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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티븐 킹 Jan 02. 2021

신비의 섬 나들이 덕적도


  정확한 기억은 없지만 우리 가족이 함께 가서 즐겼던 섬인 덕적도를 20여 년의 시간이 흐른 후에 다시 아들과 간다고 생각하니 뭔지 모르게 스멀스멀 기어 나오는 생각들이 있다. 그 섬이 썩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인천으로 이사 온 후 처음으로 식구들이 함께 간 섬이라 다른 어떤 섬보다 가슴속에 선연하게 남아있다.

  산악회에서 단돈 만 원으로 덕적도 섬 산행을 간다고 했다. 평소 먼 곳이라 생각하여 엄두도 못 냈는데 가격도 저렴해서 좋았다. 남편은 휴일이지만 당직 근무라서 갈 수 없어 큰아들과 같이 점심으로 먹을 유부 초밥을 싸서 아침 일찍 연안부두로 갔다.

 

 아마 우리 아이들이 초등학교 저학년일 때 남편 사무실에서 야유회로 그곳에 갔을 것이다. 여수에서 근무하던 남편이 인천으로 발령을 받아 이사를 하고 인천에서 처음으로 배를 타고 그것도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는 덕적도에 가게 되어 많이 설레고 들떠있었다. 인천 여객선터미널에서 한 시간 이상 배를 타고 갔다. 잔잔한 엷은 옥색 물결이 출렁이는 바다를 보고 어린 아들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과자를 던져주면 쫒아 와서 채 가듯 받아먹는 갈매기의 매력에 과자가 바닥나서 없어질 때까지 주었다. 그래도 미련이 남아 남들이 던지다 배 바닥에 떨어뜨린 과자까지 주워 손에 들고 갈매기가 오기를 기다리던 아이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러다 갈매기가 채 가면 몸을 움찔하며 비명을 질렀지만 그것마저 없어진 것이 아쉬워 안타까워하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생생하다.

  

산악회에서 시산제 사은 행사로 이번에 원가에 미치지 못하는 가격으로 우리를 초대한 것인데 정말 가슴이 떨려 잠을 이룰 수가 없어서 뜬 눈으로 설쳤다. 유월 초순의 날씨치고는 덥게 느껴졌다. 진리 도우 선착장에 내려 산허리를 돌아 땀을 뻘뻘 흘리며 걷는 숲 속의 길에는 고사리가 여기저기 있었다. 사람들의 발길이 많이 닿지 않아서인지 길은 있었지만 무심히 자란 풀들로 칠부바지를 입은 내 다리를 간질였다.

  

덕포리 해변에서 아이들은 모래로 성을 쌓기도 하고 바나나 보트를 타기도 하며 즐겁게 노는데 나는 직원 부인들이 모여 있는 어색한 자리에서 조용히 앉아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시간이 지나자 그 자리가 남편의 직급에 따라 서열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제일 높은 직급의 사모님을 위주로 과장이나 계장급 부인들이 그녀의 주변에 둘러앉아 음식 등을 챙겨 드려 보필하는 모양새였고 우리 같은 피라미는 곁가지로 겉돌기만 했다. 그때 나는 생각했다. 다음에 내 남편이 그 정도의 계급을 달더라도 군림하지 않고 겸손하며 하급 부인들도 세심하게 챙기겠다고.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도 않으리라고. 그리고 상급 부인에게 아부하지 않고 성실히 살겠다고. 남편은 낮은 직급이라 여기저기 불려 다니며 행사를 준비하느라 우리 가족과 함께 하지 못해서 화가 나기도 했지만 내 처지에 어디다 대놓고 하소연할 곳도 없었다. 그래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어색한 자세로 그저 우리 아이들이 노는 모습만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썩 좋기만 한 야유회는 아니었지만 우리가 따로 가 볼 수 있는 섬이 아니라서 그곳에 가 본 것만으로도 큰 위안을 삼아야 했다. 지금은 마음만 먹으면 어디든, 언제든 가 볼 수 있지만 그때는 배 삯도 비쌌으며 대체로 단단히 마음을 먹어야 가는 곳이 그런 섬들이었다.

