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모음이 지나온 우여곡절의 역사
영어글자와 소리의 관계가 불규칙한 이유 중 가장 큰 원인은 모음이었다. 그 역사는 길고 길다. 그냥 처음부터 모음을 만들어서 썼으면 얼마나 깔끔하고 좋았을까? 서양인들은 생각이 달랐다. 언어에 대한 감각이 우리와 바닥부터 다르다.
영어 알파벳의 조상인 페니키안 알파벳 (기원전1000년즈음)에는 모음이 소리로만 있었다. 그것도 세 종류의 소리밖에 없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모음소리를 글자로 시각화시키지를 않았다. 자음(소리와 글자모두)을 모음글자에 가두어 놓지 않으려는 시도같았다. 유연함과 적응성이 중요했기때문이다.
그리스 알파벳(기원전 800년)에서 드디어 모음 7개가 생겼다. 그 중 AEIOY 5개는 페니키안 알파벳 자음 5개를 모음으로 바꾸어 쓰는 극적인 변화가 생겼다. 유연함과 적응성이 중요한 알파벳 문자에게서만 볼 수 있는 희안한 현상이다. 그리고 모음문자 EΩ 2개를 새로 만들었다.
라틴 알파벳 (기원전 700~600년)은 그리스의 모음 5개를 빌려다가 AEIOU(Y)로 사용하였다. 이것이 그대로 고대영어 알파벳 (기원후 500년)에 전수된다. 여기서 끝나면 좋으련만, 브리티쉬 섬에 들어간 알파벳 5개는 조상들이 알파벳에 한 것보다 '못할 짓'을 더 많이 했다. 한국인에게는 '못할 짓' 맞다. ^^
고대영어 알파벳의 모음에서 진화가 두두러지게 나타난다. 고대영어 알파벳에는 7개의 모음이 있다. 라틴 알파벳 모음의 주된 AEIOU 5개와 라틴어의 그리스 차용어 Y를 빌린 것이고, 라틴어를 조합하여 만든 æ(대문자 없음)가 있다.
그런데 7개의 모음은 글자 하나가 단모음과 동시에 글자 위에 장음부호 -를 찍어 장모음으로도 사용할 수 있었다. 이것은 하나의 글자에 하나 이상의 소리를 적용할 수 있다는 유연성과 적용성의 방식에 근거한 것이다. 먼저, 글자가 있고, 나중에 소리를 입히는 전통 위에서 가능했던 것이다. 이것은 소리가 먼저 있고, 거기에 글자를 입힌 한글과는 전혀 반대의 전통이다.
a [ɑ] / ā [aː]
æ [æ]/ ǣ [æː]
e [ɛ]/ ē [eː]
i [ɪ]/ ī [iː]
o [ɔ]/ ō [oː]
u [ʊ]/ ū [uː]
y [y]/ ȳ [yː]
사실 여기까지만해도 괜찮다. 영어 모음 하나가 단모음과 장모음을 모두 나타내긴 했지만, 쉽게 이해할만한 규칙이다. 장모음이란 것도 처음에는 소리를 '길게' 내는 것이었기 때문에 발음이 복잡할 것도 없었다.
그런데
그런데 역사는 항상 제멋대로 이다.
영어사에 획을 긋는 일이 일어났다. 그것이 바로 15세기 모음의 대변화 the Great Vowel Shifts 이다. 이것은 왕이 모음에 새로운 규칙을 공표해서 생긴 변화가 아니다. 영국에 언어관장 기관이 있어서 공표한 것도 아니다. 영국 군주와 정부는 여전히 백성들의 언어사정에는 관심이 없다.
그러면 누가 이렇게 큰 변화를 만들어 낸 것일까? 당시 브리티쉬 섬에 살던 영국 사람들 자신들이 만들어낸 변화이다. 그것도 3~4세대란 오랜 세월에 걸쳐 사람들이 말할 때 모음 소리가 궁뱅이 기어가듯 서서히 변해갔다. 자기네들도 이런 변화를 눈치채지 못했을 정도였다. 할아버지가 하는 발음과 손자세대가 하는 발음이 다른 것을 보고 겨우 알아차렸다고 한다.
