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이 출렁거릴 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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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혜경
*산나리 (11월 10일 탄생화, 꽃말: 순결, 장엄)(출처 : 꽃나무 애기 Band)



금식 후 병원의 검사와 2개 과의 외래가 오전과 오후에 넣어진 날에는 아침과 점심 2 끼니의 3인분 도시락을 솜씨 좋은 누나 아빠가 새벽에 준비한다. 병원 지하 주차장의 차속에서 캠핑 나온 가족처럼 편안하게 짬짬이 먹었다.


누나네가 멀리 학교를 다니기 시작한 이후 아빠가 인터넷으로 메뉴를 찾아 음식을 만들곤 한다. 누나 아빠의 '된장찌개는 최고'라는 가족들의 '엄지 척' 평을 듣는다.


외식을 못하는 딸과 책에 코를 박고 있는 아내를 위해 남편이 새벽에 조용히 준비한 세 끼니의 2인분 도시락을 싸들고 새벽에 나서서 대학원을 다니던 때에 비하면... 수술 후 8년이 된 요즘은 큰누나가 음식을 가리지 않고 먹어도 되는 상황이니 누나 엄마에게는 꿈같은 변화이다.


엄마가 큰누나를 조금 긴장시켜서 아픔에 대한 생각을 조금씩 미루게 하려는 시도로 시작한 '주 1회 학교 다니기'는 대부분을 누워서 잠을 자는 큰누나를 일으켜 앉혔다. 물론 학교를 다녀온 후는 극도의 고단함에 큰누나와 엄마는 이틀쯤 누워서 몸살을 앓았다.


지하철과 기차 속에서도 메스꺼움과 울렁거림, 가끔 뜨거워지는 정전기 발생 같은 피부의 따가움으로 괴로움을 피하고자 잠을 청하곤 하는 큰누나는 규칙적으로 약을 먹고, 약 덕분에 강의실에서도 양털 방석에 엎드려 잠을 잤다.


학교 가는 길엔 큰누나가 좋아하는 양털 방석과 책 스탠드, 그리고 한 줌의 약 복용을 위한 따뜻한 물과 차가운 물, 집에서 만든 과일주스 원액이 든 직사각형의 도시락 가방 2개 등 짐이 많다. 마치 소풍 가듯이 설레며 짐을 준비하는 큰누나네 가족은 일주일에 한 번은 전날 오후부터 부산스럽다.


설렘은 어떤 상황에서도 기대감이 있어서 희망과 함께 꽤 영양가가 있다. 지하철 이동시간을 감안하여 2시간 전에 나서서 서울역에 도착하고, 그곳에서 여유롭게 사람들의 수런거림을 바라보고, 그리고 기차를 타서 7호 기차의 7 AB 좌석에 나란히 앉는다. 기차의 좌석은 늘 7호의 7 AB로 지정해서 끊는다. 그들은 매일 운이 좋아지기를 바라므로.


그렇게 2년을 몹시 고단하게 보내고, 코로나 덕분에 2년 동안 집의 서재에서 쉬엄쉬엄 연구자료 수집과 분석을 하였다. 40-90의 혈압 수준으로 보조약을 먹고 있지만, 소금도 눈치 보지 말고 자연스레 섭취하는 게 혈압상승에 도움된다는 지난주의 외래방문 결과도 있어서 이제는 음식을 특별히 가림 없이 먹을 수 있다.


교수님 덕분에 어려운 과정을 마칠 수 있었으니 누나네는 '저희가 식사대접을 하겠다'라고 제안드렸지만 큰언니 같은 교수님은 '숱한 고생 끝에 마무리한 제자의 학위논문을 받을 때는 교수가 식사대접을 하는 것'이라고 답하셨다.


늘 바쁘신 교수님이 아주 맘먹고 시간을 비우고 나오셨다. 덕분에 눈치 없이 누나 엄마는 아주 오랜만에 눈물 없이 긴 소감과 내일을 풀어냈다.


그렇게 평화가 안착한 듯 여겨지는데도 불구하고 엄마는 딸이 눈앞에 안 보이면 가슴이 뛴다. 어느 구석에서 쓰러진 채 다쳐서 꼼짝 못 하고 있는 환영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상황을 떨쳐낼 수 없는 까닭이다.


딸과 한 팀이 되어 학교에 연구실습을 나가서도 화장실에 들른 딸이 돌아올 때까지 누나 엄마는 표정관리에 실패하곤 했다. 그리고 가슴의 방망이질이 머리 뒤통수로 옮겨서 세차지면 조용히 화장실로 누나를 찾아 나선다.


잠겨있는 화장실 앞에 섰을 때의 망막함이란... 집의 화장실에서 보았던 쓰러진 딸의 환영이 펼쳐지며 가슴이 터질 듯 호흡이 불편해진다.


엄마는 수선 떨지 않으며 잠겨있는 화장실에서 딸을 구해내는 방법을 수 초동안 머릿속으로 궁리한다. 부수지 않고 어떻게 조용히 누구도 눈치채지 않게 문을 열 수 있을까?


이 연구과제를 완성해야 하므로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게 조용히 의자를 가지고 와서 문위로 엎드려서 들어가야 하나? 생명윤리위원회(IRB)의 심의도 수개월에 걸쳐 힘들게 받았으니 중도에 그만두는 일은 없어야 하므로.


망연하게 서서 머릿속만 복잡한 엄마 앞에 나타난 딸은


"엄마는 왜 나와있어요?"


한다. 화장실 앞 1층 복도에서 절절거리며 머릿속만 복잡한 채 서있다가 딸의 무사함을 확인하는 순간의 그 반가움과 안도감이라니.


"1층 화장실 문이 잠겨있어서 하는 수 없이 2층의 화장실로 멀리 다녀온다"

는 딸의 설명을 들으며 민망해진 엄마는 대책 없이 호들갑스러운 심장 방망이를 약으로 조절할 때가 되었나 보다.


딸의 신경과 의사는 딸과 어려움을 같이 겪은 엄마에게도 약 복용이 필요하다고 했지만, 엄마는 아픈 딸의 건강한 보호자이므로 마음 조절에 달려있다고 믿었다.


결혼 10년째인 작은 누나가 퇴근하고서 전화를 걸어 의료소송 관련 second opinion 주선 결과를 전달했다. 판결문에 몹시 실망했지만 한편으론 침착하자 노력하여서 잔잔한 상태의 마음인데...


작은 누나와의 전화를 끊고 나서 엄마는 학회지 논문 준비를 위해 컴퓨터 앞에 앉아 전공과 관련한 짧은 영문 에세이를 읽었다.


그리고 마음이 일렁거리며 별안간 눈물이 쉼 없이 흘러내렸다. 그때서야 마음속에 여전히 슬픔이 덜 가셨음을 깨달았다.


'저녁식사 시간인데 어떡하지?'


젖은 눈빛을 들키지 않으려 엄마는 부엌 TV의 올림픽 빙상경기 중계를 켰다. 큰누나가 솥밥을 준비한 식탁 앞에 앉아 함께 고소한 물 누룽지를 먹으며 마음을 안정시켰다.


언제쯤이면 누나네 가족의 머릿속에 화석처럼 자리 잡은 이 슬픔이 물러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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