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이지(Sage, Salvia, 치료하다 의미. 12월 18일 탄생화, 꽃말: 가정의 덕)(출처: 꽃나무 애기 Band)
2015년 당시 병원 입원환자에게 이웃 침대 방문객들의 오랜 수다는 질병으로 인한 고통 이외에 또 다른 괴로움이다. 방문객들은 환자는 눕혀둔 채 보호자와 온갖 잡담을 나눈다. 마치 엘리베이터나 지하철에서 남의 핸드폰 통화를 듣는 것만큼이나 사생활을 건네 듣는 불편함은 방문객에게 노골적인 불평을 하기에는 민망하지만 진심으로 불편했다. 방문객들의 위로 잡담은 이웃 환자의 수면과 휴식을 방해하는 적극적인 소음공해였다.
심지어 응급실에 환자와 관련된 종교인의 방문 또한 이웃한 침대의 환자와 보호자에게는 괴로움이다. 설령 바쁘고 바쁜 시간을 쪼개어 방문한 목회자의 낮은 기도문 암송이라 할지라도...
2018년 큰누나가 입원했을 때에는 대형 종합병원에 기도할 수 있는 교회. 성당. 절의 미니 공간이 보였다. 이미 있었던 곳일 텐데... 검사 가는 길에 암병동과 내과 건물이 이어지는 통로 한쪽의 사무실에 기도할 수 있는 종교시설들을 발견하고 누나 엄마는 반가웠다. 잠시 설렘과 달리 환자 옆을 비울 수 없어 그곳에서의 기도는 가능하지 않았지만. 또한 제법 쾌적하고 TV와 약간의 편의시설이 있는 면회 라운지가 병실 복도 맞은편에 준비되어 있다. 정해진 요일에는 목회자의 병실 순회도 있다. 해당되는 종교인 환자와 환자 보호자는 목회자의 방문을 미리 신청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면회 라운지가 모든 병동과 병실에 가까이 위치한 건 아니라서, 병실에서의 위로 대화를 선호하는 경우는 이웃 침대의 환자와 보호자들은 못 듣는 척 모두 들어야 하는 상황이 반복되곤 했다.
2015년과 2016년의 대학병원 입원실에서 만성신부전과 추가된 일시적인 급성신부전으로 입원을 반복하며 병명이 하나씩 추가되던 시기에는 몸과 마음이 몹시 고단하여 큰누나네는 이웃 침대 환자들의 이어지는 요란한 방문객으로 인해 퇴원 예정 이틀을 남겨둔 상태에서 1~2인실 침대로의 이동을 의논할 만큼 힘든 적이 있었다. 큰맘 먹고 시간을 내어 방문을 온 지인이나 친지에게 그 환자나 환자가족이 어서 서둘러서 가시라고 어찌 말할 수 있겠는가?
심지어 응급실 침대 옆에서 나지막이 기도를 하는 종교인도 있었다. 응급상황이어서 도움을 청한 경우였을 게다. 그렇다 하더라도 고통을 겪고 있는 우울한 입원환자에게 병실에서 이웃 침대 방문객들의 소음들을 모두 들으며 휴식을 방해받으며 고통을 견디라고 하는 건 정말 부당한 일이다. 큰누나네도 종교를 지녔지만 병원 위문의 폐해를 경험한 이후 새삼스레 병원 위문에 대해 생각을 찬찬히 해보게 되었다. 이후 누나네는 누구에게도 입원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7년여에 걸쳐 병상 출입을 하는 동안 시간이 갈수록 시스템이 나아져서 외부 방문객들의 면회실 사용이 늘어가는 중이다. 메르스 때에 거점병원으로 지정된 대학병원들이 방문객을 한동안 금지하고, 보호자도 1인으로 지정한 경우가 있었다. 2020년부터는 코로나 19 덕분에 직계가족의 출입이 불가한 병원 입원실도 많다. 엄마네는 최근 입원실의 외부 방문객 금지는 바람직한 변화로 이해한다.
응급실 옆 심폐소생실에서는 모여선 환자가족들의 울음이 예고 없이 한꺼번에 크게 터져 나오기도 한다. 응급실 휠체어에서 링거를 단 채 여러 검사를 위해 이동하며 26시간을 견딘 끝에 겨우 몸을 누일 빈자리를 얻어 잠시 잠이 든 큰누나의 놀람이라니... 엄마는 누나의 손을 꼭 잡으며
"심폐소생실에서 어려운 일이 생겼나 보다." 했다.
아마도 위급했던 환자의 생과 사가 갈리면서 급하게 모여든 환자가족들의 슬픔이 폭발한걸 게다. 누구라도 그 상황에서는 울음이 터지는 상황일진대...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상황의 응급실 입원환자들과 바쁘게 움직이는 의료진들을 생각하면 슬픔을 소리 내어 터트리는 방법은 조금씩 바뀌면 좋겠다. '소리 내지 않고 눈물을 흘리는 슬픔 표현은 어려울까?' 생각해본다.
소리치고 울거나 이동하는 관에 몸을 던지며 울고, 누군가는 말리며 떼어내는 슬픔 현장을 뉴스나 드라마에서 자주 보게 된다. 그럴 때마다 누나네 엄마는 저 관을 들고 있는 사람들이 힘들겠다는 생각을 한다. 또한 위험해 보이기도 한다. 다행히 근래에 병원 장례식장에서의 오열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어지고, 슬픔 표현방식은 오히려 차분해졌다.
어쨌든 병원에서도 길거리에서도 대중교통에서도 대한민국은 점점 옆 사람에 대한 배려가 커지는 중인가 보다. 병실에서 만난 이웃 침대의 환자나 가족들 간의 소소한 배려와 정보교환 또한 누나 엄마네에는 든든한 지지가 되었다. 이렇게 슬픔 위로하기의 진화는 엄마네가 1, 2인실보다는 4인실을 선택하는 데에 도움이 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