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때문인지, 아니면 스스로를 옭아매서인지는 모르겠으나 최근들어 멍청해진 건 사실이다.
여러 차레 실수한 것을 다시 범하고, 다 끝내고 나서는 정말 간단한 업무가 막상 처리할 때는 난제로 느껴진다.
솔직히 이러한 부분이 나에게 가장 큰 고민이자 문제다.
최근 대표님께서 내게 책을 선물해주셨다. 방송 작가 송정연, 송정림 님의 "첫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너에게"라는 책이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사회 생활을 시작하는 아들이 사회 생활에 관해 본인에게 물었던 질문과 그밖에 조언하고 싶은 말들을 갈무리한 책이라고 한다.
사실, 나는 이런 종류의 책을 읽지 않았다.
이 세상은 내가 직접 겪어나가는 것이고 어차피 원론적인 내용만을 포함하고 있는데 굳이 읽을 필요가 있을까?
차라리 인문학이나 소설, 경제 서적 등 내 지식을 넓혀주는 책을 읽는 것이 더 유익하다고 생각해 자기개발 서적을 등한시했다.
하지만 내가 너무 오만했던 것 같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이 책에 등장하는 조언들 중 상당수 따르는 부분도 있지만, 지키지 않는 내용도 상당수 있었다.
지키지 않는 내용에는 두 가지 부류가 있다.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못' 따른 조언과 '안' 따른 조언. 그러하다.
'못' 따른 조언의 경우는 가령 이런 사례를 들 수 있을 것 같다.
작가는 상대방과 대화할 때 항상 밝은 얼굴로 상대의 눈을 쳐다 보라고 한다.
사실 내가 정말 못하는 것이 대화하며 눈을 보는 것이다. 내게 타인, 특히 높은 사람은 우리 집안 어르신들이었으며, TK 특유의 유교적 분위기 특성상 웃어른을 땡그랗게 쳐다보고 있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 생각하고 그렇게 몸에 배였다.
여자친구와 처음 밥약했을 때도 제발 자기 눈을 쳐다 보라고 했으며, 대표님께서도 왜 대화할 때 아이 컨택이 안 되냐고, 자신과 대화를 피한다고 느껴질 수 있다고 말하셨다.
하지만 정말이지 나도 고치고 싶다! 정말 미치도록 고치고 싶다!
대화를 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게 예의라고 생각하고 살아서 무의식적으로 눈을 피하게 되었다.
문제를 인식하고도 고치지 않으면 그건 변명이라고 할 사람도 있겠지만, 계속해서 아이컨택을 위해 최선을 다 하고 있다.
그렇지만 작가는 상대와의 좋은 대화를 위해 다음을 명시해야 한다고 한다.
1) 상대의 눈을 쳐다 보라 2) 머릿속 생각을 모두 입 밖으로 꺼내지 마라 3)타인이 말할 때 끼어들지 마라 4)상대에게 양해하는 습관을 들여라.
모두 다 기본적인 에티켓이라고 생각하고 당연한 것이지만, 돌이켜 보면 종종 무의식적으로 지키지 못했던 적도 많았다.
특히 이런 에티켓은 업무적 측면에서 더욱 중요한데, 막상 최근들어 더욱 이를 위반하는 횟수가 잦아진 것 같다.
아무래도 내 마음속에 쾌(快)자가 깊이 자리잡아서 그렇겠지. 간결하지만 무거운 조언이다.
또한 작가는 아들에게 실수했는지 두 번 점검하라고 조언했다. 실수를 반복하면 함께 일하고 싶은 생각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래, 나도 분명 알고 있는 점이다. 실수를 반복하면 함께 업무하고 싶지 않고, 이를 방지하기 위해 오류를 파악하고 점검해야 하는 것을.
하지만 여기서 나의 소시민적 사고관이 발현된다. 일은 많은데, 그리고 해치워 나가야하는데 하면서 꼼꼼히 보자. 그러고는 넘어간다. 그 다음은 뭐다? 실수가 생기고 반복한다!
그래서 매일 스스로에게 최면을 건다. 끊임없이 점검하고 실수를 없애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실수는 어김없이 생긴다. 왜냐고? 조급함과 또 실수를 할 것이라는 생각이 나를 옭아맨다.
작가는 타인에게 호감을 주는데 있어 여유로움을 가져야 한다고 한다. 삶은 불행으로 가득 차있는데 그 대부분은 사실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이라고 설명한다.