무엇이 얼마나 크게 변했으면 '대'변화라고 하는가? 고대영어로부터 장모음 long이 이중모음 diphthongs으로 되었다. 그러면 어떻게 길게 발음했던 모음이 두개의 모음이 되었을까? 예를 들어 name [na:mə 나~므]였던 것이 지금처럼 [neim 네임]되었다. 모음을 길게 내려고 소리를 뒤로 끌수록 소리가 '높아졌는데' 그 소리가 다시 미끄러지듯 자연스럽게 떨어질 때 또 다른 모음을 만들어 냈다. 어렵다. 쉽게 말하면, 긴소리를 내려다가 끝에 또 다른 소리가 생겨난 것이다.
a → [ei] name [neim]
e → [ii] see [sii] --> [i] 가 두개!
i → [ai] bite [bait]
o → [ou] go [gou]
u → [au] house [haus]
그런데 또 잘 보야 한다. 새로운 소리가 생겼는데도 역시 새로운 글자를 만들지 않았다. 있던 글자를 그대로 사용했다. 단모음 소리를 상징했던 글자가 이중모음 소리를 상징하는 글자도 되었다. 그러니까 이제는 같은 글자가 어떤 때는 단모음이 되고, 어떤 때는 이중모음도 된다. 예를 들어 같은 a도 fader[fa:der 화더]도 되고. name [neim 네임]도 되는 것이다.
모음을 유연하게 사용하는 전통과 글자에 소리를 '자의적'으로 적용시키는 전통이 여전히 살아있었다. 이것때문에 영어 글자와 소리의 관곈는 점점 복잡해지기 시작한다. 진심 영어 알파벳은 넓디 넓은 목초지에 방목해 놓은 소떼같다. 어느구석에서 어떤 음메를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여기까지만 해도 소화할 수 있다. 파닉스를 한 한국인이라면 식은 죽 먹기일 수도 있다.
그런데
그런데 역사가 또 그리 단순하지만은 않다.
15세기 모음의 변화는 그치지 않고 지속적으로 변화의 흐름을 탓다. 중세 내내 노르망의 지매를 받았고, 그 이후세계를 제패하는 제국의 자리에 섰던 영국은 안팎으로 변화가 심했던 때였다. 여러 나라와 접촉을 하면서 다른 언어가 영어에 미친 영향이 지대했다. 영어는 자체적인 유연함과 적응력으로 이들 외국어마저도 왕성하게 자기 언어로 바꾸어갔다. 거의 폭식 수준이었다. 유입된 외국어가 하도 많아서 실제로 자기들 조상의 영어에 근거를 둔 순수한 영어가 있을까 싶을 정도가 되었다. 그 변화의 과정을 다 추적하기 어려울 정도로, 한마디로, 제멋대로 변해갈 수밖에 없었다.
예를 들어 요새 유튜브에서 많이 나오는 단어의 예를 들어보자: comb, tomb, bomb. 이 세 단어에 공통적으로 나오는 'o'는 소리가 다 다르다. comb [ou]/ tomb [u:]/ bomb [a] 같은 글자 'o' 에 각각 다른 소리 [ou][u:][a]를 입혀있다. 이것은 이미 중세이후부터 각각 다른 경로를 거쳐서 진행되어 온 결과이다. 한 자리에 앉아서 "이 o는 [au], 저 o는 [u:], 그 o는[a]이라고 한꺼번에 만든 적이 었다. 결코 규칙을 찾아 볼 수가 없다. 그러나 같은 글자에 다른 소리를 입힐 수 있다는 유연성과 적용성의 원칙은 건재하다. 건재하다 못해 왕성하다.
고대영어 camb [kamb]/ 중대영어 camb [kamb]/ 현대영어 comb[koum]
중세블어 tombe [tɔmbə]/ 중세영어 tomb [toːm]/ 현대영어 tomb [tu:m]
근대이탈리아어 bomba [ˈbɔmbə]/ 근대영어 bomb [bɔmb]/ 현대영어 bomb [bam]
또 하나 묵음의 예를 들어보자. 고대영어에서는 묵음이 없었다고 한다. 블어의 영향으로 묵음이 생겪다는 설이 있으나 구체적인 단어끼리 연관성은 찾기 어렵다. 고대영어 단어 comb는 물론 심지어 블어에서 빌려온 단어 tomb나 이탈리아어에서 빌려온 단어 bomb까지 맨끝자 b를 모조리 묵음을 만들어 버렸다. 그런데 묵음이 된 글자는 사라지지 않았다. 이점이 중요하다. 이제는 글자가 소리없는 소리까지 입힐 수 있다. 이들은 얼마나 더 창의적이 될 수 있을까? (수많은 예가 있으나 요점은 전달했으니 생략한다)
넓디 넓은 목초지는 점점 넓어져갔다. 수많은 소떼들이 각각 무리지어 어느 구석에서 어떤 방식으로 음메를 하며 소통을 하는지 점점 더 알 수 없는 미궁으로 빠져간다. 국가에 영어 통제기관이 있다고해도 통제가 되었을까? 아마도 꼼꼼하다 못해 meticulous 치밀한 언어학자들만이 관심을 가지고 수집은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소 한마리 씩 찾아다니면서 인터뷰를. 음... 이미 했다.
