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류 ( 8월 7일, 12월 28일 탄생화, 꽃말: 원숙한 아름다움)(출처: 꽃나무 애기 Band)
나비 모양의 갑상샘과 갑상샘 뒤의 얇은 막 너머에 위치한 부갑상샘 4개의 기능이 모두 멸실된 큰누나는 부갑상샘의 임무인 칼슘 공급과 조절이 안 되는 칼슘조절장애를 앓고 있다. 순간적으로 나트륨 수치가 치솟기도 한다. 자주 어지럽고 철분도 상시 낮아서 약이 추가 처방되었다. 메스꺼움을 진정시키는 알약도 추가되었다. 약이 늘어나도 영락없이 장기 입덧 중인 임산부처럼 구토나 매스꺼움이 잦다. 누나는 늘 울렁거리는 속이 불편하다는 표현은 없지만 음식은 될수록 조금 먹는다. 수술 후 겪어야 되는 일일 거라며 자주 눈물만 그렁거린다.
어렵게 먹은 약이 울렁거림과 함께 위에서 녹다 만 상태로 솟구쳐 나오면 약을 다시 먹어주어야 되는지 난감하다. 안 먹고 견디면 저칼슘혈증이 두렵고, 더 먹기에는 고칼슘혈증으로 오는 급성신부전 경험이 두려운 까닭이다. 칼슘 수치는 조용히 어느 정도까지 쌓이다가 폭발하는 거겠지만, 엄마와 누나는 칼슘이 금세 춤추는 유령처럼 두려워서 혈액검사 후 내려지는 병원 의사의 처방 외에는 스스로 조절하기가 두렵다.
자주 누워서 눈을 감는 큰누나와 환자 보호자로서 감정의 기복이 생기기 시작한 엄마의 가면성 우울을 조절할 수 있는 규칙적인 외출이 필요했다. 지출이 크지 않으면서 시시하지 않은, 그리고 큰누나와 엄마가 함께 고개를 끄덕이고 선택할 수 있는 놀이를 위한 외출 조건으로...
놀이가 끝나고 식사는 저염식으로 집에서 할 수 있도록 가까운 거리로의 정기적인 외출 기회는 병원 다녀오는 길에 자동차 전용도로 벽에 걸려있는 광고 베너에서 발견했다.
그런 계기에서 시작한 3개월 웃음치료사 과정이 자격증 수여와 함께 끝나고, 다음 분기 3개월은 동화구연반에 등록했다.
유아기 때부터 책을 손에 쥐고 다닌 큰누나의 별명은 국내외에서 '책벌레 book worm'이다. 4세에 낯선 나라에서 '안녕하세요, 화장실, 물, 고맙습니다, 미안합니다.'를 영어로 연습하고 말끝에 'please~'를 매다는 연습을 급하게 했다. 그리고 주 2회의 목. 금반에 출석하는 유아원에 가는 큰누나의 정서안정을 위해 엄마는 아가방 브랜드의 천 배낭에 작은 그림동화책과 미니 크레파스를 넣어주었다.
이를 계기로 큰누나는 해외의 초등학교 3학년까지 다니는 동안 공부보다는 도서관에서 그림동화책을 보며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갔다. 사실 엄마도 큰누나도 동화구연에 대한 기본지식도 없었다. 엄마는 어른이 소리 내어 동화책을 읽는 즐거움을 경험하는 귀한 기회쯤으로 짐작하고 동화구연 과정에 등록을 했다. 주 1회 3시간 동안 20명쯤 되는 참가자들이 강사의 지도 아래 배에 힘을 주고 소리 내어 동화를 읽었다.
주로 '개구리 왕자', '구두 장수', '백조가 된 오리', '내 동생 팔러 가요.' 등의 동화가 담긴 paper back 형태의 교재는 대화체로 편집되어 편 당 A4 용지 2~3페이지쯤 된다. 배에다 힘을 주고 큰소리로 등장인물의 특성에 맞게 1인 3~4역의 목소리를 내어 마치 성우 훈련하듯 대본을 읽었다. 초등학교 저학년용 동화를 소리 내어 읽기가 어른에게도 그다지 쉽지 않다는 걸 처음으로 알게 된 순간이었다.
남. 여 유아, 남. 여 초등학생, 남. 여 중고등학생, 남. 여 대학생, 엄마와 아빠, 아저씨와 아주머니, 할머니와 할아버지로 분하는 목소리 변장은 그동안의 삶의 경험 속에서 느껴진 나이대별 톤을 흉내 내는 것으로 예상보다 훠얼씬 어려웠다.
