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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사와 떠나는 여행 7 '만약'

지긋지긋해서 포기했기에 아쉬운 것들

by cogito

사람들마다 시험에 임하는 자세가 다르다

시험이라는 것은 꼭 합격을 해야 성공한 것은 아니다

결과가 아닌 목적이 더 중요할 수도 있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랬다


군대에서 병장을 달고 시간적인 여유가 생겨서

CPA 공부를 했다

꼭 합격을 하겠다는 아니고

시간적인 여유가 있으니 뭐라도 해보자라는

선택이 CPA였다

전역 후 복학을 하니 학교에서

CPA 육성반을 뽑았다

총 12명 선발하는데

기숙사 무료제공과 용돈으로 매월 30만 원을 줬다

기출문제 중심으로 테스트를 봤다

나는 당당히 2등으로 합격을 했다

그렇게 나와 CPA와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웃기다

시간이 남아서 뭐라도 해볼까 하며 시작한 공부가

이렇게 학교 숙식과 용돈까지 제공해 주다니..

사람이 죽으라는 법은 없는 것 같다

아무런 계획이 없고 막막해 보여도

막상 때가 되면 길이 생기고 기회가 생기는 법이다


그 당시 나는 CPA에 뜻이 없었다

뜻이 없다기보다는 자신이 없었다

세법을 비롯한 회계과목은 자신 있었으나

그 당시 영어가... 고시영어였다

지금처럼 토익 700만 통과하면 된다고 하면

아마 계속했을 것이다

영어에서 계속 과락이 나오니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나의 목적은 어학연수였다

부모님 지원을 받기 힘들었기에 내가 마련해야 했다

그때 때마침 CPA 육성반을 모집했고

그렇게 기숙사비를 무료로 제공받으며

나의 어학연수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어쨌든 기숙사비와 용돈을 계속 받기 위해서는

나는 계속할 수밖에 없었다

3개월마다 테스트를 봤고, 점수 미달이 되면

지원이 끊겼기에, 계속 공부를 했다


문제는 무료기숙사비와 30만 원은

현상 유지만 가능할 뿐

돈을 모으기는 어려웠다

그래서 수업은 월~목으로 시간표를 짜고

금~일은 노가다를 나갔다


지금생각해 보면 미친 짓이었다

24 학점을 월~목에 들으면 점심 먹을 시간도 없다

그 와중에 CPA공부까지 하고

주말에는 노가다를 나갔으니..

진짜 열심히 살았다


그런데 그때 한 번쯤은 그럴 법도 한데

쉬고 싶다는 생각을 안 했다

아니 나를 더욱 재촉했던 것 같다

이 지긋지긋한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그것뿐인 것 같았다


어학연수 한 번 다녀온다고 뭐가 달라지나?

어쩌면 더 적극적으로 해서 CPA를 취득하면

인생이 더 바뀔 텐데..

나도 모르겠다.

왜 그렇게 어학연수가 그렇게 가고 싶었는지

부모님 지원으로 쉬이 갔다 오는 친구들이 부러웠고

주말에 데이트하러 다니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미래의 인생보다 그 나이에 다들 하는 과정을

해보고 싶었던 것 같다


내가 그렇게 공부해도 3개월마다 테스트 볼 때면

항상 3등 안에 들었다

첫 CPA 시험은 역시나 1차에서 영어과락으로 탈락..

그렇게 평일에는 학업과 CPA와 금토일을 노가다를 하며

1년을 보냈다


그리고 휴학을 했다

모두들 내가 CPA에 집중하려고 휴학을 한 줄 알았다

아니.. 나는 유럽으로 향하는

내 인생 첫 비행기를 타고 있었다

과연 잘 한 선택인지는 지금의 나로서는 잘 모르겠다

그렇게 어학연수 후 취직을 하고

지금은 여유를 가지고 살 고 있다


졸업 후 2~3년 지나니 그때 같이 공부하던 동료들의

CPA 합격 소식이 하나 둘 들려왔다

서로 공부하기 바빴기에 축하한다라는

연락도 서먹해할 사이였지만

나에게는.. 나보다 점수 낮았단 사람인데..라는

자기 후회의 시간이 되었다


만약 내가 2~3년 더 공부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 지긋지긋한 생활을 더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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