그런데
그런데 역사는 장난도 칠 수 있다.
새로운 글자를 안 만든 것까지도 좋다. 소리없는 글자를 안 뺀 것까지도 이해한다. 인간에게 숨쉬는 공기같은 글자를 갑자기 집어넣거나 빼버린다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면 적어도 모음은 소리나는 대로 쓸수는 있었을 텐데 왜 안 그랬을까? 예를 들어 name도 neim, 혹은 comb도 koumb 처럼 직접 쓸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럴 가능성이 있었다. 그러나 정말 기가막히게 엉뚱한 이유로 이런 일은 일어날 수 없었다.
그 이유에는 영국의 최초 출판사를 시작한 사람이 연류되어 있었다. 윌리엄 캑슨 William Caxon이라는 런더너였다. 캑슨은 책을 인쇄하기 위해 조판작업을 해야했다. 조판작업을 할 때 가장 골치가 아팠던 것은 서로 다른 방언이었다. 예를 들어 같은 계란이라도 남부지역에서는 "egges"라고 하는데, 북쪽에서는 전혀 다르게 "eyren"하는 것이다. 결국 캑슨은 당시 정치경제사회의 중심지였던 런던방언을 기준으로 판을 짰다. 그가 인쇄한 책들이 인기를 얻고 퍼지면서 대중화가 되었다. 이를 계기로 의도치 않게 알파벳 표준화에 공헌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알파벳 표준화가 과연 공헌이었을까? 출판일이 성사되었던 것은 15세기 중반! 영국 전역에서 조용하지만 활발하게 영어모음이 변동을 부리며 진화를 한창 진행하는 가운데 있었다. 이 진화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으려면 근대까지 2~3세기는 더 지나야 한다. 아직 글자에 소리, 특히 모음 소리가 정착이 안된 상태이다. 어쩌면 name이 neim이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가능성은 캑슨의 출판사업으로 표준화가 되어 사라졌다. 아뿔사! name은 영원히 name으로 쓰고 [neim]으로 읽게 되었다.
하지만 15세기 전후로 암묵적으로 이 원칙을 꾸엮꾸엮 수행을 해 온 영국인들이다. 이들에게는 캑슨이 알파벳을 표준화했다고 크게 달리질 것은 없었다. 그냥 하던대로 영어를 자기들에게 편하고 자연스러운대로 창조적으로 사용해가면 되는 것이었으니까. 같은 글자를 다른 맥락 속에서 다른 소리로 사용하는 데는 익숙한 사람들이다. 그들 뼈 속까지 베인 이집트인의, 페니키아인의, 그리스인의, 로마인의 전통에서 자연스럽게 나온 것이다. 오랜 시간을 두고 변해 온 것이기때문에 자연스러워지기까지 시간도 충분했다.
오히려 캑슨의 출판사업으로 소리를 적용해야 할 알파벳 갯수도 고정되었다. 고대영어로 부터 알파벳 갯수도 출렁거렸었기 때문이다. 29개에서 게르만 룬 문자 3개(þ,ð, ƿ)가 빠지고, 24개로 쓰더니만, 이제는 J와 W도 포함시켜 26개로 고정되었다. 더 잘 된 것이다. 어떤 소리가 출몰해도 26개 알파벳에 적용하여 해결하면 된다. 모음도 5개 안에서만 해결하면 된다. 이것이 유연하게 적용할 수 있는 가장자리 선이다. 이 선 안에서만 창의력을 발휘하면 된다.
