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쨌건 사회적 동물

탁구도사 선배들

by 윤혜경

*들장미 (7월 15일, 10.21 탄생화, 꽃말: 시, 사랑스러움)(출처: 꽃나무 애기 Band)



2016년 봄날이 되었으니 큰누나의 수술 후 1년이 지나는 중이다. 젊은 누나는 몸의 근육이 풀려 있어서 운동이 필요하다. 자전거 타기, 수영이나 운전 그리고 혼자 외출하기는 멈추고 엄마가 함께 가벼운 실내 운동과 '햇살 아래 손바닥 펴고 걷기'를 해보라는 신경과와 신장내과 의사의 조언대로 엄마와 함께 운동을 하기로 했다.


주 1회 여성발전센터의 강좌 참여에 이어 조금 외출을 늘려서 집 앞 상가의 지하에 있는 탁구장을 몇 번 살펴보았다. 누나를 설득해서 탁구를 배우기로 했다.


격렬하게 공을 치지 않으면 누나에게 무리가 가지 않을 테고, 엄마가 파트너가 되면 부드러운 운동으로 진행할 수 있다. 엄마는 여고시절 집 마당에 초록색 탁구대가 있었다. 부모님에게 탁구를 배워서 온 가족이 단. 복식으로 탁구를 쳤던 경험이 있다.


특별한 레슨이 없이도 남자들은 커트를 넣은 공격 서브를 멋지게 하고 여자들은 직선 서브를 넣었다. 커트 볼을 맞이한 여자들이 무조건 공중으로 높이 띄워주는 역할만 잘하면 다음 순번이 멋지게 매다 꽂아서 상대를 얼게 만들었다. 탁구공을 상대 앞에 내리꽂을 때의 상쾌함이란...


큰누나는 용평콘도에서 휴가 때 가족과 함께 댄스 하듯 탁구를 친 적이 있다. 끊임없이 날아오는 중국발 황사와 미세먼지 주의보로 인해 불규칙해진 둘레길 30분 산책이 드문드문해지면서 운동을 조금 늘려서 탁구를 시작했다.


동네에서 하는 운동 장소에는 대체로 터줏대감들이 있다. 특히 동네 테니스, 배드민턴, 인라인 댄스, 볼링, 탁구 등은 점심까지 함께 먹으며 운동에 종일 매진하는 사람들 중심으로 기웃대는 신참에게 텃세를 부리기도 한다.


우리 편과 네 편 가르기는 사회적 동물인 사람들이 모여드는 곳에선 늘 나타나는 일상인가 보다. 어지러울 만큼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 도대체 왜 연식과 나이로 서열 정하는 일에 집착이 강한지 엄마와 큰누나는 많이 불편하다.


가끔 지역별 친목대회의 아마추어 선수가 되기도 하는 그이들은 첫 만남에서 대략적인 신상정보를 끌어내어 서로 나이의 높낮이를 확인한다. 성인끼리 붙임성 있게 이름을 부르고, 금세 언니 동생 호칭을 나눠 쓰는 사이가 되기도 한다.


탁구장에서도 직장인이 대다수인 남자들은 대체로 서로 존칭을 사용하는데 비해, 주부생활 중인 여자들은 쉽게 언니 동생을 정하고, 동년배는 이름을 부르고 반말을 사용하는 사이가 되곤 한다. 엄마는 언니라고 부르는 사람들에게도 경칭을 깍듯이 써서 상대가 무안해지곤 한다. 물론 다른 사람들 사이처럼 젊은 이들의 이름을 부르지도 않는다. 그래서 엄마를 부르던 언니라는 호칭이 슬며시 사라지기도 한다


엄마와 큰 누나는 누나의 체력을 감안해서 10분씩 개인 레슨을 받으며 부드럽게 탁구를 쳤다. 30분을 넘기지 않고 누나의 컨디션에 맞춰 레슨용 바구니의 공을 사용할 수 있는 점심시간에 들러서 연습했다.


눈앞의 공기가 자주 흔들거리는 엄마도, 기립성 빈혈이 생긴 누나도 엎드려서 공을 줍는 일은 피할 일이다. 강사의 개인 레슨용 바구니의 공을 모두 친 다음에 앉은 자세로 다니며 공을 한꺼번에 주워 담으면 엄마도 누나도 넘어지는 위험을 줄일 수 있다. 아무도 없는 점심시간이니까.


그곳에서 운동 후 쉬고 있던 사람들이 자신들도 몸이 아픈 게 계기가 되어 탁구를 시작했다고 말하며 격려해주었다. 그렇게 탁구장에서 만난 따스하고 다양한 사정의 탁구 선배들 연락처가 추가되기 시작했다.


누나는 여러 사람들이 모여드는 것을 불편해하지만, 대한민국의 아줌마인 누나엄마는 누나와 탁구장에 주 2회 다니는 것은 취소하지 않았다.


