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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병상련

by 전선훈

사랑방 주인장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때론 참을 인 자를 가슴에 늘 새기며 살아가야 하는 힘든 직업이라는 생각도 들고 웃으면서 반가운 인사를 하며 손님들을 맞이하는 고마움을 전하는 복된 직업이라는 생각도 해 본다.


아직은 많이 서툴지만 사랑방을 찾아주는 손님들을 향한 마음은 고마움이라는 단어 외에는 적절한 표현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래서 늘 웃음을 잃지 않고 하루를 보낼 수 있기를 기도하면서 보낸다.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예전 종로의 한 식당에서 만났던 송해 선생님의 모습이 떠오른다.


항상 웃으며 손님들과 사진을 찍어주며 손 하트도 날려주고 손님들에게 덕담도 하며 응원을 해 주던 모습은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되었다.


“요즘 어렵죠? 우리 힘들 냅시다!”


오랜 시간 무명인으로 살았던 송해 선생님의 덕담 한마디는 손님들과 주인에게는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삶의 청량제였을 것이고 어렵고 힘든 처지를 누구보다 잘 이해할 수 있었기에 나오는 진심이었을 것이다.


미소와 덕담이 가져다주는 긍정 에너지는 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행복하게 만들어주고 그 기운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파해 주는 또 다른 긍정 에너지가 만들어진다고 볼 수 있다.


이렇듯 본인도 그리 넉넉한 살림살이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어렵고 힘든 주변의 이웃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꾸준히 기부활동을 하는 얼굴 없는 천사들에 대한 소식도 들려오고 고통을 함께 나누려는 평범한 이웃들의 얘기에 가슴이 훈훈해지곤 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친해지는 요소가 여러 개 있지만 그중 최고를 꼽는다면 공통 관심사 일 것이다.


나와 같은 취미생활을 한다거나 먹는 음식의 취향이 서로 비슷하다면 만나는 일도 많아지고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친해지게 될 것이다.


그런 공통 관심사를 SNS에 공유하기도 하고 유대감을 느끼기 위한 활동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것이 요즘의 시대상황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요즈음 동병상련이라는 사자성어를 자주 생각해 보게 된다.


동병상련이라는 사자성어는 단순히 친한 것을 넘어서 도와준다는 의미까지 있다고 할 수 있으니 내가 겪고 있는 것이거나 또는 겪어 본 것을 남이 겪고 있다는 것은 공감하기 쉽고 도움을 주어야 하는 경우에는 더 효율적으로 도와줄 수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상대방의 상황을 잘 아는 사람들로부터 상처를 받게 되면 그 아픔의 크기가 아마도 10배 이상 될 것 같고 회복이 되기까지도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어떤 경우에는 포커페이스를 유지 못하고 다툼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을 수도 있다.


이것이 자영업자들의 말 못 할 고민 중에 하나이고 나 또한 수차례 겪어 본 경험이기도 하다.


어떤 날은 예상치 않게 이른 시간부터 손님들이 몰려와서 테이블을 가득 채워 바쁘게 보내지만 어떤 날은 늦은 시간이 되어도 한 두 테이블을 제외하면 손님이 오지 않는 경우도 있어서 일찍 문을 닫는 게 전기료라도 아낄 수 있다는 생각을 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새벽 1시까지 영업을 한다고 손님들은 알고 있고 있고 가끔 흥이 넘쳐 종료 시간을 넘기는 경우도 있지만 아주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가급적 시간을 지키기 위한 노력을 꾸준히 한 덕분인지 손님들은 종료시간 이전에 계산을 마치고 나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아주 춥거나 비가 심하게 내리는 날이나 눈이 많이 내리는 날의 손님들은 대부분 간단히 마시고 귀가를 서두르기에 일찍 문을 닫고 들어가는 게 현명한 판단이라는 생각도 할 때가 많다.


비와 바람이 심하게 불던 어느 날 문 닫는 시간을 앞당겨 마무리를 하고 일찍 집으로 들어가려던 즈음 약간 취한 듯 몇 분의 손님이 들어왔다.


애매한 시간이어서 영업이 끝났다는 말은 못 하고 반갑게 손님을 맞았다.


“막 문을 닫으려 했는데… 어서 오세요. 몇 분 이세요?”


들어오는 손님에게 보통 이런 얘기를 하면 대부분의 손님들은 거의 비슷한 반응을 한다.


“우리가 좀 늦었네요. 간단히 마시고 갈게요. 하하하.”