그 결과 AEIOU 5개의 모음에 현재까지 14개에서 20개모음의 소리가 변화무쌍하게 진화해 왔다. 변화의 근거를 찾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변화를 일으킨 원인이 영국사람이기때문이다. 그저 일상을 사는 영국사람이었기때문이다. 이제는 왜 영어단어가 이 모양이 되버렸는지 이해가 될 것이다.
owl [aul], bowl [boul], cow[kau],
eight [eit], height [hait], weight [weit]
eat [i:t], great [greit], bread [bred]
pray[prei], prey [prei]
ear [iər], bear [biər], bear [beər], beard [biərd], fear [fiər], pear [peər], heard [hərd]
ought [ɔːt], thought [θɔ:t], though[ðou], tough[tɔf], dough[dou], drought[draut]
영어 알파벳은 실제로 넓은 목초지에 자유롭게 방목해 놓은 소떼가 맞다. 자기들끼리 이 구석 저 구석에서 자기들 만의 음메를 해대며 소통의 길을 냈다. 어떤 소가 음메에에에가 편하다고 그 주위에 소들이 모두 따라했다. 급기야 더 많은 소들이 다 따라하게 되었다. 그저 음메를 벗어나지 않으면 어떤 음메에에에를 하든 전혀 헛갈리지 않는다. 자기들이 편해서 여기 저기서 그렇게 바꾼 것인데 헛갈릴 이유는 별로 없다. 따로 모아서 보면, 자기들도 헛갈린다. 그러나 실제로 사용하는 데는 따로 모아서 볼 일이 없었다. 따라서 변화 속에 있던 그들은 전혀 무리가 없었다.
페니키안 알파벳에서부터 유연성과 적용성의 원칙이 시작되었다. 이것이 현대 영어에 이르러 선을 넘어갔나 싶을 정도로 극한까지 확장되었다. 한글에서 볼 수 있는 정확성과 예측성은 사실 거의 제로이다. 규칙성이 낮은 것은 당연하다. 규칙이란 것에 아예 가치를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영어 자체가 유연성과 적용성의 원칙에 따라서 혼자 잘 흘러가는 언어가 되어버렸다.
그런 이유 때문에 영어는 이미 국제어 Lingua Franca가 된지 오래이다. 디지털 시대에서도 시대를 이끌어가는 선두언어가 되어 있다.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면서 영어는 하던대로 계속 변화해 갈 것이다. 이런 추세는 계속 될 것이다. 이 언어가 원래 그런 언어니까! 누구도 영어가 가진 유연성과 적응성에 칼을 대고 베어 버릴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면 정확성와 예측성을 자랑하는 한글 사용자 우리가 유연성과 적응성이 큰 언어를 만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어쩌면 우리는 다소 방어적이 될 수 있다. 너무나도 자유분방한 영어 앞에서 짜증이 폭팔할 수도 있다. 게다가 영어는 '저버릴 수 없는 언어'라서 '어쩔 수 없는 수고 neccessary struggle'를 해서라도 배워야 하는 언어이다. 우리는 더 방어적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더 휘둘리지 않으려고 철갑을 두를지도 모른다. 철갑을 두른 채 방목지를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면서 규칙을 찾을수도 있다. 규칙찾다가 예외를 더 많이 찾아온다. 정말 힘든 일이다.
따라서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은 일단 그것을 포기하는 것이다. 철갑을 입고 방목지를 돌아다니지는 말자. 아무리 노력해도 우리는 결코 유연하고 적응력이 강한 영어를 조절할 수 없을 것이다. 그냥 그러려니 해야 한다. 그리고 먼저 해야 할 것이 있다: "Relax!" 영어가 아무리 치고 들어와도 한글의 정확성과 예측성은 절대 절때 절떄 무너지지 않는다. 그러니 안심해도 좋다. 철갑을 벗고 울타리에 걸터 앉자. 그리고 보자. 읽어보자. 들어보자.
유연하고 적응력이 좋은 영어에 길들여지는 길은 다른데 있다. 사실 간단하다. 그냥 저들처럼 영어를 하면 된다. 어떻게? 맥락 속에서! 그들처럼 같은 글자를 맥락 속에서 다른 소리로 사용하는 데 익숙해지는 것이다. 맥락 속에서 각기 다르게 사용되는 소리에서 뜻을 감지해 내는 것이다. 한국말로 직독직해하지 말고 순수하게 영어소리에서 뜻을 감지할 수 있으면 된다. 이것이 어느 정도 쌓이면, 정리한다는 뜻에서 한번 모아서 비교 해 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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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