  

인천에 살면 요즘은 반값으로 인천의 섬에 갈 수 있다. 그래서 휴일이면 남편과 섬 여행을 가기도 한다. 영종도에서 들어가는 무의도, 시도, 신도 장봉도 등은 수시로 가서 섬 산행을 하지만 덕적도까지는 조금 멀게 느껴져 가 본 적이 없다. 그 날 아들과 다녀오고 나니 하루 만에 충분히 다녀올 수 있는 곳이라는 믿음이 생겨  다음에는 남편과 시간을 내서 가기로 약속했다.

  밧지름 해수욕장을 거쳐 비조봉 정상에 오르니 덕적도 섬의 이곳저곳이 한눈에 보인다. 시원한 자연 바람을 맞으며 정상에서 먹는 유부초밥은 꿀맛이었다. 서포리 해수욕장 쪽으로 눈을 돌리니 그 날이 떠오른다.


야유회 끝 무렵에 상품권 추천이 있었다. 처음에 나눠준 번호표를 잘 간직하고 기다리는데 남편 번호표가 없다는 것이다. 그 번호는 내가 그리도 가지고 싶어 했던 알람시계였다. 집에 있던 시계가 고장이 나서 새로 사야 했다. 한 푼이라고 아껴 넓은 집으로 이사 가고 싶은 터라 저축을 해서 몹시도 곤궁한 삶을 살고 있을 때였다. 선물을 쭉 늘어놓았을 때부터 제일 가지고 싶어 했는데. 마침 그 번호가 당첨이 되어 회심의 미소를 날리고 있었던 것인데 정작 남편이 가지고 있어야 할 번호표는 어디다 두었는지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굴러온 복을 제 발로 차 버리는 게 아닌가 싶어 화가 났다. 그러잖아도 부인들의 행태가 못 마땅해서 불편했던 심기를 드러내지 못하고 감추고 있었는데 남편은 아예 화를 돋우는데 불을 지폈으니.

  “아이고, 잘 좀 가지고 있지 그게 뭐야. 하여간 뭐 제대로 하는 게 없다니까”

  “뭐야?  내가 그러고 싶어서 그랬냐고?”

  오히려 화를 내는 남편과 나는 실랑이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것을 지켜보던 계장 부인이 자기가 탄 알람시계를 우리에게 내밀며

  “우리는 필요 없어서 주는 거야. 싸우지 말고.”

부끄러웠다. 솔직히 알람시계는 내가 돈을 주고 살 수도 있었을 텐데 왜 그렇게 화를 냈는지. 아마 그것은 남편의 사무실 야유회가 그다지 즐겁지 않았고 급수대로 노는 부인들끼리의 행위에 대한 불만 표출이었는지 모른다. 아름다운 섬도 아름다운 사람들과 가야 그 섬이 더 아름답다는 생각을 잠깐 했다. 그러면서도 계장 부인에게는 못 볼 것을 보여준 것 같아 게 구멍에라도 숨고 싶었다.

 

이번 덕적도는 아들과 뜻이 잘 맞아서인지 너무나 좋았다. 비조봉으로 오를 때는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가다가 쉬고 있는데 우리보다 앞서 가던 내 또래의 여인이 오이를 내밀어 지나는 이에게 갈증을 해소하라고 내민다. 차마 먹을 수가 없다. 그녀도 무겁게 가방에 메고 가져왔을 오이를 선뜻 내놓다니?  내가 먹으면 다른 사람들이 못 먹을 테니 우리는 배낭에 든 다른 과일이 있으니 먹는 것을 양보한다.

  우리가 하산하여 밧지름 해수욕장에 도착하니 아치형의 예쁜 다리가 반겼다. 양 옆으로는 초록의 낮은 산이 병풍처럼 둘러 쳐져 있고 눈앞에 펼쳐 보이는 하늘빛 바닷물은 잔잔하게 찰랑찰랑거렸다. 소나무 숲에 고운 모래가 반짝이듯 깔려 있고 메꽃이 분홍으로 피어 우리에게 눈길을 달라며 유혹을 했다. 빽빽이 들어선 소나무 아래 돗자리를 깔고 시원한 바람을 한 아름 안았다. 아름다운 섬이란 이렇게 마음 맞는 이와 와야 눈에도 예쁜 것이 보이나 보다. 산악회원들과 약속한 시간이 남아 있어서 우리는 가방에 넣어온 책을 꺼내 읽기 시작했다. 섬 산행을 와서 산과 바다만 보기엔 뭔가 아쉬울 것 같아 넣어온 것이었다. 또 둘의 취미가 비슷한지라 말을 하지도 않았는데 동시에 각자가 가져온 책을 가방에서 꺼내 읽기 시작했다. 바닷바람이 선선히 불어와 얼굴과 겨드랑이를 간질이고 책의 내용은 아버지에 대한 회상으로 잘 읽혔다. 그렇게 한참을 있었다. 이런 게 행복이 아닐까?  망중한을 즐겼다.