그렇게 6개월이 넘게 똑딱볼을 치며 탁구장을 출입했다. 먼저 이곳에서 탁구를 시작한 동네 탁구선배들은 엄마가 집 앞 문방구에서 구입한 펜홀더 라켓을 보며 셰이크핸드 탁구라켓을 제대로 구입할 것을 조언했다. 대부분 개당 15만 원이 훌쩍 넘어가는 일본 제품이나 유럽 제품을 사용하고 있었다.


여고시절 엄마네는 종합운동장 근처 운동기구 판매점에서 한쪽면에만 고무판이 붙은 일본식 펜홀더를 구입하여 온 가족이 잘 쳤는데... 이제는 악수하듯이 라켓을 잡는 유럽식 셰이크핸드가 대세인가 보다. 탁구 선배들은 운동에 맞는 티셔츠도 맞추어 입었다. 덕분에 엄마도 티셔츠를 2개 주문했다.


물론 엄마와 누나는 평소에 입는 면 티셔츠와 면바지를 입고 탁구를 쳤다. 잘 치는 것도 아니고 누나가 얼마나 칠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운동복부터 갖춰 입는다는 게 다소 멋쩍기도 하여, 엄마와 큰누나는 탁구장에 비치된 공용 라켓을 빌려 썼다. 두 사람은 동네 탁구선배들처럼 땀을 뻘뻘 흘리며 탁구를 치는 수준에 다다르면 복장을 갖춰 입기로 마음먹었다.


3개월이 지나고 탁구 선배들이 추천하는 고가의 라켓 중 대중적이라는 라켓을 문방구 라켓 가격의 15배가 넘는 가격을 지불하고 아픈 큰누나 몫으로 탁구장에 주문했다. 누나가 고가 라켓의 준비로 부담을 느껴 탁구를 계속할 수 있는 동기 유인책으로. 개인 레슨 시간에는 엄마가 누나의 새 라켓을 빌려 쓰기도 했다. 그립감이 좋은 누나의 새 라켓은 가볍고, 더 사뿐한 소리를 내며 공을 날렸다.


전직 선수 출신이라는 40대 관장은 말수가 적지만 속 깊게 회원들의 라켓을 잘 관리해주곤 했다. 그는 회원들의 개인 레슨을 마친 후 자신의 라켓에 탁구공이 만들어놓은 얼룩들 위로 전용 스프레이를 뿌려 정성껏 닦아내었다. 관장이 한 번, 탁구 남자 선배가 한 번 자신들의 라켓을 닦으며 큰누나의 새 라켓도 정성 들여 닦아주었다. 전용 스프레이를 사야 하나 잠시 고민했지만 점점 늘어가는 신형 준비물들로 방의 공간을 채우는 일은 멈추기로 했다.


엄마의 탁구장 공용 라켓에 탁구공이 닿으며 만들어놓은 얼룩을 엄마는 새삼스레 찾아보았다. 대학 시절 집에서 탁구를 칠 때에는 꼭 짠 물수건으로 라켓 고무창을 슬슬 닦고 말려 사용했던 것 같다. 기본 상식인데 무관심했었나 보다. 탁구 선배들도 똑같이 비싼 탁구라켓의 관리에 정성을 들였다. 탁구 선배들은 탁구공도 개별적으로 선호하는 브랜드의 공을 가지고 다녔다. 그 공은 더 가볍게 튀며 경쾌할지도..


엄마가 여고 때 만난 탁구 분위기와 많이 다르다. 이번 탁구선배 여성들은 활기차게 커트를 넣어 회전시키며 서브를 넣는다. 7, 80년대 당시에는 남학생들은 커브볼을 서브하지만 재주가 부족한 여학생들은 직선으로 쳤었는데 이곳에서는 모두들 멋진 포즈로 커트 볼을 주고받아서 엄마는 일찌감치 기가 눌렸다. 여권발급도 어려웠던 1970년대와 해외여행이 흔해진 2018년의 소득 수준 차이가 천지개벽 수준이 되었으니까 모든 것의 눈높이가 달라진 걸게다.


이제 이익 사회생활에서 물러 선 엄마의 생각이나 판단이 많이 구닥다리이다. 분위기를 깨뜨리나 싶어 잠시 눈치가 보였지만 마음을 편히 하고, 다른 사람들은 최소한 2시간 이상 치는 탁구를 엄마와 큰누나는 늘 짝이 되어 30분 놀고 왔다. 등에 땀기운이 살포시 드는 정도가 되면 큰누나는 시계를 보았고, 정확히 30분 운동이 확인된다. 사노라면 새로운 부분이 참 많다. 뭔가를 시작한다는 건 늘 호기심과 기대 그리고 긴장과 불안이 함께 한다.


이웃이 없다면 혼자서는 끈기 있게 하는 일이 없을지도 모르겠다. 열심히 탁구를 치는 탁구 선배들 덕분에 동기유발이 된다. 구닥다리 엄마와 신인류 큰누나도 겨우 30분 동안 똑딱 볼 수준의 탁구를 치면서도 탁구장의 다른 구성원들 덕분에 기간은 제법 오래 유지했다. 엄마도 큰누나도 어쨌건 사회적 동물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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