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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티븐 킹 Feb 13. 2021

라오스 여행에서 깨닫다

   ※2018년 1월에 씀

  임용고시 1차에서 논술 과락으로 떨어져 상심한 작은아들을 달랠 겸 나 역시도 그 충격에서 벗어나고파 큰아들과 상의하여 여행을 계획했다. 되도록 비행기를 오래 타지 않고 비용 면에서도 저렴한 곳을 고르다 보니 동남아시아인 라오스로 정했다. 그리 즐거울 것도 없고, 행복할 것도 없는, 쓸쓸한 여행을 아들 둘과 자유여행으로 급히 다녀오기로 했다. 남편은 신년 초라 시무식이 있어 휴가를 낼 수 없다 하여 뺀 나머지 가족 셋이 가기로 했다.

  첫째 날은 수도인 비엔티안에서 하룻밤을 묵고 둘째 날은 루앙프라방으로 가기 위해 공항으로 갔다. 소형 비행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경이로웠다. 경비행기 같은 것을 타러 갔다. 직원을 따라 한 줄로 서서 공항 활주로로 가는데 70년 대 초등학교 다닐 때 동네 아이들이 모여서 깃발 들고 일렬로 학교에 가는 느낌이었다. 우리나라 인천 공항은 최첨단을 걷고 있다면 그곳은 아주 느리고 원시적이다고 말할 수 있다. 비행기는 한 시간을 날아 루앙프라방에 도착했다. 비행기 창문 넘어 보이는 풍경은 낮은 산과 산이 이어져 있고 어쩌다 가옥이 눈에 띄긴 했지만 여느 시골 풍경과 다를 바 없어 보였다.  

  꽝시폭포에 가니 엷은 하늘이 내려앉아 있듯 물의 색감이 참 예뻤다. 호수 깊은 곳은 터키석이 놓여있다는 착각을 할 정도였다. 구경을 다 하고 내려오는데 어느 한 곳에 사람들이 모여 정체를 빚고 있었다. 가만 보니 뚱뚱한 서양인 몇 명이 그 길을 점령하고 영어로 뭐라고 말하고 있었다. 나는 마음이 급해서 다른 곳도 구경해야 해서 빨리 그 시끄러운 곳을 뚫고 내려가고만 싶었다. 

  ‘영어로 익스큐스 미를 할까?  아니면 우리말로 좀 비켜주세요를 할까?  그것도 아니면 비킬 때까지 기다릴까?’

  고민을 하다 우리나라는 빨리빨리가 습관인데 답답하다는 생각이 들어 일단 몸으로 밀고 내려가기로 작정했다. 슬쩍 몸부터 밀어보았다. 그랬더니 뚱뚱한 서양인 남자가 날 영어로 나무랐다. 자세한 말뜻은 모르지만 아마 

  ‘기다려서 천천히 가야지, 사람을 그렇게 밀면 되느냐?  예의를 지켜라!’

  뭐 그 정도의 말인 듯싶었다. 난 그만 얼굴이 확 달아올라 벌게지고 부끄러웠다. 우리나라 같으면 그 만한 일은 용납이 되는데 서양인에게는 무례라고 신문에서 읽었던 기억이 났다. 혹 우리나라 망신을 나 혼자 시킨 것은 아닌지 걱정스러웠다. 물론 내가 한국말을 안 했으므로 어느 나라인지는 모르겠지만.

 

  셋째 날은 루앙프라방에서 푸시산과 사원 들을 둘러보고 방비엥으로 향했다. 라오스는 사회주의 국가이고 농업과 광업이 주를 이루며 평균 수명이 대략 남자 61세, 여자 65세인 경제 개발이 아직 안 된 국가이다. 가보니 정말 내가 어렸을 때인 60~70년대의 우리나라만도 못했다. 고속도로나 철도가 개통되어 있지 않아 우리나라라면 두 시간이면 갈 거리를 무려 6시간 걸려서 갔다. 콩나물시루 같은 밴의 보조의자에 앉아 산악도로를 목숨 걸고 가야 했다. 교통편이 마땅치 않아 밴을 탈 수밖에 없었지만 운이 나빠 나는 등받이가 없는 보조 의자에 앉아 6시간 내내 머리를 기대지도 못하고 가야 했다. 