오히려 미안해하며 웃음으로 대신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이들은 처음부터 반응 자체가 없었고 아무 자리에 턱 하니 앉더니 술부터 내오라며 큰소리로 외쳤다.


“생맥주 세잔하고 소주 한 병 그리고 안주는 한치 하나.”


주문을 받은 후 집사람과 나는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복화술로 얘기를 했다.


“1 시네…흐흐흐.”


그들은 이미 전작이 있는 것 같았고 워낙 큰소리로 대화를 나누고 있어서 의도치 않게 그들이 하는 얘기를 다 들을 수가 있었다.


동호회 모임인 듯했고 1차 모임에서 제대로 결론이 나지 않아 세명만 자리를 옮겨 마무리를 하고 가려는 느낌이 들었다.


회장인 듯한 사람은 많이 취한 듯 같은 얘기를 반복하고 있었고 듣는 나머지 사람 두 명은 지루한 듯 하품을 연신 해대고 있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 문 닫을 시간도 거의 다 된 것 같아 조심스레 다가가 얘기했다.


“문 닫을 시간이 다 되었습니다.”


하품을 하던 두 사람은 내 얘기에 반색을 하며 일어나려는 듯했지만 회장인 듯 한 사람은 약간 짜증이 섞인 말로 손에 든 땅콩을 접시에 던지며 얘기했다.


“에이 거참… 알아서 갈 건데 너무 야박하게 그러네. 얘기도 안 끝났는데 너무 하네…. “


그 얘기를 들은 일행은 안절부절못하고 나만 쳐다보았고 나도 한동안 멍하니 서 있었다.


“여기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해서 그러니 양해 바랍니다.”


속으로는 화가 났지만 웃는 모습으로 이해를 바란다는 말을 했다.


“누구는 장사 안 해봤나? 나도 장사를 하고 있는데 손님이 갈 데까지 기다려야지요… 나 원 참…“


”네. 죄송합니다. 1시까지 영업입니다. “


긴 얘기를 하면 싸우자는 소리로 들릴 것 같아 원칙만 얘기하고 자리를 비켜주었다.


예전 이탈리아 식당에서 잠깐 일을 할 때의 기억이 났다.


요식업을 하는 가족들이 쉬는 날이라며 오전 11시에 들어와 오후 브레이크 타임이 끝나는 오후 4시까지 앉아서 얘기를 나누다 가는 경우를 본 적이 있었다.


말은 못 했지만 같은 업종의 사람들이라 알아서 자리를 피해 줄 것이라 생각했지만 오히려 그동안 당한 것을 보복이라도 하듯 똑같은 행동을 하고 있었다.


그때 점장이 하던 말이 생각이 났다.


”아는 사람이 더 지독하다니까…쯧쯧쯧. “


장사를 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더 이해를 해 줄 것이라 믿고 자리를 내주었지만 돌아오는 것은 거친 말뿐이었다.


다행히 아무런 충돌 없이 계산을 마치고 나갔지만 가면서도 계속 상스런 말을 하는 것 같았고 나에게 남은 건 마음속 상처뿐이었다.


물론 이후에 그 팀이 다시 온 적은 없었지만 화를 내고 짜증을 내던 회장이라는 사람 때문에 일행이 불편해하는 모습은 안타까운 기억이었다.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서로를 이해하고 다독이면 더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도 있었지만 세상 모든 일이 다 내 맘 같지 않다는 것을 또 한 번 느끼는 날이었다.


며칠이 지난 후 시장조사 겸 저녁을 먹으러 비슷한 업종의 가게를 찾았다.


초보 사장이긴 하지만 이곳저곳 고치면 좋은 점들이 눈에 들어오길래 집사람에게 웃으며 얘기를 했다.


“여보. 눈에 보이는 저기 살짝 고치면 훨씬 동선도 넓어지고 편해질 텐데 당신은 어떻게 생각해?”


“당신이 무슨 백종원도 아니고… 괜한 것에 신경 쓰지 말고 맥주나 드셔. “


“같은 처지니까 내가 하는 말을 이해해 줄 것 같은데…”


“마음 상 할 수도 있으니까 자제하는 게 좋지. 괜한 말에 상처받을 수 도 있고…”


“네에…“


맞는 말이다.


같은 처지의 자영업자라 해도 처한 환경이 다르고 상권의 분위기가 다른 곳이 많아서 해줄 수 있는 조언은 별로 없다.


그냥 계산을 마치고 문을 나설 때 한마디면 충분할 것이다.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다음에 또 올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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