  다시 걸어서 선착장 쪽으로 가는데 논에서 일하는 할머니가 보인다. 난 할머니께 다가가서 말을 붙여본다.

  “할머니, 모 때우시나 봐요. 허리 아프고 힘드실 텐데.”

  “그려. 워떠게 이런 걸 아우?  젊은 양반이.”

  “아, 저도 어렸을 때 농촌에서 자라서 모 많이 때워봤지요. 그때는 못줄 잡아 모를 심었어요.”

  한참을 할머니와 이야기를 주고받는데 86세이며 당신의 남편은 일찍 하늘나라에 가고 자식들도 모두 인천에 나가 사는데 둘째 아들과 당신만 덕적도에 산다고 했다. 그 정도의 연세인데 일을 하시다니?  허리 굽혀 일하는 모습에 감동을 받았다. 아직 젊은 나는 직장 다니는 게 힘들다고 자주 남편한테 투정을 부렸는데 누가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모를 때우는 할머니를 보니 저절로 내 삶이 반성이 되었다. 그런 할머니를 위해 뭐라도 하나 드리고 싶었다. 하지만 이미 도시락과 간식을 먹고 난 후라 배낭에는 먹을 게 없었고 손에는 가로수에서 딴 몇 개의 앵두가 있어 할머니께 드렸다. 그러면서 오래 더 건강하시길 마음속으로 빌었다. 그 앵두에도 고마워하는 할머니의 순박함에 또 한 번 감동을 받으며 발길을 재촉하여 선착장으로 향했다.

  

돌아오는 길에 이렇게 아름다운 섬들이 인천에 많은데 우리는 왜 그동안 가까운 곳만 또 다닌 곳만 다녔는지?  다음에는 안 다녀 본 섬 위주로 여행을 더 자주 다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아들의 교직 생활에 대해서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으며 웃기도 하고 조언도 해주며 걷는 덕적도 섬 길은 하나도 힘들지 않고 행복했다. 평소에 하지 못했던 속 깊은 이야기를 아들과 주고받으며 걸으니 더 좋았다.

  모래성을 쌓고 바다에 흠뻑 빠져서 즐거워하던 아들이 벌써 성년이 되어 선생님이라니. 이제 내 남편도 그녀들의 남편 직급만큼 올랐는데 우리는 그런 야유회가 이제 없다. 예전처럼 직장에서 추진한 가족 간의 모임도 거의 찾아볼 수 없고 부정청탁방지법 등으로 불필요한 오해를 낳을 수 있는 행위들은 금하고 있어서이기도 하다. 그래도 그 시절이 그리운 것은 사람 냄새가 나기 때문이 아닐까?  우리 아들이 반 제자들에게 편지를 받아도 안 된다 한다. 편지지가 개인 돈으로 산 것이라서 촌지에 해당이 된다고 한다. 참 좋은 법 같기도 하지만 인정이 없기도 하다.

  섬 여행은 꼭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하기를 권한다. 그리고 떠날 때는 책 한 권을 가지고 가라고 권하고 싶다. 섬에서 읽는 책은 집중이 더 잘 되어 술술 읽히며 눈과 마음을 정화시켜주기 때문이다. 눈이 바다에 쏠려 수평선을 응시하다가 책으로 관심을 돌리면 마음속까지 푸른 물결이 일렁이게 되어 가슴이 시원해진다. 또 성년이 된 아들과 가도 좋다. 평소에 말이 없었던 아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다 보면 평소의 아들 생각을 잠깐이나마 들여다볼 수 있어 좋은 시간이 될 것이기에.

  덕적도 섬은 20년 전이나 별 변화가 느껴지지는 않았지만 기억의 오류를 교정시켜 주기도 하는 신비의 섬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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