  방비엥으로 가는 밴의 내 옆자리는 라오스인 여자가 앉았는데 차멀미로 토하기도 했다. 그녀 옆에 앉은 서양인 중년의 남자는 그녀에게 화장지를 주고 사탕을 주는 등의 친절을 베풀었다. 나도 약간의 멀미로 창문을 열어 달라고 그 남자에게 부탁을 영어로 하다 독일인임을 알게 되었다. 내가 고등학교 3년 내내 배웠던 제2 외국어인 독일어를 써먹을 유일한 기회였지만 생각나는 단어라고는 굳텐 모르겐(아침인사), 이히 리베(나는 너를 사랑한다), 아웃피더젠(헤어질 때 인사) 밖에 없었다. 그리고 알파벳인 아베체대(ABCD) 정도와 데어 데스 뎀 뎀(격 조사) 정도. 하하 웃음이 나왔다. 독일어를 제대로 배우지 못한 3년의 시간이 지금에 와서야 후회가 되었다. 제대로 써먹지도 못하는 외국어를 그때는 왜 그렇게 많은 시간을 낭비하며 배웠는지 의문이 들었다. 차에서 내려 헤어질 때 독일인 남자를 향해 “아웃피더젠”(안녕)을 외쳐주었다. 깜짝 놀라 하는 그 남자와는 더 이상의 대화를 할 수 없었다. 


  느림의 미학을 즐기려면 라오스로 가라고 말해주고 싶다. 자연환경이 빼어나 그것으로 관광수입을 올리고 있는 축복받은 곳이다.

  작년 말에 초등임용고시를 치른 작은아들은 최선을 다 했기에 거의 합격이 될 것으로 믿고 의기양양했다. 나 역시도 믿었다. 특히나 필기시험은 당연히 합격일 테고 문제라면 면접이나 영어 또는 수업시연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필기시험 결과를 발표하는 날에 약간의 기대를 안고 가슴 졸이며 기다렸는데 결과가 황당하였다. 교육과정은 높은 점수로 통과했지만 교직논술은 6.33이어서 8점 이하라 과락으로 떨어졌다는 것이다. 
   4년 동안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열심히 공부했을 아들도 상심이 컸지만 논술 지도를 해본 어미인 나도 큰 충격이었다. 도저히 용납이 안 되는 점수였다. 물론 3명의 채점자가 돌아가면서 읽고 점수를 매겼다지만 논술이라는 것은 주관적이지 않겠는가?  아들의 입장에서는 열정을 다 쏟아 원하는 답을 썼다고 하는데 교직과정에 그 점수 나올 성적이면 논술도 어느 정도 가능한 아이일 텐데. 채점자들이 원망스러웠다.


  꽝시폭포에서 내려오는 길에 나만의 생각으로 몸을 밀어붙인 자만이 떠올랐다. 아마 아들의 시험 결과도 그렇게 우리 방식으로 생각하고 결론을 내리고 억울해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그동안 내 삶이 항상 그런 식이 아니었는지 뒤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수많은 수험생들의 고통을 별로 생각해 보지도 않았으며 모두 열심히 하면 결과에 순순히 따라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 옅은 생각을 한 나 자신을 라오스 여행길에서 만난 서양 남자가 일깨워 준 것은 아닌지. 


  방비행에 도착하여 자전거를 빌려 동굴 탐험을 하러 갔다. 지나는 길에 본 소는 우리나라 소와 많이 달랐다. 크기가 작았는데 나중에 들으니 소를 방목으로 키워 소고기 맛이 일품이고 무엇보다 가격이 저렴하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주로 소고기로 식사를 했다. 그런 호사를 누릴 수 있는 라오스는 과일 가격도 아주 쌌다. 덕분에 좋아하는 망고를 실컷 사 먹었다. 

