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오늘은 잠을 좀 자려고 한다. 잠을 잊은 당신에게라는 심야 라디오 프로그램이 있었다. 그거 딱 나의 이야기다. 나는 잠을 잊어버렸다. 잃어버렸다고 해야 하나. 어쨌든 그건 나에게 없는 수많은 것들 중의 하나다. 사람들은 하루라도 잠을 못 자면 난리가 난다. 선생님 오늘 왜 잠이 오지 않을까요. 수면제를 먹어야 하나요. 온갖 호들갑을 떤다. 그럴 수는 있겠다. 파블로프의 개가 종소리 나는 걸 기다리듯 사람들은 잠이 오는 순간을 기다린다. 잠을 왜 기다릴까. 자야 하기 때문에 기다린다. 잠을 자지 않으면 안 될까. 어쩔 수 없이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밤 시간이나마 눈감고 시끄러운 세상을 잊어야 하기 때문이다. 잠이 필요하다. 숨을 곳이 필요하다. 나야말로 도피처가 절실히 필요한 사람인데 나는 잠을 잊어버렸다. 잃어버렸다고 해야 하나. 어쨌든 그건 나에게 없는 수많은 것들 중의 하나다. 어릴 적 생각이 난다. 엄마는 촉촉하지만 근심 어린 눈빛으로 날 내려다보셨다. 엄마가 섬그늘에 굴 따러가면 아가는 혼자 남아 집을 보다가 바다가 불러주는 자장노래에 팔 베고 스르르 잠이 듭니다. 이제 얼른 자. 잠이 와야 자죠. 눈 감으면 잠 올 거야. 엄마 먼저 자세요. 여섯 살의 나는 엄마를 그렇게 재워드렸다. 엄마는 날 잠재우기 위해 섬집 아이 노래를 끝도 없이 불러주셨다. 그러면서 정작 잠든 사람은 엄마였다. 엄마가 자고 싶어 부른 노래였다. 그렇게 열심히 노래를 불러주고 잠에 빠져버리던 엄마는 이제 더 이상 깨지 않는다. 그런지 십여 년이 지났다. 엄마는 깊이 잠들었고 나는 잠을 잊어버렸다. 잃어버렸다고 해야 하나. 어쨌든 그건 나에게 없는 수많은 것들 중의 하나다. 잠 좀 자자, 잠 좀 자. 대학시절 기숙사에서 생활했다. 네 명이서 같이 쓰는 방이 아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랐다. 두 명이니까 그나마 한 명에게만 욕을 얻어먹으면 된다. 불 좀 꺼, 나 자야 해. 어, 미안. 잠 좀 자. 어, 그래. 기숙사에는 이내 소문이 났다. 나와 방순이가 되면 밤에 잠자기는 글렀다고 말이다. 나는 최대한 이불을 뒤집어쓰고 불이 새어나가지 않도록 노력했다. 자기들이 예민한 건 모르고 나만 괴물 취급했다. 남자 친구와 시끄럽게 통화하던 자기들 소음은 생각지도 않았다. 나쁜 것들. 방순이들은 남자친구와 통화하다 잠들었고 나는 잠을 잊어버렸다. 잃어버렸다고 해야 하나. 어쨌든 그건 나에게 없는 수많은 것들 중의 하나다. 그렇게 까다롭게 굴며 나를 왕따 취급하던 방순이 한 명은 깊은 잠에 곤히 빠졌고, 그 아이는 더 이상 깨지 않았다. 그 방순이는 돌아올 수 없는 깊은 잠에 빠져버렸고 나는 잠을 잊어버렸다. 잃어버렸다고 해야 하나. 어쨌든 그건 나에게 없는 수많은 것들 중의 하나다. K님, 대단해요. 아, 아니에요. 이 모든 걸 밤새 다 처리하다니, 정말 고마워요. 아, 네. 근데 피곤할 것 같은데요. 아, 아니에요. 얼른 끝내야 하는 업무들을 밤새 쳐낸다. 커피를 홀짝이며 라디오를 들으며 일을 한다. 다들 퇴근한 텅 빈 사무실에서 혼자 일을 한다. 다음날 그들이 나를 칭찬한다. 