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픽션 1] 비생산적인, 내이름은 K

비생산적인 삶을 사는 생산하는 인간, 내이름은 K

by book diary jenny


내 이름은 K다. 나라는 인간은 상당히 비생산적인 인간이라 생각해왔고 그 마음은 지금도 변함없다. 그 정도가 조금 약해졌는지는 모르겠다. 큰돈을 못 번다는 상황으로서는 여전히 비생산적인 인간이고 그건 앞으로도 장담할 수 없다. 다시 생각해보면 나는 또 상당히 생산적인 인간이기도 하다. 이른 아침, 아니 새벽부터 뭔가 계속한다. 읽고, 쓰고, 계획 잡고, 치우고, 돌보고, 내 기준에서는 중요한 일도 하며 하루를 채운다. 가끔은 남을 위한 일도 하는데 이 모든 게 생산이라면 생산인거다. 당장 돈이 되는 건 없다. 아니지, 이런 것들이 돈이 될지도 모른다. 앞으로 내 인생이 어떻게 될지는 모르니까. 내가 하는 자질구레한 것들이 나중에 돈이 될지도 모르지. 손으로 만져지는 돈과 통장에 찍히는 돈이 없을 뿐. 이 현실을 생각하다보면 우울에 빠지게 된다. 자신의 쓸모를 못 느낀다. 그래서 또 슬프다. 돈만 배제하면 난 아주 훌륭한 생산자다. 잘 하든 못 하든 자잘하지만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들을 부지런히 한다. 그래, 나는 아주 부지런하다. 너무나 부지런하다. 나만의 루틴을 흐트러짐 없이 해내고 있다. 스스로 생각해도 바람직하고 고결하다. 돈벌이에 대한 생각만 하면 내가 이토록 초라해지다니. 속상하고 억울하다. 비생산적인 인간과 생산적인 인간의 정의와 기준이 헷갈린다. 큰돈을 벌어본 적도 없고 지금도 역시 못 버는 나는 어디에 속할까. 돈이라는 잣대 없이 살면 참 좋을텐데. 그것 없이 살 수 없으니 그게 문제다. 알고 지내던 한 사람의 말이 잊히지 않는다. “하루에 만원만 계속 생기면 좋겠다. 그 돈으로 하루하루 잘 살텐데.” 20년도 더 된 얘기다. 당시 저 말은 환상적으로 들렸다. 저런 상황은 우리 둘 다에게 없을 것이며 저런 생활 자체가 불가능하다. 바닥에 남은 자존감마저 싹 다 흩어질 것 같아 무섭고 우울하다. 나의 쓸모가 고작 만원인건가. 그 사람은 지금 얼마짜리 쓸모가 되어 있을까. 이 시대에 그나마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는 생산적인 인간이 되어야 한다. 밥벌레는 아닌지, 밥벌이는 하고 있는지 점검해 본다. 넉넉함을 누리면서 그걸 남에게도 줄 수 있는 삶이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지 못한 내 모습이 불쌍하다. 쓸모없음의 쓸모라는 말, 거지같고 거짓 같다. 쓸모가 없는데 어떻게 그걸 쓸모라고 할 수 있나. 쓸모 있어야 쓸모라고 할 수 있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말장난 같은 위로가 더 짜증나는 법. 나도 생산적인 사람이 되고 싶다. 돈을 마구 생산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하긴, 난 충분히 생산적으로 살고 있다. 지금도 얼마나 많은 말들을 생산하고 있나. 남들은 잠깐 고민하다가 휙 잊어버리고 말 것을 나는 이렇게 기록도 남긴다. 이걸 쓴다고 돈이 생기는 건 아니다. 그래도 뭔가를 남기고 있으니 어쨌든 생산을 하고 있다. 나는 생산적인 인간이다. 그런데 쓸모가 없다. 생산적이라고 하기엔 민망하다. 그렇지만 뭔가를 하긴 한다. 에이씨, 뭐야. 생산적이라는 거야, 비생산적이라는 거야. 비생산적인 뭔가를 비생산적인 인간이 생산하고 있다. 비생산적인 인간이 비생산적인 뭔가를 생산하고 있다. 뭔가를 생산하는 인간이 비생산적인 것을 생산하고 있다. 뭔가를 생산하는 인간이 생산할 필요도 없는 비생산적인 것을 생산하면서 자기가 비생산적인 인간인지 생산적인 인간인지 헷갈려하고 있다. K라 불리는 한 인간의 비생산적인 하루가 생산되고 있다. 나는 비생산적인 삶을 사는 생산하는 인간이며 내 이름은 K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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