  넷째 날은 카약을 탔다. 큰아들과 나는 한 배에 자리를 잡았고 작은아들은 한국 처녀와 타며 썸을 타는 듯하였다. 우리는 눈웃음으로 사인을 주고받으며 눈여겨보기도 했다. 타이어를 타고 동굴 튜빙을 했다. 엉덩이에 물이 스며들어 이상한 기분이었지만 줄을 잡고 얼마를 가는 체험이 시원하여 신났다. 짚 라인은 길이가 짧은데 여러 개를 이어서 타니까 그런대로 재미있었다. 점심은 야자수에 싼 볶음밥을 먹었다. 한국 처녀들은 맛이 없는지 아니면 먼저 먹은 빵으로 배가 부른 지 한 숟갈 뜨더니 더 이상 먹지 않았다. 옆에 있던 이탈리아 남자가 영어로 자기는 몹시 배가 고프다며 그녀들이 남긴 밥을 먹어도 되느냐고 물었다. 그러라고 호쾌하게 대답하자 그는 아구아구 맛있게 먹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놀라웠다. 나 같으면 아무리 배가 고파도 남이 남긴 음식을 먹을 것 같지는 않았다. 더구나 다른 나라에서, 같은 국민도 아닌 타국의 여인들이 남긴 밥을 그렇게 맛있게 먹다니. 


  액티비티를 즐기느라 임용고시 결과를 차차 잊어가고 있었다. 아들도 그 방황에서 벗어나 웃음을 되찾고 있었다. 맛있는 음식을 싼 가격으로 먹고 날마다 새로운 곳을 방문하여 여행을 하느라 잠시 시름을 잊을 수 있었다. 

  다음으로 블루라군에 가니 우리나라 자선단체 같은 곳에서 무료로 지어 주었다는 다리가 눈에 띄었다. 그것을 보고 있자니 좋은 일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라오스의 방비엥은 가는 곳마다 한국 사람들이 많아서 가평 계곡으로 놀러 건 것이 아닌지 착각할 정도였다. 그곳의 경치는 가끔 언론에서 본 바와 같이 예뻤다. 에메랄드빛 물 색깔이 참 고왔다. 높은 나뭇가지 위에서 다이빙을 하는데 구경하는 사람들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재미를 느껴 환호성을 지른다. 생각보다 높아서 호수로 뛰어내리기에는 무서워 보였다. 하지만 뚱뚱한 서양 여자를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자신감을 얻는 듯했다. 나이를 정확하게 짐작할 수는 없었지만 엄청나게 뚱뚱한데 비키니 수영복을 입고 가장 높은 곳까지 올라가서 손을 흔들어 여유를 보였다. 흥에 겨운지 큰 소리를 내며 풍덩 뛰어내리는 그녀의 용기에 감동을 받았다. 그것을 지켜보는 사람들은 약간의 야유인지 모를 괴성을 지르며 박수갈채를 보냈다. 그 장면에 은근히 중독이 되어있었다. 그들의 성화에 힘입은 여인의 대담함에 나도 박수를 보냈다. 아들도 그녀의 행위를 본 후 20M는 족히 되어 보이는 곳에서 뛰어내렸다. 어미로서 걱정이 되었는데 미꾸라지처럼 물을 털듯 튀어 오르는 아들을 보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곳은 아마 자신감이 없는 사람들에게 용기를 심어주는 곳이 아닌가 싶었다.


  라오스, 미지의 세계였지만 친근하게 느껴진다. 나와 작은아들의 깊은 시름을 잊게 해 준 고마운 곳이다. 돌아오는 길에 

  “아들아. 우리 다시 시작해 보자. 힘들겠지만 1년의 시간을 의미 있게 노력해 보자. 어디 인생이 다 내 뜻대로만 되더냐?  노력하면 노력한 만큼은 배신하지 않겠지.”

  용기를 잃지 않고 열심히 하기로 다짐을 하는 아들의 등을 쓰다듬어 본다. 나 역시 시험 준비하는 아들의 뒷바라지에 다시 1년의 시간을 투자하기로 한다. 상처를 안고 떠난 여행이었지만 돌아올 때는 다시 해보겠다는 의지를 품고 돌아올 수 있었던 라오스 여행에 고마움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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