반복할지 모르니까. 두어 차례 백화점 부근에서 차가 걸어가서 간호사실에 전화를 걸어 양해를 구하던 일이 생긴 이후 더 미리 출발하곤 한다. 예약시간보다 최소한 30분 전에 도착해서 혈압과 체중을 재고, 기계에 도착을 등록하고, 운수 좋은 날엔 대체로 예약된 시간 언저리에 의사를 만나지만, 대부분의 경우 예약시간을 지나고도 30분에서 90분 가까이 기다리는 여정이다. 대기실에 빈 의자 없이 가득 앉아있고 그리고 여기저기 공간에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로 숨이 찬다.


호명에 맞춰 진찰실 바로 앞의 3인 대기의자에 앉아있다가 차례가 되면 문을 열고 들어가서 담당 의사를 2~3분 본다. 엄마가 대학시절에 본 고속터미널 대기실 모습이다. 지금은 터미널도 쾌적하게 공간 정리가 되어있어 여유공간이 많다. 이렇게 매일 붐비는 모습은 예약제에도 불구하고 병원뿐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2015년 5월 그 병원의 예약환자 명단은 15분마다 8명씩 채워져 있다. 하얀 A4 컴퓨터 용지에 프린트하여 진찰실 밖 벽에 붙여놓았다. 환자 진찰이 끝나면 간호사는 볼펜으로 이름을 그었다. 엄마는 몇 번이나 가서 누나의 차례가 언제쯤 오는지 앞에서 볼펜으로 그어진 명단 숫자를 확인한다. 그렇게 고단한 기다림 끝에 의사를 보고 약 처방을 들고 나서면 병원 정문이나 후문에 늘어선 약국까지 걸어서 최소 10분은 걸린다. 그곳에서도 또 최소한 30분은 기다린다. 환자가 밀려있는 날은 기다림이 1시간도 기본이다. 병원을 가는 날은 아침부터 서둘러도 하루를 다 쓰는 셈이 된다.


집이 서울이기에 망정이지, 지방에서 맘먹고 올라온 환자와 보호자들의 여정은 또 얼마나 길고 고단할지 가늠조차 할 수 없다. 그렇게 한나절을 다 보내고 누나 아빠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모녀는 돌아온다. 처음엔 지하철을 타고 다녔다. 그러다가 누나가 힘없이 스르르 넘어지고 나서부터는 아빠가 기사를 자청하고 나섰다. 병원에서 돌아오면 지쳐서 손과 발을 씻고 환자도 보호자도 침대에 눕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새해 덕담을


"건강하세요~."


하나보다.


엄마는 예전 부모님의 6개월여의 병원생활과 이후 내원에 동반하곤 했던 무거운 과정이 지나고 나서는 10여 년을 무탈하게 지내오던 바이다. 별안간 한창나이의 큰누나 건강이 노선을 살짝 벗어나서 가족 모두의 일상이 달라진 현재가 조금 당황스럽다. 그렇지만 위치가 좋지 않아 놓아두는 것은 불안하다고 했던 진단 결과에 의해 안전하게 아주 작은 암덩이가 든 조직을 전절제하여 암의 다른 기관으로의 전이를 막아서 얼마나 행운인가? 시간이 지나면 대부분의 환자들처럼 회복될 것이니 복약 기준을 잘 지키며 햇살을 쬐고 마음을 편안히 하기로 다독거렸다.


모든 일이 마음에 달린 것이거늘... 누나 덕분에 누나네는 세 끼니 모두 집밥으로 채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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