어머나, 이 많은 걸 다 정리했네요. 아, 네. 고마워요. 아, 네. 그런데 K님은 잠도 안자나 봐요. 언제 이렇게 일을 다 하는지 신기하네요. 아, 네. 그녀들은 나를 이용했다. 나도 그걸 알고는 있었다. 나를 칭찬하면서 뒤돌아서면 비웃었다. 바보같이 혼자 저렇게 고생하네, 킥킥. 그녀들은 꼬박꼬박 시간 맞춰 퇴근한 후 각자의 집에서 잠들었다. 그중 한 명이 나에게 일을 시키고 애인을 만나러 가는 길에 사고가 났나 보다. 그녀는 더 이상 깰 수 없는 잠의 세상으로 가버렸고 나는 잠을 잊어버렸다. 잃어버렸다고 해야 하나. 어쨌든 그건 나에게 없는 수많은 것들 중의 하나다. 오늘, 작가 K님을 모시고 이야기를 나눠보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작가 K입니다. 작가 K님, 책 제목이 [안녕, 10220]이네요. 상당히 독특한데요. 무슨 의미인지 설명 좀 해주시죠. “아, 네. 저는 그동안 10220개의 밤과 새벽을 수집했어요. 정확히 오늘까지 10220개예요. 여기 오기 전에 마지막으로 한 번 더 확인했어요. 10220개가 맞아요. 정확해요. 섬집 아이를 통과해 기숙사의 터널을 거치며 회사생활을 가로질러 밤을 잊은 당신에게를 맞이하면서 밤과 새벽을 지나 온 게 오늘까지 정확히 10220개더라고요. 그동안 저의 온몸과 온 마음을 통과한 밤과 새벽이 이렇게 많은지 솔직히 저도 잘 몰랐어요. 하나하나 얼마나 소중한지 몰라요. 밤에 내리는 비는 수 천 년 전에 죽은 별들과 함께 내린다는 걸 사람들은 모르죠. 밤에 부는 바람 속에는 숲 속 요정의 입김이 가득하다는 걸 사람들은 몰라요. 힘겨운 낮을 보낸 사람들의 깊은 울음소리는 잠을 잊은 사람에게만 들린다는 걸 사람들은 모른답니다. 제가 모은 10220개의 밤과 새벽에는 그 모든 것들이 담겨있어요. 사람들은 이런 저를 힘들어했고 안타까워했고 미워하기도 했어요. 그런데 생각해보세요. 저 같은 사람도 있어야 밤과 새벽이 외롭지 않잖아요. 다들 외면해버리는 밤과 새벽 그리고 그 시간을 조용히 살아야 하는 이들을 저는 함께 해주고 싶었어요. 밤과 새벽 그리고 그 시간을 지내는 사람들은 저에게 풍요로움을 주었고 편안함을 주었고 또 포근함을 주었어요. 솔직한 말 한마디 내뱉지 못하고, 소리 없이 뒤돌아서 웃어야 하고, 눈물 감추며 몰래 숨죽여 울어야 하는 이들이 마침내 허리를 펼 수 있는 그 밤과 새벽시간. 저는 그 시간을 누렸어요. 그게 정확히 10220일이에요. 여기 오기 전에 마지막으로 세어봤는데 정확히 10220일이더라고요. 이 책은..........”
내가 오늘은 잠을 좀 자려고 한다. 그동안 날 행복하게 해 준 밤과 새벽이 내게 오더니 살며시 말을 건넨다. K야, 정확히 10220일이더구나. 네, 맞아요. 이제 새날이 밝아오겠지. 네, 그렇겠죠. K야, 좋은 날을 맞이 하렴. 네, 그럴게요. 밤과 새벽과 얼굴을 알 수 없는 수많은 그들은 나를 온전히 안아주었고 나는 그 따뜻함이 너무 좋아 그 모든 걸 마음껏 껴안아버렸다. 내가 안겨버렸다고 해야 하나. 어쨌든 그건 나에게 남은 것들 중 이제는 유일한 단 하나가 되어버렸다. 그래서 내가 오늘은 잠이라는 걸 좀 자려고 한다. [안녕, 10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