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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록을 위하여

by 전선훈

후일에 남길 목적으로 어떤 사실을 적거나 운동 경기에서 세운 성적이나 결과를 수치로 나타낸 것을 기록이라고 얘기한다.


또 기록은 깨지기 위해 존재한다는 오래된 스포츠의 격언도 존재하는 것처럼 새로운 기록을 세우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고 신기록은 노력에 의한 결과물이기에 더욱 값지고 명예롭게 느껴진다.


하지만 매번 새로운 기록을 세울 수 없다 보니 스트레스도 만만치 않고 도태되는 기록을 세우다 보면 어느새 퇴출의 대상이 되어버리는 것이 직장인들의 현실이다 보니 실적을 보고할 때 잔머리를 굴려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썼던 기억도 난다.


비교의 대상을 길게는 전년 실적과 비교하여 성장률을 나타내게 하거나 짧게는 전월 실적과 비교하여 나에게 조금이라도 유리한 수치를 만들어내기 위한 보고서를 만들었지만 과거의 성장률은 의미가 없으니 평가지표를 매월 시장 지배력(M/S)을 근거로 삼겠다는 오너의 결정에 부서별로 일희일비했던 기억도 떠오른다.


자영업을 시작한 초기에는 직장에서의 습관이 남아있어서 매출을 근거로 비교 분석하여 이익이 많이 남지 않는 메뉴는 과감하게 삭제하기도 하였고 여기저기 시장조사를 다니며 새로운 메뉴를 손님들에게 선보이는 작업을 하면서 매출을 끌어올리기 위한 작업을 진행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나의 노력에 의해 매출 기록이 새로 세워지는 것은 별로 없고 오로지 외부의 영향에 따라 기록이 바뀌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자영업 초기의 열정은 많이 사라진 상태가 되어갔다.


물론 비수기와 성수기로 나눠지는 계절적 영향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지만 손님들에 의해서 기록이 좌지우지되는 경우가 더 많아진 것도 사실이다.

가장 큰 도움이 되는 기록은 짧고 굵게 마시고 먹는 손님들이다.


짧은 시간에 많은 양의 음식과 술을 마시고 나가는 손님들이 최고의 도움이 되고 먹고 마시는 시간이 점점 짧아지는 기록을 세워주면 아주 흐뭇한 기분이 든다.


그 이외에는 매출 증대에 도움이 되는 기록은 없는 것 같고 괜히 인상을 찌푸리게 되는 기록이 많은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기본적으로 매장에 머무는 시간이 오래될수록 매출이 늘어나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 여기지만 대상이 누구냐에 따라 확 달라지는 경우가 많다.


술과 음식을 먹으며 시간을 보내는 곳이 우리 가게를 찾는 사람들의 기본적인 생각일 테지만 카페로 오인을 하는 손님들도 꽤 있어서 마른안주 하나에 맥주 한잔씩을 시킨 후 누가 누가 오래 버티나 하는 기록을 세우려는 경우가 종종 생기곤 한다.


이제는 시간이 좀 지나서 낯익은 손님들이 많아졌고 얼굴만 보면 집사람과 나는 복화술로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여보. 오늘 퇴근은 1시네…호호호.”


“그래도 저 팀은 매출이 담보가 되니까 괜찮아. 생맥주 많이 마시니까 좋지. 하하하.”


”오늘은 맥주 몇 잔씩 마실지 궁금해지네. 지난번 기록을 깼으면 좋겠다. 호호호. “


”그러게. 지난번 1인당 8잔 기록을 깼으면 좋겠다. “


이런 대화를 나눌 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손님이 거의 없어서 전기료도 아끼는 게 낫다 싶어서 일찍 문을 닫고 들어가려는 찰나에 들어오는 손님들이 가끔 있다.


”문 아직 안 닫으셨죠? “


”네. 들어오세요. “


“간단히 한잔만 하고 가겠습니다.”


“네. 천천히 마시고 가세요.”


문을 닫기엔 너무 이른 시간이고 단골로 오는 낯익은 얼굴이라 거부할 수가 없었다.


“여보. 오늘 퇴근은 1시 넘어야겠네. 흐흐흐.”


“그러게. 정확하게 12:58분에 나가는 손님이니까. 오늘은 새로 기록을 세우지는 않겠지. 흐흐흐. “


”새로 기록을 세우려면 매출 기록도 좀 경신하면 좋은데…호호호. “


”매출 신기록은 언감생심이지. 늘 기록하던 대로 마른안주 하나에 소주 한 병…그리고 회사얘기로 기본 2시간… 더 이상 기대하지 마. 하하하. “


지금껏 만들어진 최고의 기록은 영업 시작과 동시에 들어와서 마감시간까지 머무는 경우가 있었는데 거의 8시간을 아이들 얘기를 하던 학부모 모임이었다.


아마도 이 기록은 깨지기 어려울 것 같고 영업시간을 연장하지 않는 한 깨지기 어려운 불멸의 기록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여보. 이번 주에만 마이콜 아저씨 팀이 3번 왔어. 대단한 기록 아닌가?”


“그럼. 고맙고 대단한 기록이지. 예전 베트남 살 때 일주일에 4일을 방문했던 둘둘치킨 사장님 심정을 이제 알겠네. 우리가 얼마나 고마웠을까. 하하하.”


“그러게. 너무 고마운 손님이지. 서비스 안주 좀 챙겨줘야겠네. 호호호.”


방문 횟수가 늘어가는 기록을 새롭게 만들고 매출을 늘려주는 새로운 기록을 만들어주는 손님들이 있어서 지치지 않게 되고 즐거운 마음을 계속 유지하게 해주는 것 같고 때로는 매출에 별 도움이 안 되면서 늦은 시간까지 벌을 서게 만드는 손님들도 있지만 그래도 나에겐 똑같이 귀하고 반가운 손님일 뿐이다.


‘손님 온다 손님 온다 손님 오신다 반가운 손님이 줄지어 오신다’


조금 지루하게 느껴질 무렵 귀에 익은 트로트 노래를 들으며 귀한 손님 맞을 준비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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