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게 느리게

1심 법원 판결문

by 윤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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꽈리_자연미 1229 winter cherry 20201201_212110188.jpg *꽈리 (12월 29일 탄생화, 꽃말: 수줍음, 자연미)(출처: 꽃나무 애기 Band))


비록 수술한 병원에서 갑상선 전절제 수술 중 부갑상선 전체의 기능이 함께 상실된 것으로 보이지만, 이미 응급실과 입원실 환경들에 익숙해진 병원에서의 지속적인 치료 또한 큰누나와 보호자의 심리안정에 도움이 되었다. 병원을 바꿔보라는 조언들이 여러 번 전해졌지만 큰누나네는 그곳에서 계속 후속 치료를 받기로 최종적으로 결정을 하였다.


사람이 아파서 지속적으로 병원을 다니게 되면 끊임없이 선택과 결정의 순간이 생긴다. 누나네처럼 좋은 게 좋은 스타일의 성격엔 선택과 결정은 정말 만만한 일이 아니다.



'당신들이 책임지고 해결해주시오.'


였을게다.


맘속에선 몇 번이나 수술집도의의 멱살을 다잡았지만, 비록 경찰에 붙들릴지라도 신문에 나는 성깔 사나운 이들의 행동을 부러워했을 뿐, 누나 엄마는 차마 소리도 크게 낼 수 없었다. 엄마 아빠가 의사가 아니니 그들에게 큰누나의 치료를 온전히 맡겨야 했으므로.


엄마는 여전히 수술 집도의를 방문하여 그이가 가담한 수술진의 둔한 수술 뒤처리에 큰누나네가 얼마나 고단하게 살아왔는지를 소리쳐주는 날을 꿈 꾸는 중이다.


입원해서 의료보험이 되지 않는 고가의 주사들을 맞는 동안 면역저하의 후유증이 어떨지 가늠하기 어려웠던 의료 문외한 보호자의 지난한 결정장애와 혼란스러운 떨림의 시간들...


"사람 많은 곳은 가지 말고, 보호자가 항상 같이 다니고, 마스크는 꼭 하고 다니고, 자전거 타지 말고, 차 운전하지 말고, 수영하지 말고, 길을 걸을 땐 환자가 갑자기 의식을 잃고 차도로 넘어질 수 있으니 보호자가 차도 쪽에 가까이 서고, 환자는 인도 안쪽에 서서 다니고"


의 주의사항을 실천할 수 있을 뿐.


집안의 어떤 의사도 전공이 다르고 상황이 조심스러워서 근심만 나눌 수 있을 뿐 선뜻 의견을 제시하지 못한다.


"요즘엔 워낙 수술 기술이 발달해서 그런 일이 거의 없는데... 처음 듣는 상황이라 판단하기가 참 어렵네요." 했다.



누구라도 동기나 선후배 의료인을 소개해줄 수 있을 뿐, 치료와 관련된 판단과 결정은 비전문가인 환자와 보호자의 몫이었다. '간호보조 학교라도 다녀야 되지 않을까?' 할 만큼 의료분야에 무지한 엄마의 입장은 참으로 오랫동안 난감했다.


아직 갈길이 먼 젊디 젊은 딸의 감히 암수술을 너무 심각하게 품지 않을 요량으로 독감처럼 쉽게 여기고자 했던 엄마의 가벼움이 두고두고 미안했다. 환우들의 공동 홈페이지에서도 큰누나의 수술 후 가늠 범위를 벗어난 증세들은 아주 귀하디 귀한 케이스여서 중심을 잡기가 어려웠다.


수술 전날 늦게 수술동의서를 들고 방문한 흰 가운의 의료인은 진지한 엄마에게 경쾌하게


"10만 명 중의 하나꼴로 생길 수 있는 부작용 가능성은 있지만, 여태껏 거의 수술 후유증이나 부작용은 없었다"며 "안심하셔도 된다"라고 했다.