20분쯤 목소리 변장을 하고 나면 엄마는 목이 쉬었다. 성량이 적은 엄마는 원래 성대가 잘 붓는다. 목소리를 아껴가며 써야 해서 고등학교 교사 시절에도 애먹었었다. 어쨌건 매주 열심히 읽고 외워서 A4 용지 1 페이지 분량의 원고를 3분 ~5분 정도에 시연하는 연습이 반복되었다. 그리고 1분기 말에 이론 시험을 치렀다.
다음에는 서울시 성동구에 위치한 동화구연협회 본부에서 실시하는 실기시험 차례이다. 자격증 취득을 위해 고등학생들도 참여하고, 전국에서 응시자들이 몰려왔다. 부들거리며 긴장한 상태로 2인의 시험관 앞에서 외워진 원고로 동화구연 실기시험을 치렀다, 마치 폴란드 마담 퀴리의 어린 시절, 무서운 장학관 앞에서 독일어 책 읽기처럼...
큰누나는 재수 과정을 거쳐 우여곡절 끝에 가까스로 동화협회 소속 구연가로 등록했다. 그런 과정에도 엄마의 눈은 늘 큰누나의 얼굴 표정과 얼굴색, 손가락 움직임에 고정되곤 했다. 아무데서나 누나가 의식을 잃고 다칠 수 있으므로.
동화구연 프로그램 종강은 크리스마스 무렵에 이웃한 건물의 유치원생들을 초대해서 동화구연 공연으로 기념을 했다. 큰누나는 동화 '개구리 왕자'팀에, 엄마는 '호랑이와 곶감'팀에 합류했다. 작은 누나 결혼 때 예단함을 둘렀던 파랑과 빨강의 이중 보자기는 개구리 왕자로 분한 사람의 훌륭한 망토가 되었다. 집의 이런저런 물건들이 훌륭한 소품이 되면서 엄마의 '안 쓰는 물건 버리기'가 잠시 멈추어 있다.
이미 체중이 감소한 큰누나는 날씬하던 고 2 때의 졸업 파티복인 끈 달린 핑크 드레스를 거의 15년 만에 찾아내어 입었다. 그리고 엄마의 스팽글이 반짝거리는 니트 카디건을 걸치고 엄마의 높은 뾰족구두를 신고 우물 옆에서 공놀이를 하는 공주로 분장했다.
두 번째 분기 3개월 동안의 심화과정에도 등록했다. 훨씬 익숙하고 매끄럽게 배울 수 있었다. 이번에 큰누나는 '구두 요정' 팀에 함께 들어갔다. 누나는 손님으로, 엄마는 구둣방 주인으로 변장했다.
소소한 소품들을 집에서 준비해오고, 함께 한 솜씨 좋은 동화팀은 색종이로 핑크, 초록, 노랑, 파랑 구두들, 그리고 종이 선반을 접어왔다. 큰누나팀은 구둣방 선반을 차렸다. 요정으로 분장한 50대 엄마들은 귀엽기 그지없었다. 구두장사 역할의 엄마는 아빠의 점퍼 위에 작업용 군청색 앞치마를 입었다. 아빠 젊은 시절의 여행 모자였던 카우보이 가죽 모자를 머리에 쓰고 카이젤 콧수염을 달고 허리를 구부정하게 서니 동화 분위기가 났다.
큰누나와 엄마의 우울 풍선이 조금 줄어들었다. 누나는 여전히 아프고 2~3주마다 과별로 예약된 병원 정기 외래와 입원 과정을 겪고 있다. 거의 매주, 가끔은 3주마다 반복되는 내 집처럼 익숙한 병원 방문은 가족 건강 도시락과 음료 보온병들을 준비하는 소풍이다. 쾌적한 승용차 덕분에 가능하다.
파리하던 누나는 조금 덜 창백해진 수준의 얼굴빛으로 발전했다. 적어도 주 1회는 두 여자가 나란히 앉아서 남의 음성을 흉내 내며 연극하듯 동화구연을 연습하고, 그 프로그램에 참여한 다른 시민들과 인사를 나누고 소통을 하는 중이다. 누나 아빠는 그때야말로 집에서, 기다리는 차 속에서 마음껏 책을 읽는다. 아빠는 우울한 두 여자를 위한 안전하고 선한 승용차 대기 기사를 자원했다.
주부들은 정말 제주가 많다. 그동안 다양한 평생학습을 통해서 익힌 손끝으로 우물 안 개구리인 큰누나와 엄마를 자주 감탄시키곤 했다. 동화구연 공연을 위한 소품들을 만들어낸 주부들의 솜씨를 보며 엄마는 '협동조합을 만들어야 되겠네' 했다.
새삼 모국어로 그리고 눈빛만으로도 의사소통이 되는 평화로운 사회의 구성원이라는 것이 감격스러웠던 과정이다. 그렇게 엄마와 큰누나는 자원봉사 겸 취업을 시도할 수 있는 두 번째 민간협회 자격증이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