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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사와 떠나는 여행 5 '드디어'

엄마의 대출금 '폭삭 속았수다'

by cogito

4년 동안 투자한 인투셀이 드디어 상장을 했다

그토록 사고 싶던 BMW를 살 만한 돈이 생겼다

"집 팔고 작은 평수로 이사할까?"

두 달 전 엄마가 나지막하게 물었다

70세가 넘어 몸이 이전 같지 않고, 수입은 줄고

이율은 높아지다 보니, 주택담보대출 상환이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내가 어릴 적부터 자란집인데

아직도 대출이 남았다니...

도대체 몇 년짜리 대출을 받은 것인가?


결국 나는

BMW와 엄마의 경제적 자유를 바꿨다

매월 15일 엄마의 원리금 상환 스트레스를

나의 뽀대와 바꾼 것이다


엄마의 문자가 눈시울을 적신다

맞춤법이 틀린 삐뚤빼뚤한 문자..

그 문자 하나만 봐도 힘든 삶이 느껴진다

쳇.. 70 먹은 노인네가 뭘 또 열심히 산대..

폭삭 속았어요에서 용산터미널에서

아빠 늘 보던 금동이 같은 발언이 나온다


그러나 진짜로 하고 싶은 말은

"엄마 충분히 열심히 사셨어요"이다

어쩌면 행복해지기에는 너무 늦은 시간이기는 하다


6.25 전쟁이 끝나자 태어나고

외할아버지는 아들들만 학교 보내고

딸들은 학교를 안 보내서

엄마의 최종학력은 중졸이다

자식들은 가르치기 위해 계속 일만 했다


어릴 적 부모님이 창피했다

길에서 보면 피해 다녔다

삐뚤빼뚤 글씨와 틀린 맞춤법이 너무 싫었다

그때마다 엄마에게99 이게 틀렸고, 이렇게 써야 한다며

엄마를 다그치곤 했다

10살 때 내가 엄마보다 지식이 더 많다는 것을 알았다

물어볼 것이 없어서 엄마를 무시하곤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 어리석었다


그때는 너무 싫었지만

지금은 나도 일부러 맞춤법을 틀리게 카톡을 보낸다

맞춤법 조금 틀렸다고, 뭐가 문제인가?

그 따뜻한 마음을 한글문법이 바로 표현해 줄 수 있는가?


진짜 지혜는 배움이 많은 것이 아니라

함께 사는 지혜를 가진 사람이다

엄마는 나에게 누군가를 위해 기꺼이 희생할 줄 아는

공동체의 삶을 가르쳤다


그리고 내가 그나마 작은 성공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나의 배움이 아닌, 그 지혜 덕분이다

어느 곳을 가도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들과

나에게 기회를 주는 사람들을 계속 만났다


그런데 문뜩 엄마는 행복했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열심히 살았지만, 열심히와 녹록하지 않은 현실사이에는

큰 GAP이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나는 행복한가?

나는 잘 모르겠다. 잘 한 행동인 것은 맞지만

왠지 씁쓸하다

내가 왜 이런 무게는 견뎌야 하는 것인지..

언제까지 얼마나 더 해야 하는 것인지


아무튼

기쁨과 허무함이 교차하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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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