그리고 수술 4주 전부터 그리고 수술 후 정기 방문에서도 수술 부작용으로 인한 성대 손상 여부를 이비인후과에서 여러 번 확인하였다. 큰누나는 수술 후 회복실을 거쳐서 병실로 돌아온 직후부터 음성이 여전히 맑았고 의사소통에 전혀 지장이 없어 보였다. 그리고 수술팀은 큰누나의 3mm 암 방울 제거와 함께 갑상선 전절제에 이어 부갑상샘 4개의 기능을 모두 망쳤다. 1개는 발견하지 못했고 발견된 3개는 근육에 잘 심었다는 내용이 수술 기록지에는 영어로 잘 적혀있다. 남반구의 항구가 예쁜 도시에서 통번역을 전공한 엄마가 한동안 병원 통역을 해야 했던 묻어둔 과거가 이 지점에서 반짝거렸다.


10만 분의 1이라는 수술 후유증 확률이 큰누나에게는 이렇게 100%의 확률로 다가온 거다.


의식을 잃고 넘어지며 부상을 당해 입원한 응급실로 누나의 외과 수술에 참여했다는 의사 중 1인이 연락을 받고 와서 보호자에게


"갑상선 전절제 수술 후 레이저로 혈관 지혈 중 워낙 얇은 막 뒤에 위치한 부갑상선에 실수로 화상으로 인한 손상이 발생했을 수 있다"라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7년여 동안 그리고 지금도 약으로 조절되며 규칙적인 내원을 하는 큰누나와 가족의 고단함은 수술 후 고단하게 겪은 것은 인정하나 의사의 고의적인 실수로 인정하기 어려우므로 피해자가 오롯이 겪는 게 합당하다는 의미로 읽히는 법원 1심 판결문... 실수를 하지 않았음을 병원 측이 입증하는 것이 아니라, CC TV 조차 확보하기 어려운 환자가 전문적인 내용의 병원 과실을 입증하라는 의료소송 체계라니...


급성 신부전으로 입원한 병실로 내과의사가 새벽에 방문하여 딸의 만성신부전에 이은 세 번째 급성 신부전증 추가 발생에 대해


"자꾸 이런 일이 생겨서... 너무 죄송해서 드릴 말씀이 없어요. 이제부턴 칼슘 처방을 신장 내과와 갑상선 내과 중 한 곳에서 하는 것으로 의논하겠습니다."


고 연신 사과를 하던 날, 엄마는 그 새벽 시간에 방문한 화장기 없는 내과 의사도 딱하고 응급병동에 입원하여 1~2시간마다 혈액 채취와 링거액 교환 중인 아픈 딸도 딱해서 핸드폰 녹음은 고사하고


"선생님이 일부러 그러신 것도 아닐 텐데... 참 이게 무슨 상황인지 ㅠㅠ"


"바쁘신 중에 와주셔서 고맙습니다."도 했다.


엉뚱한 신체기관을 파괴한 외과팀이나 약 처방을 지속적으로 실수하는 내과팀도 참 어이없고, 약이 제대로 흡수되지 않아 종일 다양한 전해질 균형을 위한 한 줌의 약들을 잘 먹고도 14의 고칼슘 혈증과 5의 저칼슘 혈증의 부작용을 널뛰듯 겪는 딸도 참 딱하고... 저칼슘혈증의 경우는 잦은 구토로 약이 함께 날아가버리는 지도...


보기 드물게 발생했다는 어이없는 수술 부작용과 약의 중복처방으로 인한 사구체 여과율 18의 부작용쯤은 피해자가 겪어도 무방하다는 의미로 엄마에게 읽히는 판사의 판결문.


그리고 느리게 느리게 도착한 그 판결문 덕분에 그렇게 수많은 내일이 7년을 지나고 8년째에 이제 전문가로서의 학위논문을 엄마와 함께 어렵게 마무리한 딸의 발자욱을 돌아보며, 누나네 엄마는 그림자 노릇을 하면서 덩달아 전문가 과정을 수료하게 되었다. 설흔 살의 젊은 너무나 젊은 환자의 엄마로서 그동안 메모 형태로 상황을 남긴 기록을 들여다볼 용기가 조금 생겼다. 여전히 트라우마를 털만큼의 탄력은 부족하지만... 이제 약이 17개로 줄어든 게 고마워 객관적인 시야로 지난 시간을 돌아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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