그렇다, 상대가 아니라 오히려 나 자신을 조바심을 내고 전전긍긍한다. TK 유전자 때문인가....
조금 늦더라도 뚜벅뚜벅 황소걸음을 밝아보자. 그렇게 천천히 걷다보면 언젠가는 더 많이, 그리고 더 멀리 걸어갈 것이다.
작가는 분명 진심을 다해 이 책을 적었을 것이다. 나는 엄마가 아들에게 전하는 사회생활에 필요한 조언을 믿는다.
그렇다면 '안' 따르는 조언은 어떤 것이 있을까.
우선 시간 약속 부분이 가장 큰 것 같다.
내 주위 지인들에게 나는 더럽게 시간 약속을 지키지 않는 놈으로 유명하다. 오죽하면 푸틴 타임을 이을 '문교 타임'이 존재하겠는가.
그래서 다들 내가 지각하면 그려러니 한다. 지각해도 지키지를 않으니 포기했다고.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이 본다면 헛소리 말라고 할 수 있겠지만, 사실 나는 시간 약속을 지키기 위해 꽤나 노력한다.
약속 시간이 30분이라면 딱 30분, 하다 못해 10분 전에 도착할 수 있도록 시간을 정한다.
왜냐하면 일찍 도착하면 남은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 남은 시간 동안 뭐하라고? 사실, 이게 내가 가진 생각이었다.
이런 생각이 굳어져 버렸고, 그 때문에 기차나 버스를 놓친 적도 꽤나 있었다.
작가는 시간 약속을 어기는 사람에 대해, 일을 아무리 잘해도 불성실한 사람으로 낙인찍히기 쉽다고 설명한다.
오히려 늦은 시간이 나와 상대방에게 죽은 시간이 되버린다는 것이다.
그러한 이유로 작가는 약속이 12시라면 11시 30분이 약속시간이라고 생각하라고 조언한다.
그렇게 생긴 30분의 여유 시간은 상대방과 만나 나눌 이야기를 준비할 수 있는, 정말 행복한 시간이라는 것이다.
그렇구나, 이러한 부분은 내가 너무 아집스럽게 생각한 측면이 있다.
금전적으로 손실이 발생해도 그냥 내 기준을 아득바득 유지하려는 생각이 컸다. 앞으로 작가가 말한 대로 관점을 바꿔보고, 그렇게 살도록 노력해야겠다.
'문교 타임'이라는 개념이 사라지기까지는 시간이 꽤나 걸리겠지만, 우선 노력해야겠다.
두번째는 어쩌면 내 근간을 바꿀 대목이다. 바로 "스스로의 모습을 전부 보여주지 마라"이다.
나는 지금껏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내 본연의 모습을 전부 보여주었다.
첫 만남에 참이슬 가방을 매고 살아왔고, 나의 취향을 공유하며, 사상/견해를 설파했다. 그런데 내가 싫다? 그러면 보지 마라, 굳이 나중에 가식떠느니 처음부터 확실히 아는게 낫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호감이 있다? 그렇다면 더욱 긴밀하게 지내자. 더욱 친밀하게 지낼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이것이 내 기본적인 타인과의 만남에서 가지는 스탠스였다.
하지만 이 글을 읽기 전, 특히 일하면서 이런 태도는 정말 힘들다는 것을 알았다.
이전까지의 사회 생활이 어항이라고 한다면, 지금은 망망대해다. 어항에서는 다 알고 있는 수초와 장난감, 먹이이므로 그럭저럭 피하고자 하면 된다.
하지만 이제는 크나큰 해구를 맞이해야 한다. 저 깊은 심해를 목도한 상황에서 차 떼고 포 떼는 짓은 자살행위나 마찬가지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책 속의 작가도 비슷하게 얘기한다. 우크센 세르나라는 현인은 '잘 생각하지도 않고 하는 말은 겨누지 않고 총을 쏘는 것과 같다'고 한다.
이렇게 보니 정말이지, 여기서 나오는 조언 중 어쩌면 지키는 것보다 안 지키는게 더 많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보면 어쩌면 더 옹졸하고 완고하게 늙기 전, 지금이 마지막 골든타임일지도 모르겠다.
항상 책에서 나오는 조언에 맞게 행동하는지 스스로 되짚어 보자. 그리고 종종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물어보자.
일단 내일 출근하기 전, 어제 내가 정리한 파일에서 실수가 없는지 다시 확인해 봐야겠다.
이전 글을 적었을 때와 달리, 지금은 오히려 기분이 좋다.
나는 아직 고치니깐.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